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그림에 번호까지…138년 전 '전주맛' 담은 수상한 이방인[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2.05.15 05:00

업데이트 2022.05.15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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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내셔널팀장의 픽:‘휴민트(HUMINT) 선구자’가 남긴 전주의 맛

“맛의 도시 전주, 대표 음식점을 찾습니다.”

전북 전주시가 지난 11일 밝힌 향토전통음식업소 공모 내용입니다. 오는 20일까지 전주 음식을 대표할 식당을 찾아 나선 겁니다. 한정식과 비빔밥, 콩나물국밥, 전주 백반 등이 대상입니다. 지금도 전주에는 향토전통음식업소가 22곳 지정돼 있습니다. 올해 전주시가 추가로 전통식당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주시 표현대로 옛부터 전주는 ‘맛의 도시’로 유명합니다. 2012년에는 국내 유일한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선정도 됩니다. 그러나 정작 전주의 한정식과 백반이 식도락가에게 극찬을 받게 된 원류(源流)는 제시하지 못했답니다. 전주만의 음식이나 조리법이 기록된 고문헌 등이 거의 없어섭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대표음식이 없으니 여러 음식을 내놓는 한정식이 유명해진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답니다.

옛 전라감영의 모습을 재현한 '전라감영이 돌아왔다' 공연. 사진 전주시

옛 전라감영의 모습을 재현한 '전라감영이 돌아왔다' 공연. 사진 전주시

전주 음식 뿌리 적힌 포크의 일기장

이런 상황에서 공개된 미국인 조지 클레이튼 포크(1856~1893)의 일기는 여러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전주음식의 뿌리를 옛 전라감영의 관찰사 밥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겁니다. 포크의 일기는 2019년 8월 전주대 식품산업연구소 송영애 연구교수의 발표를 통해 세간의 주목을 받습니다. 연구 주제는 ‘전라감영 관찰사 밥상과 외국인 접대 상’이었답니다.

외국인인 포크가 한국인도 남기지 않은 음식기록을 남긴 경위는 사실 우연에 가깝습니다. 조선 말기인 1884년 11월 10일 주한미국공사관 대리공사로 전라감영을 방문한 게 시작입니다.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호남·제주를 관할하던 행정기구로, 행정·사법·군사를 맡은 관찰사가 근무하던 곳입니다.

전주시가 송영애 전주대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와 함께 복원한 전라감영 관찰사 밥상. 사진 전주시

전주시가 송영애 전주대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와 함께 복원한 전라감영 관찰사 밥상. 사진 전주시

상차림 그린 후 번호까지 매겨…9첩 넘어

그는 당시 전라감영에서 대접받은 8차례의 상차림을 낱낱이 기록해 놓았습니다. 9첩이 넘는 상차림을 일일이 그려 넣은 뒤 음식에 번호까지 매깁니다. 그의 일기를 보면 콩밥·소고기뭇국·닭구이·돼지고기구이·오리고깃국·꿩탕·숯불고기·소고기전·수란·젓갈 등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관찰사 밥상을 대하는 감흥도 매우 구체적입니다. "오전 10시에 아침상이 들어왔다. 가슴 높이까지 올라온 수많은 음식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등의 방식입니다.

그는 일기에 "저녁이 되자 나를 위한 연회가 열렸다. 상을 채우고 있는 둥글고 작은 접시에는 10명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음식이 쌓여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오늘은 나에게 실로 환상적인 날이다. 이곳 감영은 작은 왕국"이라는 말도 남깁니다.

주한미국공사관 대리공사를 지낸 조지 클레이튼 포크(왼쪽)과 포크의 일기에 기록된 17가지 전라감염 음식. 사진 미국 해군역사센터, 미국 UC버클리대학 도서관

주한미국공사관 대리공사를 지낸 조지 클레이튼 포크(왼쪽)과 포크의 일기에 기록된 17가지 전라감염 음식. 사진 미국 해군역사센터, 미국 UC버클리대학 도서관

138년 전 조선 팔도 유람한 미국인 포크

미 해군 중위 출신인 포크는 고종 21년인 1884년 9월부터 12월까지 조선 팔도를 여행합니다. 당시 전주에는 11월 10일부터 사흘간 머문 것으로 나옵니다. 그는 138년 전 조선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건물·음식 등을 일기에 자세히 담았습니다. 조선말도 할 줄 알았던 포크(Foulk)의 조선 이름은 '복구(福久)'였다고 합니다.

포크는 당시 조선말과 영어에서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알 정도로 조선말을 곧잘 했다고 합니다. 포크는 "나는 (전라감사에게) 씨(seed)·배(pear) 같은 단어는 발음이 영어와 비슷하다고 말해줬다. 그 덕택에 서로의 대화가 훨씬 부드러워져서 잔치 분위기가 났다"고 썼습니다. 밥(Pap)·왕(Wang)·감사(Kamsa)·아전(Achon)·현감(Hiengam) 등 고유명사는 발음 나는 대로 영문으로 표기합니다.

