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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 합의 뒤 파기, 국민투표 엇박자…국힘 갈팡질팡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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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호 04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예비 여당인 국민의힘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국면에서 고전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중심을 못 잡은 채 우왕좌왕하고 있고, 치열한 토론으로 당 리스크를 최소화했어야 할 의원총회도 요식 행위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승부수’였다는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의 국민투표 제안도 권성동 원내대표가 미지근하게 반응하는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과 당 지도부가 묘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검수완박 법안의 국회 통과가 목전인데도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는 탄식이 나오는 등 의원들도 혼란스러하는 모습이다. 위기 국면에서 국민의힘의 실력이 밑천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첫 단추가 잘못 꿰졌다.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속도와 내용·시기 모두 부적절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며 날을 세우던 권 원내대표가 지난 22일 중재안에 덜컥 합의한 게 시작이었다. 그는 “소수 정당이 할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중재안에 합의했고 40명 남짓 참석한 의원총회는 별다른 저항 없이 중재안을 추인했다.

이후 여론이 악화되고 윤 당선인 측도 우려를 표하자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는 합의 사흘 만인 지난 25일 여야 합의안을 뒤집었다. 권 원내대표는 “제 판단 미스”라며 고개를 숙였고 “대한민국 사법 체계를 붕괴시킬 게 뻔한 악법에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내부에서조차 “합의 번복으로 투쟁 동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는 자조가 나왔다. 민주당이 “그럴 거면 중재안엔 왜 합의했느냐”며 반격에 나서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의 답변은 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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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당선인 측과 국민의힘도 고비마다 덜컥거렸다. 중재안 합의 뒤 윤 당선인 측이 판을 뒤집으면서 윤 당선인과 권 원내대표의 ‘미스 커뮤니케이션’ 논란이 불거졌다. 장 비서실장이 꺼낸 국민투표 카드를 두고도 엇박자가 이어졌다. 권 원내대표는 “(윤 당선인 측으로부터) 구체적인 연락을 받은 것은 없다. 민주당의 망상을 깨는 차원에서 나온 아이디어 아닌가”라며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장 비서실장은 29일에도 “국회가 빨리 입법 보완을 해줘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당내에선 “다수당인 민주당이 법 개정에 협조할지 의문”이란 회의적인 반응이 다수였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3선 의원은 “당내에서 사활을 걸고 국민투표를 밀어붙이자든지, 아니면 후퇴하자는 식의 명확한 지침도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민주당은 검수완박 법안을 본회의 문턱까지 끌고 왔고 사개특위 구성까지 강행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시작부터 스텝이 엉킨 대응에 대해선 “전략적이지 않다”거나 “즉흥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낮은 카드뿐”이란 박한 평가가 당내에서도 나온다. 지난 27일 국민의힘의 국회 본회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는 민주당의 ‘회기 쪼개기’로 6시간48분 만에 무력화됐다. 필리버스터 후반부에는 민주당 의석은 물론 국민의힘 의석까지 텅 비다시피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애초에 법안을 저지하기 힘든 형식적인 대응책이라 의원들도 기대를 안 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 등 절차적 하자를 문제 삼아 헌법재판소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데 이어 이날 권한쟁의심판청구서도 제출했다. 하지만 사전 심사에만 최대 한 달이 걸리는 등 기약이 없고 그사이 법안은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묘수로 보긴 어렵다. 검수완박을 거부하는 액션을 보여줘야 한다는 차원의 예정된 대응”이란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2020년 공수처법 개정안 논란 때도 국민의힘이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권 원내대표는 29일 문재인 대통령 면담도 요구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평가다.

국민의힘이 헛바퀴를 돌리는 사이 검찰청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30일 검수완박 법안의 다른 한 축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가 예정돼 있지만 이 역시 힘없이 조기 종료될 가능성이 크다. 당내에서도 뚜렷한 타개책이 없는 현실에 대한 탄식이 잇따르고 있다. 성일종 의원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견제 장치인 안건조정위는 휴짓조각이 되고 필리버스터는 짓밟히고 있는 게 힘없는 예비 여당의 실상”이라며 “슬프지만 소수당인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당내에선 일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공개 반발도 터져 나왔다. 윤 당선인 선대위에서 활동했던 윤희숙 전 의원은 전날 “이 정도 물의를 일으켰으면 사회 지도층으로서 조금 더 과하게 책임지는 모습이 어떨까 생각한다. 논쟁하는 모습을 보면 국민이 피곤하다”며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했다. 한 초선 의원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바닥 민심이 심상찮다는 전화를 매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당선인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낮게 나오는 것도 부담이다.

윤 당선인 측은 국회 표결을 거쳐야 하는 한덕수 총리 후보자를 두고도 고심이 깊은 상황이다. 민주당이 한 후보자를 걸고넘어지며 다른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할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도 검토 중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장관 후보자의 경우 각종 의혹과 사퇴 시기는 별개의 문제”라며 “지금 장관 후보 한두 명이 사퇴하더라도 민주당은 또 다른 희생양을 요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민주당은 한 총리 후보자를 포함해 최소 세 명, 국민의힘은 한 후보자를 지키며 최대 한 명 정도의 장관 후보자를 낙마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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