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의 방파제 허물려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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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의 규제완화 방침에 이의 있다
정부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키로 했다 한다.
30일 건설부가 개발제한구역 관리에 대해 「제도개선 사항」이란 이름으로 발표한 규제완화 방안에는 그린벨트안 주택의 중축 허용면적 상향조정,공공기관에 의한 체력단련 시설이나 부대시설 및 공공청사의 신축허용,시내버스 차고지의 개설허용 등 무려 16개항에 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에는 3백평 이상 공공건물의 신축 때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치게 하던 것을 건설부 장관의 승인사항으로 바꾸고 건설부 장관의 권한사항 20건중 16건을 도지사ㆍ시장ㆍ군수에게,도지사의 권한사항 26건중 15건을 시장ㆍ군수에게 넘겨주는 대폭적인 규제권한의 하부 이양이 포함돼 있다.
규제완화의 폭의 크기나 권한 이양에 따른 절차의 간소화 조치 등이 이제까지의 그린벨트에 대한 규제와는 강도를 달리하는 것들이다.
그린벨트에 대한 규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는 수준을 넘어 마치 보호대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줄 정도다.
우리는 그린벨트 안에 거주하거나 그곳에 생업의 기반을 갖고 있는 주민들의 불편이나 재산상의 손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의 권익은 그린벨트를 설정한 본래의 취지나 목적을 훼손하지 않는 한 가급적 존중되고 보호돼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조치중 현지 주민들의 주거나 생업에 관련된 일부 규제완화 조치에는 긍정적 측면이 없지 않다. 또 국민의 휴식공간 확보를 위한 체육ㆍ레저시설의 공영개발이나 공공청사의 신축문제도 그 당위성이나 절박한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개발제한구역 안에라도 시설을 해야겠다는 것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없을 리 없다.
그러나 당장 필요하다고 규제를 풀고 마구 파헤친다면 개발제한구역을 설정한 본래의 취지와 목적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정책 당국자들에게 묻고 싶다.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이 특별법으로 개발제한구역을 설정한 것은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구역만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에서 방파제 구실을 하도록 함으로써 도시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고 건전한 생활환경을 조성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린벨트만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켜나가야 한다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런데도 당장 필요하다고 관공서를 짓고 버스주차장을 만들 생각을 한다는 것은 눈앞의 편의를 위해 국민생활의 미래를 담보로 잡겠다는 단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특히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공공수요에 대해서는 관대해도 좋다는 발상이다.
실제로 이미 공공건물이라는 이유로 적지 않은 그린벨트가 훼손돼 왔다.
그러나 그린벨트의 설정취지를 생각하면 공공건물이라도 예외가 인정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더욱이 공공건물을 그린벨트에 세우겠다고 하게 된 사정을 보면 사용가능한 요지를 모두 민간에게 불하하고 돌아서서 용지부족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좋은 땅을 처분하고 그린벨트를 잠식해야겠다는 관공서의 행태는 그 단견성에서 뿐 아니라 도덕성조차 의심받게 하는 처사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린벨트 훼손에 정부가 앞장서서야 되겠는가. 이와 같은 전례는 그린벨트를 존중해야 한다는 국민의 의식을 무너뜨리고 그동안 비교적 잘 보호되어온 도시주변 녹지대가 무지막지하게 잠식되는 시초가 될 것을 우리는 크게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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