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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 논설위원이 간다

尹 79학번 동기 배진한 "청문회후 국민이 정호영 아니라면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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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서울대 법대 79학번이다. 그해 10·26 사건이 났고, 이듬해 5·17로 휴교령이 내려졌다. 시대 분위기도 있어 79학번 동기들은 3학년까지 고시 공부와 거리를 두고 술자리를 많이 가졌다고 한다. 그때 이후 자주 어울렸던 과 동기 중 한 명이 배진한 변호사(62)다.윤 당선인에게 출마를 권하고 경제 관련 공약을 조언한 측근 중 측근이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배 변호사는 40년 이상 관계를 맺어온 윤 당선인에게 정치에 뛰어들라고 권했던 얘기를 꺼냈다. 윤 당선인이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맡은 후 좌천성으로 고검을 돌던 때다. 배 변호사는 “당시 국회의원 출마 요청도 있어서 친구들이 권했지만 ‘정치에 뜻이 없고 난 정무 감각도 없다’며 자르더라”며 “'나더러 쓰레기통에 들어가라고?'라는 표현까지 썼다”고 전했다. “(검사) 후배들에게 쪽팔리지 않느냐. 위에 찍히면 옷 벗고 나가는 문화에 예외를 만들겠다”고도 했다고 배 변호사는 덧붙였다. 하지만 검찰총장 때 현 여권과 충돌한 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배진한 변호사가 1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서울법대 동기인 배 변호사는 주식 관련 대선 공약 마련에 참여했다. 장진영 기자

배진한 변호사가 1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서울법대 동기인 배 변호사는 주식 관련 대선 공약 마련에 참여했다. 장진영 기자

 배 변호사는 바이오신약 개발사 헬릭스미스 관련 주주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끄는 등 소액주주 운동을 해왔다. 장기간 주식 등 경제 관련 활동을 해온 그는 대선 때 주식 양도세 폐지 등 윤 당선인의 주식 공약을 마련한 인물로 꼽힌다. 윤 당선인 요청으로 기업 대표이사나 은행장 등을 지낸 50명가량이 참여하는 '실전 경제팀'을 꾸려 논의한 경제 공약을 당선인 측에 제공하기도 했다.

 배 변호사는 윤 당선인의 국정 운영 우선순위가 단연 경제에 있다고 말했다. 하락세에 투자자들이 신음하는 주식을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도 윤 당선인 머리에 확실히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당선인’과 ‘석열이’라는 표현을 번갈아 썼다.

- 정치 참여에 부정적이었다는 윤 당선인이 결국 대선 출사표를 던진 후 어떤 얘기를 나눴나.

“원래 비자금 사건 수사 등을 해봐 경제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이미 경제 위기 상황이라는 점을 알려주려 애썼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려면 경제가 최우선이고 정신 차려야 한다고 했다. (윤 후보가) 빡빡한 대선 일정 때문에 15분밖에 없다더니, 결국 경제 얘기를 꺼내자 1시간 30분가량 듣더라.”

내수·재정·수출 '트리플 악재' 위험 인식, "무조건 경제 우선할 것"
주식양도세 폐지, 공매도 개선해 증시 부양, 기업 규제 혁파 중시
"초기 내각 풀 좁은 과도기, 직접 접촉하면서 참신한 인재 발탁할 것"
"고집 세고 이해해야 수용하는 스타일, 참모들이 적극적 의견 내야"

- 구체적으로 어떤 설명을 했나.

“한국은 코로나로 내수가 무너지고 현 정부의 퍼주기 기조로 재정도 위험하다. 수출도 해외에 돈이 풀렸을 때 얘기지,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힘들어진다. '트리플 악재'가 명백한데, 여기서 살아나려면 경쟁력 있는 글로벌 수출 기업에 대한 규제를 다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기업 수사를 많이 해 기업들이 겁낸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노동 유연성이 없어 외자 유치가 안 되는 만큼 '귀족 노조''악성 노조'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 당선인의 행보가 경제 중심으로 가고 있다고 느끼나.
“있는 그대로 소개하자면, 현 정부가 저질러놓은 똥바가지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리 잘해도 위대한 경제 대통령이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하겠지만 차선을 이룬 대통령이라도 돼야 하니 경제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 당선인 머리에는 첫째로 경제가 있다. 최근 '검수완박' 논란이 한창이지만 당선인이 ‘나는 검사 그만둔 지 오래된 사람이고, 형사사법 제도는 법무부와 검찰이 하면 된다’며 ‘국민들 먹고 사는 것만 신경 쓰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 주식 공약을 조언했다는데,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증권거래세 폐지에서 주식 양도세 폐지로 공약을 바꾼 이유는 뭔가.

