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이번엔 유정복 해줘야 돼.” “훨씬 낫지 사람이, 인물도.”
24일 오전 11시. 유정복 국민의힘 인천시장 후보가 빨간 조끼, 빨간 운동화 차림으로 인천 중구 종합어시장을 찾자 상인들이 하나 둘 응원과 격려의 말을 건넸다. 유 후보는 이번 선거를 위해 특별 제작했다는 ‘황금 명함’을 들고 시장 구석구석을 누비며 시민들과 주먹 인사를 이어갔다. “힘내세요! 유정복이 복을 드립니다!” 복주머니가 그려진 얇은 금박 종이 명함을 받아든 사람들 입에서 “이야, 거 이름 멋있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인천은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유일하게 동일 후보로 ‘리턴 매치’가 이뤄지는 광역단체다. 유 후보는 지난 2018년 인천시장 재선에 도전했지만 득표율 35.44%로 57.66%를 얻은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22.22%포인트 차이로 졌다. 이후 21대 총선 패배, 인천시당위원장 탈락이 이어졌다. 지난 4년은 ‘최연소 군수, 3선 의원, 장관 2관왕’ 타이틀로 승승장구하던 정치인 유정복에게 암흑의 시간이었다.
유 후보는 이날 시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탄핵 직후의 재선 실패는 솔직히 어찌할 수 없었지만, 총선 참패는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일이었다”며 “정치에는 ‘논두렁 정기’가 필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나.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근황을 전했다.
이날 유세 분위기는 꽤 우호적이었다. 어시장에서 유진동신참치를 25년간 운영한 상인 이민구씨는 유 후보를 만나 “민주당이 지난 4년간 너무 독선적이었다. 어시장 이전 공약을 바로 해줄 듯 말해 기대가 있었는데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충남상회 사장 이용숙씨는 유 후보와 반갑게 손을 마주친 뒤 “엊그제 박남춘이 와서 이렇게(손뼉) 하자고 했는데 내가 ‘노(No)’하고 안 했다”며 “어시장을 발전시켜달라. 약속 꼭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엔 유 후보가 상대인 박남춘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리서치앤리서치가 동아일보 의뢰로 지난 14~15일 인천시 유권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인천시장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유 후보는 39.6%로 박 후보(32.5%)를 7.1%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캠프 관계자는 “지난 8일 이재명 후보가 계양을 출마를 선언했을 때 내부에 긴장감이 돌았지만, 그 뒤 박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오히려 더 벌어졌다”고 말했다. 유 후보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차량 동승 인터뷰에서 “지지율에 연연하면 절대로 안 된다. 자만하기 쉬운 걸 늘 경계해야 한다”면서도 “인천 판세가 어느 정도 판가름이 나고 있다고는 생각한다”고 조심스레 자신감을 내비쳤다.
- 이재명 후보 등판이 인천시장 선거 판세에 어떤 영향을 줬나.
- 객관적, 과학적 분석은 어렵다. 다만 이 후보가 민주당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고는 볼 수 없다. 특히 계양 지역에는 부정적 영향을 준 것이 틀림없다. 계양은 역대 어느 선거에서든 민주당이 강세를 보인 지역이다. 그런데 이 후보가 ‘계양=양지’ 판단을 한 게 주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민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냐. 우리가 거수기냐, 호구냐’라는 반발이다.
- 반사 이익을 봤다는 뜻인가.
- 내 경우는 반사이익보다, 이 후보와 관계없이 상승세를 탔다고 진단한다. 나는 책임감과 진정성이라는 정치철학으로 승부한다. 선거 후반으로 가면서 박 후보 측 네거티브에 대한 진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2014~2018년 시장 재임 동안 빚 3조 7000억원을 갚아 인천을 재정정상도시로 만들었는데, 박 후보가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아직도 하는 게 대표적 예다.
- ‘윤심’ 접근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가 있지 않나.
- 나는 누구를 이용해서 선거를 치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윤심이든 박심이든, 유정복이 가진 생각을 인천시민들이 아는 게 중요하다. 유세에서도 윤석열 대통령 언급을 일부러 하지는 않는 편이다. 지난 19일 중앙선대위 출정식 때 권성동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과 지난해 8월 셋이 처음 식사한 일을 언급하며 ‘윤 대통령을 만든 일등 공신이다. 대통령이 마음의 빚을 느낀다’고 나를 소개하긴 했다.
유 후보는 당내 대표적 친박 인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에서 초대 안전행정부 장관과 인천시장을 역임했다. 그는 “친박 인사라는 걸 부정한 적 없다. 탄핵과 적폐청산 때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면서도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가까이서 본 입장에서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누구보다 바란다. 기회가 되면 전직 대통령들이 왜 실패했는지를 윤 대통령에게 직접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 장관, 국회의원, 광역단체장을 다 지냈다. 시장을 또 하려는 이유는.
- 국회의원은 파워풀(powerful·힘 센) 하고, 장관은 아너러블(honorable·명예로운) 하고, 단체장은 프루트풀(fruitful·결실을 보는) 한 자리다. 시장은 온전히 자기 권한과 책임으로 일을 이뤄낸다.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투입하고 성과를 낸다는 점에서 큰 보람이 있다. 의원은 도장 찍고 책임질 일이 없지만, 인천시장은 모든 인천시 일이 다 자기 책임이다. 그만큼 굉장한 성과도 낼 수 있다.
지난해 10월 윤 대통령은 유 후보에게 대선 캠프 인천지역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겼다. “그때부터 (대통령에게) ‘나에 대해서는 어떤 부담도 갖지 말라’고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야 장관, 총리 하려고 했겠지만 나는 인천을 되살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날 유 후보는 차를 탈 때마다 현장에서 들은 민원을 수첩에 빼곡히 정리해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