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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文정부 안했다"는데…한동훈, 대법관 13명 인사검증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동훈 법무부 장관 직속으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하는 대통령령이 31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인사검증 대상에 사법부 최고 법관인 대법관을 포함할지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인사검증을 맡았던 조국 전 민정수석이 "삼권분립을 존중하기 위해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대법관 후보는 인사검증을 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다.

법무부는 "인사검증 대상자의 정확한 범위는 '전례와 법'에 따라 정할 것"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정부는 31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공직 후보자 등에 관한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규정'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 개정령안 등을 상정해 의결했다. 이는 인사혁신처장이 가지고 있는 공직 후보자 인사 정보 수집·관리 권한을 법무부 장관이 위탁받을 수 있게 하고, 법무부 내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해 공직 후보자 인사검증 업무를 맡기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6월 7일 개정령이 시행되면 과거 대통령실이 하던 공직자 인사검증 업무는 법무부로 옮겨간다.

인사검증 최대 쟁점은 대법원장 外 나머지 13명의 대법관 포함

가장 큰 쟁점은 사법무 최고 법관 가운데 대법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13명의 대법관을 법무부의 인사검증에 포함할지 여부다. 최고 법관 중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대통령 몫인 헌법재판관 3명(9명 재판관 중 국회 선출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 제외) 등 5명의 경우 법률상 인사검증 대상인 점이 명확하지만 13명의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헌법상 제청권을 갖고 있고 후보추천 절차를 책임지기 때문에 임명권과 제청권 사이에 검증 주체가 모호하다는 점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법원 안팎에선 형사소추 기관인 검찰을 지휘·감독하고, 문재인 정부 당시 사법행정권남용(이른바 사법농단) 수사를 이끈 전력도 있는 한동훈 장관이 최고 법관 후보자의 인사검증까지 맡을 경우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반발이 거세다. 인사정보관리단에 검사 3명이 포함된 걸 놓고도 검사와 판사는 재판에서의 이해관계 당사자이기 때문에 검증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국 전 민정수석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현행 대법원의 후보 심사 및 추천 절차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실은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후보에 대해선 일체 인사검증을 하지 않았고 그 작업은 대법원 자체에서 수행했다"며 "헌법상 삼권분립의 원칙을 존중하기 위함이었다"고 밝혔다. 한동훈 장관 법무부의 대법관 인사검증 추진 움직임을 비판한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울·세종 영상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울·세종 영상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법무부 "전례와 헌법 따라 검증 대상자 정할 것"

법무부는 대법관을 검증 대상으로 포함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출범하고 난 뒤에 논의할 부분이지만, 기본적으로 '과거 대통령실의 전례와 헌법·법령이 정한 범위'에 따라 검증 대상자를 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사검증 대상자 선정 기준으로 '전례와 법'을 모두 언급하며 대법관을 포함할 여지를 남겨뒀다.

청와대 전경 [뉴시스]

청와대 전경 [뉴시스]

헌법상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돼 있다.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이 제청할 대법관 후보자 추천을 위해 대법원에 추천위원회를 두고 후보자를 심사해 3배수 이상을 추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후보자 심사 및 추천이 제청권자인 대법원장의 책임 아래 이뤄지기 때문에 제청 이후 국회 임명 동의를 요구하고 최종 임명하는 대통령에게 검증의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중앙일보가 역대 정부 민정수석실의 '전례'를 취재한 결과 과거 청와대는 대법관에 대한 공식적인 인사검증 업무를 대법원에 맡겼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명박 정부 민정수석실 고위 관계자는 "대법관 후보자의 경우 인사검증은 후보자를 추천하는 대법원이 맡았다"며 "다만 추천위가 3배수 이상 후보자를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단수 후보를 제청하는 과정에 대통령실과 대법원 사이 최종 조율은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과거의 청와대도 비공식적으로는 제청 직전 대법관 후보자들에 대한 세평 등을 직·간접적으로 수집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과거 법원행정처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국정원이나 청와대가 대법원장 제청 즈음 비공식적인 검증은 했다"며 "후보자의 가정사 등 추천위에서는 파악하기 힘든 부분을 세평 조회 방식으로 수집했고, 대법원에도 그런 조회 요구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말했다.

민정수석실에서 인사검증을 담당했던 다른 인사도 "추천위에 오른 대법관 후보들의 세평을 조회해서 보고하는 것이 대법관 인선 기간 우리 주된 업무였다"며 "대법원장 제청 전 민정수석과 법원행정처 처장 또는 기조실장이 협의하는데, 그 자리에 아무 자료 없이 나갈 순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권력분립 위반", "정치적으로 부담"…대법관 검증 강행하나

"정치권력의 내밀한 비밀업무 영역을 투명하게 하겠다"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법원 등의 반발을 뚫고 대법관을 공식적인 인사검증 대상에 포함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문재인 정부 법무검찰개혁위원장을 맡았던 김남준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이 (인사검증을 통해) 실질적인 반대 당사자이자 심판자인 법관을 선택할 수도 있게 한 것은 기본적인 권력분립 원칙의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접결실로 이동하고 있다. /20220530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접결실로 이동하고 있다. /20220530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인사검증이라는 미명하에 검찰이 재판의 최종 심판자인 고위법관들을 독점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며 "민주주의 헌법정신을 가진 이라면 누구든 나서서 막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번갯불에 삼권분립을 볶아 먹으려는 만행" "대한민국을 견제와 균형 없는 검찰공화국으로 만들겠다는 저의" 등 표현도 나왔다.

법무부는 "대통령 권한을 위임받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부처 통상 업무로 인사검증을 하는 것이 5년 뒤 모든 자료를 파기하는 기존 청와대 방식보다 장기적으로 투명화·객관화를 담보할 수 있는 길"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가지 않았던 길을 갈 경우 한동훈 장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전 법원행정처 고위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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