“증권거래세는 주주들에게 도움이 안 되고 양도소득세 때문에 왜곡되는 게 많다. 공개적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양도소득세를 시행하면 증시에 있는 이른바 '투명하지 않은 돈'이 빠져나가 증시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대만이나 일본에서 다 본 현상이다. 한국투자자연합도 양도소득세를 없애주면 무조건 찍겠다고 나섰다.”

-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도 거론됐지만 양도소득세를 없애면 ‘부자 감세’ 효과가 커지지 않나.

“대기업 오너가 주식을 팔면 지분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주가가 박살 난다. 차명 주식은 모르지만 공시된 주식은 그래서 안 판다. 또 양도소득세를 부과해 거래가 줄면 거래세가 감소하는 규모가 더 크다. 양도소득세는 어차피 피하려고 하니 주가가 올라 해당 구간이 되면 다 팔아버린다. 그러면 증시는 상승하기 어렵고 오히려 세수만 줄어든다. 나와 의견을 나눈 윤 후보가 결정해 페이스북에 올렸다. 당시 선대위에선 부자 감세로 역공을 받는다고 반대 의견이 많았었다.”

- 공매도 제도 개선과 상장 폐지 요건 강화 등도 대선 공약에 포함됐는데.

“한국은 공매도 세력들이 가장 안전하게 먹기 좋은 시장이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크레디트스위스(CS) 등 공매도 꾼들이 시장을 완전히 유린했다. 공매도를 엄격하게 하는 방안을 시행하면 이런 측면이 안정화되고 증시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아파트값 급등을 놓고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하지만, 증시가 짓눌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매도 세력에 의해 펀드 손실이 커지고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에 세계 증시가 3배 오르는 동안 한국만 못 미쳤다. 증시가 무너지자 돈이 갈 데가 없어 전셋값으로 옮겨갔다. 금리가 낮으니 전세금이 계속 올라갔고 차라리 이 돈 내느니 사자는 흐름이 생겨 수요가 커진 것이다. 지금 부동산은 오히려 고금리로 경매가 쏟아질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 공매도 제도 개편은 관련 규정만 바꾸면 되고, 상장 폐지 요건 강화도 거래소 규정만 손보면 된다.”

- 추경호 경제부총리 후보자 등이 과거 주식 양도소득세 폐지에 반대 입장이었다. 실제 정책은 내각 출범 후 두고봐야 하는 것 아닌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윤 당선인이 원하는 대로 갈 것이다. 그 친구는 자기가 이해하고 자기 걸로 소화가 되지 않으면 절대로 안 하는 스타일이다. 공약도 마찬가지였다. 맞다고 판단하면 약간 과격하게 추진하는 편이다. 경제 관련해선 이미 당선인이 잘 알고 있다.”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 입학 특혜 의혹이 계속 나오는데, 윤 당선인이 ‘부정의 팩트’를 언급한 것은 국민 눈높이와 다르지 않나.

“공정의 문제이기 때문에 분명히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당선인이 친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장관을 시키면서) 친분을 본 것은 아닐 것이고, 뭔가 시켜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거다. 일단 청문회는 해야 하고, 그걸 보고 국민이 판단하라는 의미다. 청문회에서 민주당이 정말 증거를 내놓는다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국민이 볼 때 아니라고 나오면 당선인은 받아들일 것이다. 지방선거도 얼마 안 남지 않았나.”

- 전체적으로 서울대·영남·60대 남성이 많아 참신함과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과도기로 보인다. 여소야대 상황을 고려해야 했을 거고 정치권에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추천하는 인사 중에서도 고르는 여건일 것이다. 지금은 풀이 적지만, 당선인은 앞으로 계속 새 인물들을 접촉할 거다. 겪어보고 사람을 쓰는 편이라 나중 등장시킬 거다.”

- 윤 당선인의 스타일이 강한 편이라 내각이나 참모들과 소통이 잘 될까.

“사시에서 계속 떨어질 때 친구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고 충고했었다. 합격하려면 기출문제부터 보고 출제 경향을 파악한 뒤 맞춤형으로 준비해야 하는데, 그 많은 책을 다 읽으며 스스로 완전히 이해해야 공부한 것이라고 하더라. 우직한 것이고 어떻게 보면 요령이 없는 거다. 이게 그의 인생을 대변하는 모습이다. 자기가 완전히 습득하고 감을 잡아야 하는 스타일이다. 또 고집이 세고, 검찰 업무를 했기 때문에 실무와 효율을 중시한다. 그래서 내각이나 청와대 멤버들이 잘 알 필요가 있다. 그 친구는 ‘대안이 뭐냐’고 자주 묻는데, 주눅 들지 말고 자신 있게 생각을 설득시키면 받아들인다. 친구들 몇이서 당선인과 소통하는 '쓴소리 방'을 만들까 한다. 부적합한 인사를 측근에 두거나 하면 의견을 전하려 한다.”

※ 이 취재에는 황재영 인턴기자가 함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