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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 논설위원이 간다

“발전기금으로 멋진 임대주택 지어 청년들에게 빌려줄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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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소각장 유치 경쟁 불붙은 제주도

주정완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우리 마을에 쓰레기 소각장을 설치해 주세요.”

제주도 서귀포 지역 마을 세 곳이 자발적으로 쓰레기 소각장을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제주도에서 공개 모집으로 추진하는 소각장 입지 선정 사업이다. 지난달 접수를 마감했더니 서귀포시 상예2동과 중문동, 안덕면 상천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유치 신청서를 냈다. 제주도는 오는 6월까지 입지 후보지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벌인 뒤 최종 입지를 결정할 예정이다. 기피시설로 여겨지는 쓰레기 소각장의 입지를 지역 공모로 선정하는 건 제주도는 물론 전국에서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혐오시설에서 선호시설로 탈바꿈
서귀포 3개 마을, 소각장 유치 신청

“지원금 받아 마을 복지확충에 쓰고
소각장 폐열은 친환경 온실에 활용”

기존 시설 투명한 관리로 신뢰 얻어
“제주 성공 사례, 타지역 확산 기대”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에 위치한 제주 환경자원순환센터의 모습. 쓰레기 소각장의 오염물질 배출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서귀포에도 추가로 소각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주정완 기자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에 위치한 제주 환경자원순환센터의 모습. 쓰레기 소각장의 오염물질 배출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서귀포에도 추가로 소각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주정완 기자

소각장 유치를 신청한 마을 대표들은 마을 발전에 획기적인 기회가 될 것이란 확신을 갖고 다른 주민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앞으로 소각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마을 부녀회·노인회·청년회 등이 어떠한 반대 민원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냈다.

강성일 상예2동 마을회장은 “현재 상수도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마을 기반 시설이 열악하다. 마을의 미래를 고민했을 때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소개했다. 김성민 중문동 마을회장은 “소각장 유치 지원금으로 마을기업을 설립하려고 한다. 마을 수익사업도 적극적으로 벌이고 체육시설 등도 확충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우혁 상천리장은 “우리 마을은 중산간 지역이라 농사짓기 불리한 여건이다. 소각장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폐열로 유리 온실을 하면 연료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고 전했다.

유치 경쟁을 벌이는 서귀포 지역 마을 세 곳이 각각 제시한 쓰레기 소각장 입지 후보지 모습. 사진은 서귀포 상예2동.

유치 경쟁을 벌이는 서귀포 지역 마을 세 곳이 각각 제시한 쓰레기 소각장 입지 후보지 모습. 사진은 서귀포 상예2동.

제주도는 지난해 12월 소각장 입지 후보지를 공모한다는 공고를 냈다. 소각장을 유치하는 마을에는 발전기금으로 260억원(공사비의 20%)을 지원하겠다고 제시했다. 이 돈으로 마을 주민들이 원하는 복지시설이나 스포츠 시설, 목욕탕 등을 지어준다는 계획이다. 매년 폐기물 반입 수수료의 10%(약 3억~5억원)를 주민 지원기금으로 제공하는 것도 약속했다. 시골 마을에서는 다시 보기 어려울 정도의 큰돈이었다.

도청 담당 공무원들이 열심히 발품을 판 것도 효과를 봤다. 이들은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설명회를 열고 주민들의 궁금증을 상세하게 풀어줬다. 친환경 신기술로 소각장을 건설하면 오염물질이나 악취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강명균 제주도 생활환경과장은 “마을별로 평균 세 차례 이상 주민 설명회를 진행했다. 소각장은 입지 선정이 가장 어려운 부분인데 마을간 유치 경쟁이 벌어지면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각장 유치하면 발전기금 260억 지원

유치 경쟁을 벌이는 서귀포 지역 마을 세 곳이 각각 제시한 쓰레기 소각장 입지 후보지 모습. 사진은 안덕면 상천리.

유치 경쟁을 벌이는 서귀포 지역 마을 세 곳이 각각 제시한 쓰레기 소각장 입지 후보지 모습. 사진은 안덕면 상천리.

마을 대표들에게 소각장 유치를 신청한 속사정을 들어봤다. 지난 20일 만난 상예2동의 강 회장은 “돈보다는 마을에 기회가 생기는 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1년 전만 해도 마을에 식당·편의점이 하나도 없었다. 식당이나 카페를 하려고 해도 개인이 수억 원의 비용을 들여 상수도를 연결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선거 때마다 마을에 필수 인프라를 설치해 달라고 뛰어다녔지만 20~30년이 지나도록 해결이 안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을의 숙원 사업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제주도의 소각장 입지 선정 공고를 접했다고 한다. 강 회장은 “서울·부산·인천 등은 물론 일본·대만의 소각장도 찾아갔다. 혐오시설이란 우려도 없지 않았지만 악취나 오염물질 관리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소각장 유치로 마을 기반시설을 갖추면 젊은 층이 들어와 다양한 사업을 할 수도 있고 소각장 관련 일자리도 생긴다. 마을 총회에서 두 시간 넘게 의견을 교환한 뒤 압도적 찬성으로 유치 신청서를 냈다”고 전했다.

