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김명수(대법원장) 거짓 문건 사건, 작년 6월 임성근(전 고법 부장판사) 서면 조사 후 수사 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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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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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검찰 수사의 기조는 2019년 8월 조국 일가 비리 사건 수사를 경계로 '적폐 수사'와 '산 권력 수사'로 나뉜다. 전반부 수사는 죽은 권력에 대한 단죄였고 사법부까지 거침없이 치고 들어갔다. 후반부는 돌아온 '항명' 윤석열 검사가 검을 거꾸로 잡고 밀어붙인 수사였다. 검찰권력과 정치권력이 정면충돌한 충격파는 컸다. 대통령이 정점에 자리잡은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수사 중단과 축소 현상이 대법원장 허위공문서 사건까지 덮치더니 최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란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정의가 지연된, 멈춰진 수사들의 실상을 짚어봤다.

검찰청 캐비닛에서 잠자는 사건들 #임성근엔 "수리하면 국회서 무슨 말 듣겠나",국회엔 "사표낸적 없다" #울산시장 선거,문 대통령 사위 의혹, 성남FC 후원금 사건도 교착 상태 #검수완박법 국회 통과하면 9월부턴 정치 비리,권력형 범죄 손 못대 #평검사 "우리에겐 아직 4개월의 시간이 남아 있다" 결기 드러내기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2월초 임성근 전 고법 부장판사와 '여당의 탄핵' 발언 및 사표 수리 거부 등을 두고 진실 공방을 벌였다. 당시 대화 녹취록 공개로 '거짓말'한 것이 드러나자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근조 화환들이 대법원 앞 인도에 진열됐다. 김성룡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2월초 임성근 전 고법 부장판사와 '여당의 탄핵' 발언 및 사표 수리 거부 등을 두고 진실 공방을 벌였다. 당시 대화 녹취록 공개로 '거짓말'한 것이 드러나자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근조 화환들이 대법원 앞 인도에 진열됐다. 김성룡 기자

