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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의 허파 광교산 개발 "안돼"

중앙일보

입력

지난 7일 광교산 기슭의 용인 풍덕천동 토월약수터 입구.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K아파트 주민들이 운동 나온 사람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고 있었다. 7년 전부터 약수터 일대 자연녹지에 추진돼 온 노인복지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내용이다. 매일 광교산에 오른다는 김무일(68·용인 신봉동)씨는 노인주택 건설에 대해 "한마디로 정신나간 행동"이라며 "나도 노인이지만 자손만대 이용할 산림을 깔아 뭉개면서까지 노인용 주택을 지어야겠냐"고 말했다. 김 씨는 "공기가 맑은 광교산이 있어 이곳으로 이사왔는데 능선 꼭대기까지 개발하겠다니 어이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죽전에서 왔다는 50대 여성은 "오래 전부터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개발 계획이 취소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주민들은 최근 '토월약수터살리기 대책위원회' 중심으로 용인시에 노인복지주택 건설이 가능케 한 도시계획시설 결정을 폐지(무효화)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김조자(63·여)대책위원장은 "법원에서 행정 절차상 하자없는 결정이라고 판결을 내렸지만, 주민이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3개 기관에서 부적합성을 밝힌 개발 계획을 시가 받아들인 이유를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곳에 노인용 공동주택을 지으려는 시도는 L개발업체에 의해 1996년부터 시작됐다. 노인복지법에 근거해 자연녹지에도 사회복지시설(노인복지주택)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는 "산림청에서 산림 보존을 권장해 택지개발 때도 제외한 곳"이라며 이 제안을 거부했다. 풍덕천1동 아파트 7개 단지 주민 6292명도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서울대 임업과학연구소도 보고서(1997년)에서 "인근 개발이 계속 진행됨으로써 녹지 공간에 대한 욕구가 더 증폭돼 이곳의 공익적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라며 "개발로 인한 편익보다 산림 훼손으로 인한 손실이 훨씬 크다"고 결론지었다. 한강유역환경청에선 산림훼손으로 집중호우때 홍수 발생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개발의 불가함을 밝혔다.

그러나 1999년 시는 결국 주민들 반대와 산림청 의견을 저버린채 광교산 자연녹지에 도시계획시설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사업 추진이 어려워지자 건설업체에선 지난해 약수터 주위에 공원 및 등산로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시에 건축승인을 신청했다. 주민들은 곧바로 도시계획시설결정 무효청구 소송을 냈다.

주민 박춘화(53·여)씨는 "토월약수터 주변 광교산은 10m쯤 되는 소나무가 빼곡히 자라고 있는 곳으로 주말마다 수지는 물론 용인 일대 주민들이 찾는 휴식처"라며 "이 곳의 나무를 모두 베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공원 서너개를 없애는 것보다 큰 죄악"이라고 말했다.

약수터 부근 등산로는 야트막한 능선을 따라 오르기가 편해 특히 연장자들이 선호한다. 이모(70)씨는 "노인요양 주택을 도심과 가까운 곳에 지을 필요가 있느냐"며 "TV에서 노인주택에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사는 등 투기 대상이 됐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지난달 초 서정석 용인시장이 취임 100일을 맞아 발표한 내용에 기대를 건다. 서 시장은 "난개발을 막기 위해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아파트 신축 사업을 최대한 막고, 허가가 난 사업이라도 사업계획을 재검토해 자연환경 및 주민 생활환경이 열악할 경우, 착공신고서를 접수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다.

수지시민연대 강성구 공동대표는 "용인시가 우선 '수지의 허파'로 불리는 광교산 훼손부터 막아 난개발 오명을 벗을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인시 입장
= 시는 이달초 주민들이 낸 도시계획시설결정 폐지 제안을 반려했다. 토지소유자 동의를 얻지 않은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주민들은 일반민원으로 바꿔 다시 제출한 상태다. 서정인 도시과장은 "관련부서 협의를 거쳐 검토할 예정"이라며 "심의 대상이 된다면 도시계획심의회 개최, 주민 공람 등 소정의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개발업체가 신청한 사업승인 요청에 대해서 시 건축과는 "승인 절차를 밟는 중" 이라고만 밝혔다.

◇개발업체 입장
= 2000년 D건설은 최초 개발업체로부터 사업권을 넘겨받았다. 건설사 관계자는 "사업승인을 위한 모든 절차가 끝난 상태"라며 "법적 하자가 없는 사업으로 판결난 만큼 조만간 허가가 날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림훼손을 줄이기 위해 체육공원 조성용으로 땅 1만2000평을 기부 채납하고 노인주택용 부지도 산 밑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노인복지주택은 3만4000평 부지에 12개동 336가구가 들어선다. 48,57평형으로 60세이상 노인들에게 분양된다. 의료·헬스시설과 취미클럽 활동 공간이 있는 복지관이 마련된다.

프리미엄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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