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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문엔 고소인만 있는데?" 고발인 이의신청권 뺏은 이 장면[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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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으르렁대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검찰 측이 딱 한 번 의견 일치를 봤던 적이 있다. 지난달 26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심사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1소위 회의에서다. 테이블엔 형사소송법 245조의7(고소인 등의 이의신청) 개정 조항이 올라와 있었다. 검사들을 비롯한 법조계와 시민사회에서 위헌적 독소조항 1순위로 꼽는 ‘고발인 이의신청권 제한’ 조항이다.

지난 3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대에도 검수완박 법안 중 두 번째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 3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대에도 검수완박 법안 중 두 번째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김남국 민주당 의원=“고발인 빠지는 것에 대한 의견을 좀…”
▶예세민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고발은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경우에 시민단체 등에서 공익 목적으로 고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특별한 사정 없이 고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건 부당하다.”

▶김남국=“예, 고발인을 포함시키는 게 저는 타당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부장님 의견에 동의한다.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저도 김남국 의원님이 말씀하신 그 부분에 동의한다.

이에 민주당 측은 “그러면 고발인은 포함되는 걸로”(박주민) “예, 그렇게 하고 축조심사 하자”(김영배) “예, 고발인은 넣고”(김남국) 등의 말로 동의를 표시했다. 회의 말미에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아까 형사소송법 245조의7, 이건 어떻게 하실 거냐”고 되묻자 소위원장인 박주민 의원은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245조의7은 고발인을 굳이 배제할 필요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삭제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답했다.

실제 민주당이 지난달 27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단독으로 의결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이 조항이 빠져 있었다. 그런데 같은 날 낮 진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대표발의로 본회의에 제출된 수정안에선 이 조항이 다시 등장했다. 민주당이 통과시킨 법안에 애초 박병석 국회의장과 박홍근 민주당,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합의하지 않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는 국민의힘 주장에, 민주당이 “합의문대로 하자”고 맞불을 놓으며 부활한 것이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도 반대한 독소조항인데도 말이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22일 박 의장과 양당 원내대표가 서명한 합의문 문구였다. 합의문 4항엔 ‘범죄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벗어나는 수사를 금지한다(별건 수사 금지). 검찰의 시정조치 요구사건(형소법 197조의3(시정조치요구 등))과 고소인이 이의를 제기한 사건(형소법 245조의7(고소인 등의 이의신청)) 등에 대해서도 당해 사건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속에서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고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장호 국회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은 소위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당초 고소인·고발인,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을 모두 포괄하는 ‘사람’이란 단어를 ‘고소인’으로 바꿔야 한다는 조정의견을 제시했다. “합의문에 고소인으로 특정하셨다. 그 합의문의 정신을 반영해서 고소인으로 특정했다”(지난달 25일 소위) “조 제목은 ‘고소인 등’으로 돼 있는데 지금 (합의문에는) 고소인만 특정해서 이의제기를 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에 이 취지가 이의신청은 고소인만 하는 걸로 저희가 해석하고 거기에 따라 보고를 드렸던 것”(지난달 26일 소위)이라면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는 게 “피해자도 이의신청권자에서 제외할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직전 조항인 형사소송법 245조의6은 경찰의 불송치결정 시 통지 대상에 고소인·고발인,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을 명시하고 있어 서로 모순되는데도 합의문 문구에만 집착한 결과다. 김형두 대법원 법원행정처 차장은 “통지받은 사람은 이의신청할 수 있다고 연결이 되는 건데, 통지받은 사람 중 일부는 이의신청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면 통지는 뭐하러 해 주는 건지 이게 좀 되게 이상하다”고, 예세민 대검 기조부장은 “합의문 내에서도 고발인을 뺀 것이 고발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있는 게 아니라 단순히 고소인이라는 걸 특정하기 위해서 쓴 것이라고 이해가 된다”고 지적했지만, 최종안엔 반영되지 않았다.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검수완박 입법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검수완박 입법을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에서는 “고발인 이의신청권이 사라져도 검사가 송부사건을 검토해 보완수사를 요구하면 된다”(송기헌 의원)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수도권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국가적·사회적 법익을 침해하는 뇌물죄 등의 피해자가 누군지 알려주면 이해라도 하겠다”며 “검사가 재수사를 요청하더라도 경찰이 또 다시 불송치하면 그만인 데다, 검사가 대충 훑고 기록을 반환하면 고발인만 재정신청 등 불복 절차를 밟을 기회조차 잃게 된다”고 반박했다.

18일간의 ‘검수완박’ 정국을 진두지휘했던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당의 원내 현안과 국회의 주요정책 결정 과정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관들이 추인·동의한 것 아니냐”고 정당성을 강변했다. 한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형사사법 제도의 기본법조차 법률전문가의 의견을 배제하고 밀실에서 야합하는 게 정치인들의 권위라면, 국회법이 정한 적법한 심의·의결 절차를 꼼수와 완력으로 전부 무력화시키는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 같다. ‘검수완박’의 주역들은 언젠간 국회에서 자취를 감추겠지만, 그들이 떠난 뒤에도 오염된 제도와 절차를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건 남은 국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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