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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TV 종일 "우린 나치와 싸울 뿐"…82% 푸틴 지지율 이끌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석 달째에 접어들면서 러시아 국영 방송의 보도 양상이 달라졌다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BBC 방송에서 러시아 국영TV를 모니터링하는 프랜시스 스카 분석가는 전쟁 초기 “정부 일에 무관심하라”고 했던 러시아 국영 언론들이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고 텔레그래프에 기고한 글에서 밝혔다.

러시아 국영방송 RT의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국영방송 RT의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스카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인기 있는 시사 프로그램은 쓰러진 우크라이나 군인의 모습이 담긴 거대한 스크린을 갖추고, 이번 전쟁의 상징으로 떠오른 ‘Z’ 표식이 바닥에 새겨진 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국영 TV 로시야 1 인기 프로그램 ‘솔로비요프와 함께하는 저녁’의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 ‘60분’ 쇼의 앵커 올가 스카베예바 등이 그렇다. 또 진행은 주로 친정부 인사가 맡고, 여러 패널이 나오는 형태다.

이들은 방송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세에 무너지고 있고, 서방 언론이 전하는 우크라이나의 승전과 관련한 거짓된 이야기는 우크라이나를 도우려는 애처로운 시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북부 지역에서 퇴각하는 등 고전하는 것에 대해서도 국영 방송 진행자들은 “우크라이나군이 민간인을 방패로 삼으면서 자연스레 작전 기간이 길어지고 있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아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싸우고 있다”고 했다. 한 방송 패널은 “러시아군은 서방엔 존재하지 않는 고귀함으로 상대(우크라이나)를 대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스카는 “이들은 매일 몇 시간씩 러시아의 주요 TV 채널들을 통해 이런 주장을 반복하고 있으며, 전쟁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핑계를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반전시위 참가자를 붙잡는 경찰의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반전시위 참가자를 붙잡는 경찰의 모습. [AP=연합뉴스]

이들 프로그램은 전쟁 초기 러시아 정부의 일에 관심을 쏟지 말고, 일상생활을 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최근엔 “러시아를 파괴하기 위한 서방의 실존적인 위협에 직면했다”며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또 전쟁에 반대하는 인사들을 ‘반역자’로 불렀다.

스카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 중 다수가 이런 TV 프로그램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러시아에 사는 지인인 50대 남성 빅토르는 ‘온종일 TV를 보고 있다. 우리 군은 우크라이나의 나치들과 싸우고 있으며, 서방의 제재를 느끼지 못한다’고 웃으며 말했다”고 전했다. 또 “우크라이나인이 나치라는 주장은 러시아 밖에선 생소한 주장이지만, 약 70%의 러시아인들은 이를 사실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러시아 국민이 외국 언론에 접할 기회는 많지 않다. 강력한 언론 통제가 이뤄지고 있어 외국 언론 매체를 이용하려면 인터넷 우회 접속을 위한 가상사설망(VPN)을 통해야 하지만, 전문가들은 러시아 내 VPN 사용 가능 인구가 전체의 10% 정도라고 추정했다.

러시아 여론조사기관인 레바다 센터는 푸틴 대통령의 4월 지지율이 82%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보다 1%포인트 떨어졌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인 1월 69%보다 13%포인트 올랐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대학 교수는 “전쟁이 길어지고 국제사회에서 한목소리로 러시아를 규탄하며, 푸틴 대통령은 선전전에서도 수세에 몰린 상황”이라며 “혹시나 생길 동요를 막기 위해 더 강력하게 언론을 통제하고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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