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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만 논설위원이 간다

교육감 선거는 혼탁한 정치판…직선제 폐지 목소리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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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복마전 빰치는 교육자치

윤석만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교육감 선거의 최대 변수는 뭘까. 인물, 정책, 정당? 모두 아니다. 가장 큰 변수는 단일화다. 정당 개입이 불가능한 구조 탓에 후보가 난립하고, 진보·보수 각 진영에서 누가 단일화를 잘했느냐에 따라 승패가 엇갈린다. 이번 선거도 마찬가지다. 17개 시도에서 100명이 넘는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지만, 관심은 오직 단일화에만 쏠려 있다.

특히 서울은 3차례 동시지방선거에서 진보 단일후보가 모두 승리했다. 2010년 곽노현 전 교육감이 1.1%포인트 차로 신승한 걸 시작으로, 2014년엔 조희연 교육감(39.1%)이 문용린(30.7%)·고승덕(24.3%) 후보를 이겼다. 2018년에도 조 교육감(46.6%)은 박선영(36.2%)·조영달(17.3%)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보수의 분열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그 때문에 보수 진영은 이번 선거에서 일찌감치 조전혁 전 의원을 단일후보로 선정했다. 그런데 또다시 단일화를 하겠다고 한다. 지난 10일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출마로 ‘재단일화’에 속도가 붙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복마전으로 치닫는 교육감 선거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봤다.

서울 단일화 했는데도 또 단일화
교육감 선거비 시도지사의 1.5배
직선제 교육감 중 20명 수사·재판
영국·프랑스·독일 등 교육감 임명

신뢰 잃은 단일화 분란

지난 2월 중도·보수 서울시교육감 후보 5명이 단일화 협약을 맺었지만 2018년 선거 2·3위였던 박선영·조영달 후보가 이탈했다. [사진 교추협]

지난 2월 중도·보수 서울시교육감 후보 5명이 단일화 협약을 맺었지만 2018년 선거 2·3위였던 박선영·조영달 후보가 이탈했다. [사진 교추협]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호텔에선 교육계 원로들과 공교육정상화네트워크·한국교육포럼·국민희망교육연대 등 3개 시민단체가 모여 교육감단일화추진협의회(교추협)을 발족했다. 시민단체별로 각 2명, 원로대표 1명이 평의회를 구성했다. 지난 2월엔 교추협 주도로 보수 후보 5명이 모여 단일화 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조영달 서울대 교수가 단일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독자 출마를 선언했다. 며칠 후(29일) 박선영 전 의원도 “부정 선거를 묵과할 수 없다”며 사퇴했다. 직전 선거 2, 3위 후보의 이탈로 단일화에 빨간불이 들어왔지만 교추협은 조전혁 전 의원을 단일후보로 발표했다. 박 전 의원의 이야기다.

왜 사퇴했나.
“선거인단 투표 40%를 반영하는데 선거인단을 후보 각자 모으기로 한 게 문제였다. 정당 공천처럼 당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론조사처럼 표본 샘플링도 안 된다. 그렇다 보니 주소를 속이고 가짜 서울시민이 대거 들어왔다. 오염된 표본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살됐다.”
 두 후보가 빠진 채 조전혁 전 의원(가운데)이 단일후보로 선출됐다. [뉴스1]

두 후보가 빠진 채 조전혁 전 의원(가운데)이 단일후보로 선출됐다. [뉴스1]

전체 선거인단 28만 명 중 박 전 의원은 3만5000명을 모았다. 각각 10만 명과 8만 명씩 모은 이들도 있었다. 투표 과정에선 명의도용 논란까지 벌어졌다. 서울교사노조에 따르면 선거인단에 가입하지 않은 교사들에게까지 투표 참여 문자가 왔다. 링크를 누르면 온라인 투표 시스템으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차라리 여론조사가 공정하지 않나.
“처음부터 공정성 시비가 없도록 여론조사 100%를 주장했다. 그러나 A후보는 선거인단 100%, B후보는 70%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특정 대학 출신들이 똘똘 뭉쳐 선거판을 좌지우지하려는데, 여론조사는 그게 불가능하다. 선거인단 모집의 위법성을 꾸준히 지적했지만, 오히려 내게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교육감 선거가 혼탁하다.
“나쁜 의미에서 매우 ‘정치적’이다. 지자체장은 군수까지 선거로 뽑지만 교육감은 당선만 되면 지청·부속기관의 인사·예산권이 어마어마하다. 막대한 이권을 놓고 치열하게 싸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정당 개입을 막아놨지만, 오히려 가장 저질적인 선거다. 외부 영향을 받지 않고 고여 있으니 교육계가 썩어버렸다. 망국적이다.”

교육적·민주적이지 못한 선거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출마로 재단일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뉴스1]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출마로 재단일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뉴스1]

교추협은 단일화에서 이탈한 박선영·조영달 후보에 대해 “서울교육감 선거를 분열시키고 풀뿌리 민주주의 기초를 허물어뜨린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선거인단 모집 논란에 대해선 오류를 시인했다. 교추협에 참여했던 이희범 공교육정상화시민네트워크 대표는 “표집이 공정하지 못했던 건 유감이지만, 아예 폐기하긴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했다.