김명수,직권남용·허위공문서 작성등 혐의
 지난 19일 창원지검 인권보호관 변필건 부장검사에게 연락했다. 그가 누구냐고? 2020년 9월부터 2021년 7월까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으로 근무할 때 채널A 강요미수('검언유착')사건 주임검사(수사팀장)였다.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9차례나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무혐의 의견을 보고했지만 모조리 묵살됐다. 한 검사장이 지난 6일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자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며 이를 '검수완박' 입법의 근거로 내세웠다. 이에 변 부장검사는 "채널A 사건은 정치권의 수사 개입 배제 방안을 논의하는 소재로 다뤄져야 한다"며 공개 반박했다. 그에게 연락한 건 채널A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또 다른 사건이 궁금해서였다. 그가 지휘했던 이른바 '김명수(63·사법연수원 15기) 대법원장 피고발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부터 보자. 2020년 5월 22일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임성근(58·17기)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표를 내려고 하자 김 대법원장은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지금 (여당이)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2월 초 민주당 판사 출신 의원들이 임기 만료를 앞둔 임 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을 가결(8개월 뒤 헌재서 각하)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공개됐다. 김 대법원장은 "탄핵 발언을 한 적이 없고 임 전 부장판사가 사표를 낸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임 전 부장판사의 녹취록 공개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몇몇 시민단체들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아픈 판사의 사직서를 장기간 수리하지 않았고 국회의 해명 요청에 거짓 서면을 대법원 명의로 작성해 제출했다"며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주임검사인 형사1부 부부장은 지난해 6월 두 차례에 걸쳐 임 전 부장판사와 사표 수리 과정에 등장하는 김인겸(59·18기)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현 서울가정법원장)을 서면조사했다. 한 수사 관계자는 "임 전 부장판사가 형사 재판을 받는 중이라 서면 조사를 원했다"며 "질문지를 10장 보냈더니 답이 10장 왔다"고 전했다. 그는 "둘은 대학 친구인데 사표 제출과 반려 과정에 대한 진술이 달라 두 번 조사했던 것"이라며 "실체적 진실을 상당부분 파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3년 만에 정식으로 열린 제59회 '법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이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3년 만에 정식으로 열린 제59회 '법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본지 취재 결과, 서면진술서에서 주장이 엇갈리는 건 두 부분이다. 임 전 부장판사는 재작년 5월 22일 대법원장 면담 직후 사표를 김 전 차장에게 맡기고 왔다고 진술했다. "사표를 내밀었더니 '이걸 왜 나한테 내느냐'고 하더라. '11층(대법원장실) 올라가서 사표를 어떻게 내느냐'고 했더니 '하기야 법원장이나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사표 낼 때 차장한테 내고 간다. 보관하겠다'고 말했다."
 김 전 차장은 처음엔 사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하다가 이후 "사표를 받은 건 맞지만 법원장을 통하지 않아 정식 사표는 아니다"라고 말을 돌렸다. 임 전 부장판사는 사표를 낼 때 스마트폰으로 찍어둔 사진을 찾아 증거자료로 첨부해 검찰에 냈다고 한다.
부장·부부장검사 지방 좌천,수사 중단
 다른 하나는 임 전 부장판사가 "대법원장을 면담하고 나와 김 전 차장 방에서 차를 마시며 '대법원장이 탄핵 운운하며 사표를 못 받겠다고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반면 김 전 차장은 "그런 얘기를 들은 적 없다"고 부인한 것이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임 전 부장판사의 녹취록에 그대로 들어있다고 한다. 그는 김 대법원장을 만나기 직전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조 처장이 "가급적 사표가 수리되도록 노력하겠다. 다만 향후 시비 소지를 없애기 위해 치료경과 등에 관한 진단서 등을 보완해 달라"고 했다. 이에 김 대법원장 면담 직후 치료확인서, 수술증명서, 진단서 등과 함께 치료경과서를 작성해 법원행정처에 보냈다고 한다.
 검찰 수사팀은 김 대법원장이 국회에 거짓 문서를 낸 것은 맞는데 고의 여부를 규명하는 게 관건이라고 봤다고 한다. 장기간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행위는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 직권남용의 소지가 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문제는 부장검사와 부부장검사가 지난해 8월 지방으로 좌천되면서 수사가 중단됐다는 점이다. 그 이후 사건이 어떻게 됐느냐고 묻자 임 전 부장판사측 관계자는 "검찰청 캐비닛에서 잠자고 있지요"라고 답했다. 후임 수사팀이 기소 여부 결정은커녕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 시기와 방법도 결정하지 않고 있는 건 지연된 정의의 대표적 사례다. 경찰은 더하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불거진 '대법원장 공관 리모델링 예산 4억7000만원 전용' 의혹으로 2019년 고발됐다. 이후 2년 5개월째 서울 서초서는 사건을 깔고 앉아있다.
작년 12월 시한부 기소 중지된 이상직 사건
 수사 방해와 좌천 인사는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줄을 이었다. 문 대통령과 가족 관련만 세 가지다. 2020년 1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수사팀은 송철호 울산시장, 황운하 민주당 의원 등 15명을 기소했다. 수사 결과 청와대는 8개 부서를 동원해 송 시장의 공약 수립까지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모든 게 2014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 "내 가장 큰 소원은 송철호의 당선"이라고 했던 대통령과의 친분에서 시작됐지만 수사는 멈췄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수사팀부터 해체했다. 해당 재판 역시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의 노골적 뭉개기로 15개월 동안 공전했다. 2020년 11월 대전지검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시로 '월성 원전 평가성 조작 의혹 사건' 수사에 착수하자 추 전 장관은 윤 전 총장에 대해 직무배제 결정을 내렸다. 이듬해 6월 사건의 핵심 관련자들을 기소하기 직전, 이두봉 대전지검장은 인천지검장으로 발령났다.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59·수감 중) 의원이 태국의 저비용 항공사 타이이스타젯을 통해 문 대통령의 사위 서 모 씨 가족에게 특혜를 줬다는 권력형 비리 의혹은 전주지검이 수사중이다. 사위의 특혜 취업이 문 대통령에게 건네진 뇌물인지 여부가 핵심인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 석연찮은 이유로 시한부 기소중지됐다. 이재명 전 후보가 연루된 성남FC 후원금 사건은 수사를 막는 성남지청장에 반발해 차장검사가 사직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대장동 특혜 비리 사건도 멈춰서 있다.

서울동부지검 전경.  조강수 기자

서울동부지검 전경. 조강수 기자

 그나마 서울동부지검에서 지난달 말 '산업통상자원부 인사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고발장 접수 이후 3년 2개월 만에 의욕적으로 재수사에 나섰으나 검수완박 입법 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9월께 산자부 박모국장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임기가 남은 산하 8개 공공기관장들을 광화문의 호텔로 불러 자진 사퇴를 압박했다는 게 핵심 혐의다. 동부지검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김은경 전 장관 기소로 마무리하고 한찬식 동부지검장 등 지휘부가 2019년 8월 좌천성 인사를 당해 검찰을 떠난 뒤 올스톱됐다. 민주당은 이 사건도 검수완박 추진 근거로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정치 보복 수사가 시작됐다"면서다.
 만약 이번 국회에서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시행된다면 오는 9월부터 검찰은 여야 국회의원과 정권 고위층 비리의 핵심인 공직자 범죄(직권남용)·선거 범죄를 손대지 못한다. 고작 4개월의 시한부 수사만 남은 셈이다.
"역으로 보면 아직 검찰에 4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 아닌가. 정의의 지연은 이제 범죄다." 어느 검사의 역설적 비유가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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