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스모킹건' 으로 꼽히는 정영학 회계사의 녹음파일이 법정에서 공개됐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이준철 부장판사)는 29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정민용 변호사의 공판을 열었는데요.
재판부는 검찰이 증거로 신청한 약 30시간의 통화·대화 녹음파일을 이날부터 다음 주까지 법정에서 틀기로 했습니다. 이날 공개된 6개의 통화 녹음 파일에는 이재명 전 성남시장의 이름이 언급되기도 하고, 시의회와 유 전 본부장에 대한 로비 정황도 담겼습니다. 피고인들은 일단 녹음 파일을 들은 뒤,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추후 강하게 다투겠다는 입장입니다.
◇2012년 8월 18일, 남욱-정영학 통화
정 회계사가 처음으로 녹음한 2012년 8월, 녹취록은 '김수남'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에는 이른바 '대장동 팀'이 본격적으로 결성되기 전 시점이었습니다.
남 변호사는 "(만배 형이) 김수남하고 정말 친하대요" "김수남하고 완전 깐부라고"하며 이야기를 전합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다"고도 합니다.
대화가 이어진 뒤 정 회계사는 "다행"이라며, "힘의 근원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그러자 남 변호사는 "검찰을 붙잡고 있다"고 응수합니다.
이날 법정에서 다른 피고인들의 변호인은 "밑도 끝도 없이 김수남 전 검찰총장 얘기부터 녹음이 돼 있다" "왜 대화 중간부터 녹음을 시작한 것이냐"고 묻습니다. 정 회계사는 "높은 분들 (이름이) 나오고 해서" 녹취를 시작했다고 답했습니다. "일이 좀 잘 될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김 전 총장은 이들 일당과의 관련성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김만배씨 변호인 역시 "김 전 총장이 왜 녹음 파일에 등장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또 검사가 이 파일의 의미에 대해 부연 설명까지 이어갈 경우 "김 전 총장과 연결된다는 뉘앙스를 준다"고 지적했습니다.
◇2012년 9월 7일, 남욱-정영학 통화
이때는 남 변호사 등이 성남도시개발공사 출범을 염두에 두고 시의회 사람들과 접촉을 이어가던 시기입니다. 또 자신들이 뛰어들기 쉬운 개발 방식이 추진될 수 있을지, 성남시청 공무원들의 작은 생각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때입니다.
이 파일에서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의 이름도 등장합니다. 이 전 시장은 당시 대장동에 추진되던 기존 개발 계획을 백지화시키고, 신흥동 1공단 공원화 사업과의 결합개발 방식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시가 내부적으로 검토해본 결과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남욱= "내부적으로 결합(개발방식)이 안 되는 것으로 결론이 나서. 이재명 시장이 '멍청한 공무원 새끼들 때문에 뻘짓했다' 이렇게 얘기를 했대요. 그래서 이 시장 퇴로를 열어줘야 하는데, 그게 시의회다. 시의회가 그것을 반대하고 퇴로를 열어줘야 하는데 시의회가 그걸 하기 전에 뉴스리더(지역 신문)에서 법적으로 결합이 안 된다고 터진대."
대화에 따르면 이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은 한 민주통합당 시의원이었습니다. 이 시의원은 성남도시개발공사 출범이 불발될 경우 '플랜B'를 소개해주기도 하는데요. 게다가 김만배 씨 부탁을 받아 최윤길 전 성남시의장(당시 새누리당 시의원) 선출 과정에서 민주당 표를 몰아줬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이 시의원, 남 변호사에게 이런 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남욱= (OOO 시의원 왈) '의회가 열려서 퇴로를 열어줘야지 가능한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 모든 각을 유동규, 이재명, 최윤길 세 사람이서 처음부터 각본을 짜서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개입을 못 해서 자세히 모르겠지만 더 많은 얘기가 있는 느낌이다'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대충 상황 이해 가시죠, 형님?"
◇2012년 9월 27일, 남욱-정영학 통화
여전히 결합개발 방식이 이들에게는 큰 화두입니다. 정 회계사 표현에 의하면 "성남시청 공무원들이 흔들리는 상황"이었거든요. 게다가 당시 지역 여야 정치권에서는 1공단 공원화 사업과 대장동 결합 개발 사업의 현실성을 두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이 결합 개발 방식 절차에 대해서 대화하던 중, 정 회계사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정영학="이재명 재선 위해서 숙여야 한다면 제 생각에는 OOO 보좌관을 설득해야 돼요"
▶남욱= "우리 돈 받은 사람이 그 사람. 직접 받아서 전달한 사람. OO이 형, 우리 만배 형이랑 친해요, 둘이"
▶정영학= "이번 기획도 이 분이래요. … 이 분이 기획해서 이 사람이 의견 내야지"
이 보좌관에 대한 정 회계사의 기대도 큽니다. 실제로 대화에 언급된 보좌관과 일하던 당시 민주통합당의 모 의원은 1공단 공원화를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정영학= "우리한테 얼마나 좋은 힘이에요. 우리가 이 사람을 어떻게 알겠어 OOO보좌관을"
이들은 1공단 공원화 사업이 빨리 안 될 것 같으니 "시와 먼저 출발하자"는 이야기도 나눕니다. 자신감도 보입니다.
▶정영학= "그렇게까지 하려면 완전 의회가 우리 손에 와 있어야 하는데, 다 잡았잖아요. 양쪽 다. 느낌은."
◇2012년 12월 24일, 남욱-정영학 통화
이제는 유 전 본부장이 등장합니다. "그분이 나오면 나오기가 쉽지 않겠다니까요" "굉장히 거물이에요, 보통 분이 아니더라고요" 라는 대화들이 오갑니다. 검찰은 이들이 유동규에 대해 어떻게 로비할지 논의하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라고 봅니다.
◇2013년 1월 27일, 김만배-정영학 통화
시의회를 상대로 한 로비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김 씨가 최윤길 당시 의원을 의장으로 앉힌 뒤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이 통과되도록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있지요.
두 사람 간 통화에는 김 씨가 "돈을 어디서 어떻게 하겠냐" 묻고 정 회계사가 "최 의장 건은 제가 얘기하겠다, 도와주셔야 한다는 것도 제가 얘기하겠다"는 취지로 답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김 씨는 "최 의장이 섭섭하지 않게만 해 놔라, 최 의장이 결국은 시장하고 (협상해야 한다)"라고 언급합니다.
◇2013년 4월 5일, 김만배-정영학 통화
이 녹음파일에서는 또 다른 시의원도 등장합니다.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과거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인데요.
▶정영학="공사 설립할 때 제일 고생 많으셨던 것도 충분히 알고"
▶김만배= "OO형(전 새누리당 시의원)이 고생했지. 최윤길 의장하고"
▶김만배="형이 말했잖아, OOO하고 한 대화가 뭐냐. 이건 너랑 나랑 OO형 챙겨줘야 하는 부분이야"
이후 남은 녹음 파일에서는 유 전 본부장이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부분도 나올 예정입니다. 정 회계사가 찍은 짧은 영상에서인데요. 이날 정 회계사는 이 영상에 "유동규에게 갖다 줄 돈이다"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남 변호사도 "유 전 본부장이 개인적으로 돈을 융통했으면 하는 얘기를 했고 당시에 흔쾌히 약속했는데, 막상 약속하고 나니 돈이 없어 동업하던 정 회계사 등에게 연락해 상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정 회계사는 녹음파일을 공개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밝혔습니다. "김 씨가 유 전 본부장과의 유착관계로 대장동 개발 사업을 따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신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웠다"는 취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