단일화를 주도했던 것과는 별개로 이 대표는 현행 교육감 직선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학부모·교사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고, 선거 때마다 둘로 쪼개져 갈등만 증폭하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후보들이 검은 유혹에 빠지기 쉬운 구조여서 신세 진 이들에게 보은하려다 불법을 저지른다”고 지적했다.

곽노현 전 교육감은 후보 단일화 대가로 2억원을 건네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조희연 교육감은 선거 때 도운 사람을 부정 채용한 혐의로 재판 중이다. 2007년 직선제 도입 후 수사·재판을 받은 교육감만 20명이다. 김동석 한국교총 교권본부장은 “20~3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선거 비용을 마련하다 보면 비리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2018년 지방선거 전체 지출액은 교육감(677억원)이 시도지사(541억원)보다 많았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39억원으로 1위였고, 조희연 교육감은 28억원이었다. 심지어 경기도에서 낙선한 임해규·송주명 후보도 각각 39억, 38억원을 썼다.

교육감 선거 관련 법률 내용과 지방선거 후보 1인당 평균 선거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교육감 선거 관련 법률 내용과 지방선거 후보 1인당 평균 선거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도한 선거비용 때문에 후보들은 정치권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며 “선거가 정치적이니 교육감들의 행보 역시 정치적”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이념화된 단일화 논쟁이 유일한 변수라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교육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못한 선거”라고 비판했다.

인천시교육감 권한대행을 지내고 2018년 선거에 나왔던 박융수 서울대 사무국장은 “교육철학과 역량을 갖춘 사람이 아닌, 선거판에 능한 사람들만 당선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박 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선거비용이 만만치 않다.
“오직 공약으로만 승부하기 위해 출판기념회·기부금·펀딩 없는 3무 선거를 했다. 홀로 60일간 4시간씩 자면서 인천 전역을 돌며 체중이 10㎏ 줄고, 사비만 2억원 넘게 썼다. 보통은 출판기념회를 여는데, 현직 교육감은 보통 1만권 넘게 판다. 1명이 5만원씩 내도 5억원이다. 유력한 후보의 출판기념회는 교육청 직원들이 모른 척하기 어렵다.”

검은돈 유혹하는 막대한 선거비

이 가운데 지난 2월 출판기념회를 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14일 3선 도전을 선언했다. [뉴스1]

이 가운데 지난 2월 출판기념회를 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14일 3선 도전을 선언했다. [뉴스1]

선거비용 보전만으론 부족할 텐데.
“몇억 원은 밑진다. 당선 뒤에도 출판기념회를 한다. 모 교육감은 5권 세트를 13만원에 팔았다는 국정감사의 지적도 있었다. 선거를 도운 이들에게 전리품처럼 인사·승진 혜택을 주다 불법·비리가 판친다. 전임 인천교육감도 선거 빚을 갚으려고 학교 시공권을 주는 대가로 4억여 원을 받았다. 직선제 인천교육감 3명 중 2명이 구속됐다. 대부분 돈과 측근 봐주기 문제다.”
직선제가 민주주의에 부합할까.
“교육감 선거는 깜깜이라 시민들의 뜻이 왜곡된다. 진영과 조직이 만들어낸 단일화 후보가 당선되는 비민주적 선거다. 말로만 정치적 중립이지 대놓고 보수·진보를 내세우며 ‘문재인·윤석열’ 등과의 연관성을 훈장처럼 뽐낸다. 내가 중도 포기한 이유는 이런 선거판에 저런 후보들과 함께 있다는 게 참담하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교육감 선거의 현실은 정치에 깊이 종속돼 있다. 박선영·조영달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각각 윤석열 캠프 교육정책특보와 교육정상화본부장을 맡았다. 경기도의 임태희 후보는 윤석열 캠프의 종합상황실장이었고 현재는 당선인 특별고문이다. 반대 진영의 성기선 후보는 이재명 캠프 선대위 부위원장을 지냈다.

이럴 거면 아예 러닝메이트 제도처럼 정당의 개입을 허용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최종찬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전 건설교통부 장관)는 “교육정책에 가장 영향력이 큰 대통령과 장관, 시도 교육 예산·조례를 담당하는 광역의원 모두 정당인이 될 수 있다”며 “교육감만 정당인이선 안 된다는 논리는 엉터리”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헌법 31조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교육을 정치적 도구로 쓰면 안 된다는 뜻인데, 이를 정당 개입 불가로 해석한 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다수 선진국에선 지자체장이 지방교육까지 책임진다. 미국의 14개 주처럼 직선제인 곳도 있지만, 1950년(29개 주) 이후 꾸준히 감소해 왔다. 선거로 뽑는다 해도 우리처럼 정당 개입을 금하지도 않는다. 애리조나·와이오밍 등 8곳은 정당이 공식 선거운동을 벌이고, 캘리포니아 등 6곳은 투표용지에 정당을 표기하지 않는 대신 선거 과정에서 후보의 소속 정당이 공개된다(『미국 교육감 선출제도의 특징과 시사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