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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간 실종해제...뒤늦은 알비나 찾기, 이건 국격의 문제다[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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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나 캅둘디나(35)와 딸 자넬의 과거 사진. [사진 캅둘디나 가족 제공]

알비나 캅둘디나(35)와 딸 자넬의 과거 사진. [사진 캅둘디나 가족 제공]

곽재민 사회2팀 기자의 픽: 카자흐스탄 출신 알비나의 증발

“그날 이후부터 시간이 멈췄다.”

지난 2020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증발’에서 2000년 4월 4일 사라진 여섯 살 딸의 행방을 20여 년째 쫓고 있는 아빠 최용진씨의 얘기입니다. 증발은 딸을 찾는 아버지의 스토리와 아이 실종 이후 무너진 가족의 삶을 조명합니다. 당시 최씨의 딸 준원(현재 28세)양은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뒤 밖에 놀러 가겠다고 나간 이후 자취를 감췄습니다. 준원양이 실종되고 22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버지의 시간은 여전히 딸이 사라진 그 날에 멈춰있습니다.

시간이 멈춰버린 또 다른 가족이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알비나 캅둘디나(35)는 한국에서 10개월째 실종 상태입니다. 2019년 1월 한국에 입국한 뒤 카자흐스탄에 있는 가족과 매일 영상통화를 하던 알비나는 지난해 6월 13일 어머니와의 통화를 끝으로 행방이 묘연합니다.

대한민국에서 4903㎞ 떨어진 카자흐스탄에 사는 알비나의 어머니 아이굴 볼사예바(60)는 중앙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지난 10개월간 단 하루도 딸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면서 “코로나19팬데믹에 집으로 돌아오라고 더 강하게 말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자책했습니다.

지난 6월 실종된 카자흐스탄 출신 알비나 캅둘디나(35)의 어릴 적 모습 [사진 캅둘디나 가족 제공]

지난 6월 실종된 카자흐스탄 출신 알비나 캅둘디나(35)의 어릴 적 모습 [사진 캅둘디나 가족 제공]

가족과의 물리적 거리…연락 끊긴지 13일 뒤 신고

알비나의 행방불명이 길어지는 데엔 아쉬운 대목이 많습니다. 먼저 실종 신고 타이밍입니다. 아이굴은 딸과의 연락이 끊긴 지 13일이 지난 지난해 6월 26일에서야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에 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신고를 했습니다. 실종자의 흔적을 찾기 위해 조사가 집중돼야 하는 초동수사가 늦어진 겁니다. 같은 날(6월 26일)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은 서울 용산경찰서에 알비나의 실종신고를 접수했고, 용산서는 알비나가 경남 진주의 한 주소지로 택배를 배송받은 기록을 확인하면서 경남 진주경찰서에 공조수사를 요청해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알비나 캅둘디나

알비나 캅둘디나

소재 파악 안 됐는데 12일간 실종 해제

경찰의 실수도 있었습니다. 진주경찰서 관계자가 알비나의 주소지에 갔는데 알비나의 고용주가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고용주는 “알비나가 해당 주소지에서 근무를 한 게 맞으며 외출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 내용이 유선상으로 용산서에 전달됐는데 알비나가 실종 상태가 아니라는 게 확인되지 않은 채 실종신고가 해제된 겁니다.
경찰은 12일이 지난 지난해 7월 8일 실종 신고 해제 오류를 인지하고 다시 사건을 재접수해 공조 수사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용산서 관계자는 실종이 해제된 구체적인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이굴 알비나의 어머니 아르굴 볼사예바(60)가 지난 21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아이굴 알비나의 어머니 아르굴 볼사예바(60)가 지난 21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주변인도 불체자 많아 수사 난항

비자 만료로 알비나가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 점도 수사를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휴대전화 사용기록이나 신용카드와 같은 생활 반응 파악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알비나의 주변인 중에도 불법체류자가 많아 알비나 소재 파악을 위한 탐문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경찰 “수사 속도 높이기 위해 인력 증원”

경찰은 최근 알비나 소재 파악을 위해 수사 인력을 추가 투입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빨리 소재를 확인하기 위해 강력팀을 투입했다”면서 “인력이 늘어난 만큼 수사 속도도 높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0개월이 지난 시점에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질책도 이어집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실종팀 수사 수요가 매일 꾸준히 발생하는데 3교대로 근무하면서 하루하루 들어오는 실종 사건들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항변합니다.

우리 국민의 체감은 덜 하지만, 한국의 치안 시스템과 경찰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아이굴도 “한국 수사기관은 2개월이면 누구든 찾아줄 수 있다고 들었다. 딸이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아직까진 한국 경찰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증발한 불법체류자를 찾는데 경찰력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비판을 핑계삼지 말고 하루 빨리 알비나를 찾았으면 합니다. 자식을 찾는 어미의 심정이 먼 나라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을테니까요. 가족의 위기와 위험을 막아내는 게 치안의 출발점 아니겠습니까. 그런 기본에 충실한 모습이 선진 경찰의 실력이라 믿습니다. 알비나 찾기는 대한민국 국격(國格)의 문제인 셈입니다. 경찰의 분발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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