포크가 1884년 여행 중 직접 찍은 전라감사와 육방 관속들. 사진 위스콘신대 밀워키캠퍼스 도서관

포크가 1884년 여행 중 직접 찍은 전라감사와 육방 관속들. 사진 위스콘신대 밀워키캠퍼스 도서관

“조선말 구사…영어와 발음 비슷한 단어도 알아”

포크의 일기는 날짜에 따라 장소·시간·기온을 적는 게 기본 구성입니다. 길이 단위인 마일(mile)·야드(yard)·피트(feet)·인치(inch) 등을 비롯해 시간은 분·초까지 기록할 정도로 정밀하기도 합니다. 포크의 일기를 통해 전주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 등을 유추할 수 있는 것도 언제,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를 정확히 기록해놨기 때문이랍니다.

그는 조선의 단위인 리(里)와 푼(分) 등을 언급했고, 사물의 색까지도 정확히 기술해놓았습니다. 나주(Naju)·주막(Chumak)·산성(Sansung)·광주골(Kwangju-Kol)·영남루(Yongam-nu) 등을 그림으로 그리고 방위도 표시합니다.

사실 포크의 조선행은 그리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된 게 아닙니다. 미국이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2년 뒤 포크를 조선에 파견한 게 그 배경입니다. 당시 미국은 양국의 통상조약을 통해 갓 수교한 동양의 낯선 나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포크를 보낸 겁니다.

포크가 일기에 그린 전라감영 선화당. 선화당에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사진 UC버클리대 도서관

포크가 일기에 그린 전라감영 선화당. 선화당에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사진 UC버클리대 도서관

美, '정보 수집' 조선 파견…"고종·명성황후 신임"

포크는 보다 정확한 정보 수집을 위해 조선 팔도를 직접 여행했답니다. 당시 여정에는 조선인 통역과 가마를 메는 보교꾼, 하인 등 18명이 동행했답니다.

외국인인 포크가 한반도를 누빈 데는 당대 최고 권력자인 민영익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포크를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수집의 선구자(HUMINT Pioneer)'라고 평가했을 정돕니다. 휴민트란 사람(Human)과 정보(Intelligence)를 합성한 말로, 사람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뜻합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 전라감영(옛 전북도청 터). 전주시는 한국전쟁 때인 1951년 폭발사고로 소실된 선화당(관찰사 집무실) 등 전라감영 7개 건물을 2020년 10월 복원했다. 사진 전주시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 전라감영(옛 전북도청 터). 전주시는 한국전쟁 때인 1951년 폭발사고로 소실된 선화당(관찰사 집무실) 등 전라감영 7개 건물을 2020년 10월 복원했다. 사진 전주시

음식점 2곳 선정…“9첩·5첩 밥상 준비 중”

포크는 당시 28세 나이에도 고종과 명성황후가 중요한 정치 문제를 의논할 정도로 신임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후 포크는 대리공사직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 도시샤(同志社)대학에서 수학 교수로 재직하다 37세 나이에 죽음을 맞습니다.

전주시는 2018년부터 송영애 교수와 함께 전라감영 관찰사 밥상을 복원해 왔습니다. 포크 일기를 비롯해 전라감영 관찰사를 지낸 서유구의 『완영일록』, 유희춘의 『미암일기』 등 고문서를 참고해 고증을 했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공모를 통해 관찰사 밥상을 판매할 음식점 2곳도 선정을 마친 상태입니다. 상차림은 정찬상(9첩 반상)·소찬상(5첩 반상)·국밥(소고기뭇국·피문어탕국) 등 세 종류 입니다.

'고종이 건청궁에 나아가 미국 대리공사 포크를 접견했다(御乾淸宮 接見美國代理公使福久)'는 기록이 나오는 고종실록 22권. 사진 송영애 전주대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

'고종이 건청궁에 나아가 미국 대리공사 포크를 접견했다(御乾淸宮 接見美國代理公使福久)'는 기록이 나오는 고종실록 22권. 사진 송영애 전주대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

일기에 날짜·장소·시간 정확히 기록…"조리법 유추"

고증을 주도한 송 교수는 조선시대 아전들이 즐기고 동경했던 전라감영의 음식이 일제강점기 이후 아전들이 지주가 되는 과정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전의 음식이 지주로 전달되고, 지주 옆에 있던 참모들이 1940~1950년대 식당을 차리면서 전라감영의 음식 문화가 전주 음식의 뿌리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입니다.

포크의 일기가 전주 음식사에서 갖는 가치는 송 교수의 설명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포크가 기록한 전라감영 관찰사 밥상은 전주의 음식 문화를 알 수 있는 최고(最古)이자 최초(最初)의 기록이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본 조선의 음식문화 연구가 매우 적은 데다 다른 감영 관련 기록에도 음식 내용이 없는 현실에서 더 큰 가치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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