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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치료로 낳은 아이 죽이고 싶다" 극단 치닫는 '끔찍한 병'[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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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우울증 관련 이미지. pixabay

산후우울증 관련 이미지. pixabay

주부 정모(38)씨는 2019년 출산 이후 극심한 산후우울증을 겪었다. 정씨는 2년간의 난임 치료를 거쳐 결혼 8년 만에 어렵게 아이를 가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를 낳았지만 정씨는 우울에 빠졌다. 그는 “밤낮없이 우는 아이를 안고 같이 소리 내 엉엉 울기도 했다. 어느 날 문득 우는 아이를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남편의 권유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고 1년 넘는 치료 끝에 위기를 넘겼다. 그는 요즘 아이를 기르며 “이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할 만큼 행복하다”라며 “아이가 어릴 때 산후우울증을 방치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하곤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대전고등법원 형사3부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친모 A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에게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40시간과 아동 관련 기관 취업제한 5년을 명령했다. A씨는 2021년 2월 딸을 낳은 뒤 아이를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숨질 당시 아이는 생후 42일이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육아 스트레스, 산후우울증으로 판단력과 자제력을 잃고 학대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러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헌법 제36조 제2항은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라며 “피고인 혼자 육아에 대한 책임을 부담할 수밖에 없었으며, 전적으로 A씨만을 사회적으로 강도 높게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산후우울증 관련 이미지. 연합뉴스

산후우울증 관련 이미지. 연합뉴스

보건복지부가 2020년 출산한 산모 31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올해 1월 발표한 ‘2021 산후조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52.6%)이 분만 후 산후우울감을 경험했다. 출산 후 1주일간의 감정 상태에서 산후우울 위험군은 42.7%였다. 우울감이 있어도 24.9%는 도움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통상 이런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산후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산후우울증은 흔하게 발생하지만 이를 방치하면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어 조기 개입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용욱 교수는 “산후우울증은 출산 후 여성 10~15%에서 발생할 만큼 흔한데, 출산 후 3~6개월 이내에 시작돼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몇 년 동안 지속할 수 있는 심각한 장애”라고 말했다. 산후우울증을 겪는 엄마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몸무게가 적게 나가고, 불안정한 애착을 경험하면서 여러 행동 문제가 나타날 위험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심해지면 A씨 사건처럼 극단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다.

신 교수는 “산후우울증은 일단 세심한 평가를 해야 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신과 치료뿐 아니라 환자의 주변 가족들이 집안일과 아이를 돌보는 것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수면을 충분히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정서적으로 지지해줘야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신 교수는 “산모에게 ‘아이를 낳고 나면 다 힘들다’ ‘다른 사람은 괜찮은데, 왜 너만 유난 떠냐’라고 말하면서 그냥 지나치거나 무시해선 안 된다”라며 “병원을 찾아 적절한 평가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출산 후 겪는 여러 변화로 힘들어 하는 산모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지는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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