유치 경쟁을 벌이는 서귀포 지역 마을 세 곳이 각각 제시한 쓰레기 소각장 입지 후보지 모습. 사진은 중문동.

유치 경쟁을 벌이는 서귀포 지역 마을 세 곳이 각각 제시한 쓰레기 소각장 입지 후보지 모습. 사진은 중문동.

중문동의 김 회장은 “역대 마을회장 등 마을 원로들이 이건 꼭 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모아줬다. 소각장에서 나오는 폐열을 비닐하우스 등 마을 수익사업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현재 마을 주민의 60% 정도는 외지인, 나머지 40%가량이 원주민이다. 우리 마을이 좋아서 오신 분들을 껴안고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문관광단지에 많은 호텔이 들어서 있다. 호텔에서 나오는 각종 세탁물을 처리하는 세탁공장을 세우고 소각장 폐열을 이용하는 구상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소각장으로 인한 환경 문제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선 “예전에 다른 지역 소각장에 가봤더니 시설도 깨끗하고 1000도 이상 고열에서 태워버리니까 냄새도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각장 입지 후보지는 마을 주거지역과 상당히 떨어진 중산간 지역이다. 마을 주거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천리의 최 이장은 “다른 마을도 비슷하겠지만 젊은 층이 많이 빠져나가 고령화가 심각하다. 젊은 층이 돌아오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소각장 유치 지원금을 받으면 멋진 임대주택을 지어 청년들에게 저렴하게 빌려주려고 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청년들이 우리 마을로 찾아오면 마을 전체 분위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제주도는 감귤 농사가 중요한데 우리 마을 같은 중산간 지역은 해안가보다 평균 기온이 5도 이상 낮다. 한라봉·천혜향·망고 같은 고소득 작물을 재배할 때 소각장 폐열을 활용하면 친환경적이면서 경제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선 소각장 유치를 우려하는 의견도 없지는 않았다. 최 이장은 “일부에선 ‘지원금 260억원에 쓰레기 천국을 만들거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진정성을 갖고 설명하니 마을 살리기로 분위기가 돌아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무조건 이기고 싶다. 그만큼 소각장 유치에 절실한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냄새도 안 나고 주민 고용도 창출”

이번에 제주도가 추진하는 광역 쓰레기 소각시설(부지면적 2만7000㎡ 이상)은 한라산 남쪽에 위치한다. 예정대로 2028년 소각장 가동에 들어가면 매일 380t의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발생하는 각종 생활 폐기물과 해양 폐기물, 음식물이나 하수 찌꺼기를 모아서 처리하는 게 목적이다. 김영길 제주도 폐기물관리팀장은 “과거에는 주민과의 갈등으로 소각장 입지 선정에만 수년이 걸리기도 했다. 이번에는 6~7개월 만에 입지를 선정하는 것이어서 획기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이미 한라산 북쪽 지역에서도 쓰레기 소각장과 매립시설을 운영 중이다. 2019년 12월 준공한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의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다. 입지 선정에서 준공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곳이다. 반대하는 주민들이 덤프트럭과 차량을 이용해 공사 예정부지 입구를 막아버리는 일도 있었다. 결국 입지 선정 계획을 처음 공고했을 때부터는 7년 3개월, 공사에 들어간 시점부터는 3년 6개월이 걸렸다.

지난 20일 오후 동복리 환경자원순환센터를 찾아갔다. 소각장에선 1000도의 고열로 쓰레기를 태우는 중이었지만 소음이나 악취는 느낄 수 없었다. 내부를 안내한 김은수 환경자원순환센터 팀장은 “소각장 내부에 음압 시설을 갖춰 악취가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는다. 하루 처리 가능 용량은 500t이지만 현재 380t 정도를 처리해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센터 앞 대형 전광판에는 소각장의 오염물질 배출량을 실시간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이산화황(SO2)을 포함한 모든 항목에서 환경 기준치를 크게 밑도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김 팀장은 “주변 마을회관 앞에도 모니터를 설치해 투명하게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센터를 지을 때는 진통이 있었지만 막상 짓고 나니 지역 주민들이 크게 호응하는 분위기”라며 “냄새도 안 나고 지원금도 받고 주민 고용도 창출하는 1석 3조”라고 덧붙였다.

쓰레기 처리시설을 지을 때 거액의 지원금을 인센티브로 내걸고 지역 공모로 추진하는 게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제주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선 번번이 실패에 그쳤다. 환경부와 환경공단은 지난해 전국을 대상으로 공공 폐자원관리시설의 입지 후보지 공모를 진행했지만 무산됐다. 인천 서구도 지난달 말까지 쓰레기 소각장을 포함한 자원순환센터의 입지 후보지 신청을 받았지만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 서구는 오는 6월까지 재공모 신청을 받기로 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이동훈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명예교수는 “제주도의 사례는 쓰레기 시설이 지역 복지와 친환경 자원순환을 통해 주민들에게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쓰레기 소각장에 대해 혐오시설이란 낙인을 지우고 지역을 살리는 선호시설로 바라보는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 제주도가 성공하면 다른 지역에서도 쓰레기 관련 시설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