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부터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사건 공판에서는 정영학 회계사의 녹취 파일을 재생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입니다. 이 사건 심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이준철 부장판사)가 맡고 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3일 공판에서 공개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5인방'의 은밀한 대화를 들어보시죠.
남욱 "정진상이 의형제 맺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2014년 6월 29일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의 통화에서는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직접 최측근으로 인정한 두 명이 등장합니다. 바로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부실장(전 성남시 정책실장)과 김용 전 캠프 총괄부본부장(전 성남시 의원)입니다. 이 둘은 지난해 9월 유 전 본부장이 검찰에 압수수색을 당할 때 수차례 통화한 것으로도 드러났었죠. 공개된 통화는 이들이 유 전 본부장과 김만배씨와 의형제를 맺었다는 내용입니다. 시기적으로는 화천대유 설립(2015년 2월 6일) 8개월 전쯤입니다.
▶남욱=어저께 그 정진상, 김용, 유동규, 김만배 이렇게 모여 갖고.
▶정영학=네 분이서?
▶남욱=네 분이 모여서 일단은 의형제를 맺었으면 좋겠다고 정 실장이 얘기해서 그러자 했고. 큰형님이시니까. 그래서 만배형이 처음으로 정 실장한테 대장동 얘기를 했대요.
이와 관련해 검찰은 "당시 성남시 정책실장 정진상, 성남시의원 김용 그리고 유동규, 김만배 모여 의형제를 맺었다"며 "김만배가 대장동 사업 추진 이야기를 정진상에게 했고 정진상은 2015년 전반기에 다 정리해서 끝내겠다고 한 게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실제 대장동은 2015년 전반기인 6월에 사업자 협약까지 끝났다"고 덧붙였습니다.
검찰은 지난 1월 정 전 부실장을 한 차례 비공개 소환 조사했을 뿐입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넉 달뒤 시행되더라도 대장동 의혹 수사는 검찰이 계속 맡게 된다는 해석은 있습니다. 다만 이미 수사 동력과 검찰의 사기가 꺾인 만큼 사건의 배후를 제대로 밝힐 수 있을지 법조계에선 못미더워하는 분위기입니다.
남욱 "4000억원짜리 도둑질…문제되면 대한민국 도배"
2014년 11월 5일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 대화 내용에선 사업 초기부터 자신들의 행각이 범죄라는 인식을 드러내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이때는 성남도개공이 대장동 민간사업자를 공모하기도 전입니다. 이 시기엔 남 변호사의 대학 후배로 알려진 정민용 변호사와 정 회계사가 추천한 김민걸 회계사가 성남도개공으로 입사하기도 했습니다.
▶남욱=우리도 사이즈 XX 커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 누구냐. 정영학 회계사. 내가 그랬죠.
▶정영학=아닙니다.(웃음)
▶남욱=핸드폰 딱 만들어서 3개월만 비밀리에 통화하고 정리하면 끝이야. 걱정하지마.
▶정영학=저는 수박 겉핥기로. 만든 거는 김만배쪽에서 다 만든 게 맞아.
▶남욱=잘 될 거다. 정민용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 큰 오더를 받았을 수 있어.
▶정영학=아, 네.
▶남욱= 내 생각에 그 오더 받았을 수 있어. 그게 고검장님, 다음에 재○이형.
▶정영학=아아.
검찰은 이 녹음파일을 공개하면서 "정민용 변호사와 김민걸 회계사가 공사에 취업하고 남 변호사가 정 변호사에게 대장동 사업 잘 부탁드린다고 휴대전화를 만들어 주면서 얘기한 부분이 확인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통화 말미에 남 변호사의 유명한 “4000억짜리 도둑질” 발언도 공개됐습니다. 4000억은 대장동 일당이 나중에 2020년 말까지 택지개발 이익으로 배당받은 4040억원과도 일치합니다.
▶남욱=어제 다들 얼큰히 취해서 와갖고 하여튼. 4000억짜리 도둑질하는데 완벽하게 하자. 이거는 문제되면 게이트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도배할 거다. 그렇죠. 형. 4000억짜리 도둑질 표현이 그렇지만.
▶정영학=아 뭐. 그냥 뭐 원래 우리 사업지였지 않습니까.
▶남욱=아아, 그러니까요. 몇 년을 버텼는데.
정영학, 유동규 겨냥 "빚쟁이 다루듯이 하더라"
2013년 10월 4일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의 전화 통화에선 유 전 본부장이 노골적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정영학=제가 지난번에 한번 전화기에 대고 XX한 거 들었잖아요. '유유'가 갖고 오라고 난리 치는 것 들었었단 말이에요. 좀 심하더라. 돈 맡겨놓은 것처럼 빚쟁이 다루듯이 하더라.
▶남욱=신경 써야 할 일이 아니야. 완전 지겹다.
…
▶남욱=LH에서 (대장동 개발) 공모한다는 이야기가 실현 가능성이 있는 건지?
▶정영학=LH에서 하면 성남시랑 전쟁할 것 같은데, 저는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인허가권이 성남시에 있으니까 거기서 등지려고 하진 않을 거예요.
여기서 '유유'는 유 전 본부장을 지칭하는 걸로 보입니다. 검찰은 이 대화에 대해 "유동규 피고인이 남욱 피고인에게 금전을 요구하고 재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