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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현 정부 검찰총장이 野후보로 당선…참 아이러니한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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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는 의미의 ‘검수완박’ 법안 처리 과정과 관련해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합의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의회민주주의에도 맞는 것”이라며 “가능하면 여야 간에 합의하에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녹지원에서 개최한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질문에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이뤄진 양당 간 합의가 잘됐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발언은 박 의장의 검수완박 중재안에 합의했던 국민의힘이 “재논의가 필요하다”며 기존 입장을 바꾼 시점에 나왔다. 문 대통령이 여야 합의를 요구하면서도 박 의장의 중재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을 놓고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중재안 수준의 법안을 단독 처리한다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 말”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힘의 입장 변화에 대한 질문을 받고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저의 입장을 잘 아실 것”이라고 답했다.

청와대 측 “대통령, 사면 가능성 고민 중”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녹지원으로 출입기자단을 초청해 간담회를 갖고 지난 5년 국정운영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문 대통령과 출입기자들이 막걸리잔을 들고 건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녹지원으로 출입기자단을 초청해 간담회를 갖고 지난 5년 국정운영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문 대통령과 출입기자들이 막걸리잔을 들고 건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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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서는 “아마 앞으로 ‘청와대 시대’라는 말이 남을 것”이라며 “혹시라도 우리 역사 또는 청와대의 역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때문에 뭔가 청산한다는 의미로 청와대 시대를 끝낸다고 그러면 저는 그것은 조금 다분히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좀 우리의 성취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시대’에 대한 일각의 부정적 평가를 겨냥한 말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은 종교계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이명박(MB)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임기 내 사면 요청에 대해선 “사면은 결코 대통령의 특권일 수 없다”며 “사법 정의에 부닥칠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국민의 몫으로, 국민의 지지와 공감대가 여전히 우리가 따라야 할 (사면의) 판단 기준”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MB를 비롯해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에 대한 각계의 사면 요구에 대한 질문에 “사면의 요청이 각계에서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 내에선 “사면에 대해 문 대통령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인선에 대한 후회는 없느냐’는 질문도 받았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드렸던 것 외에 추가할 얘기가 있다면 나중에 회고록에서나 해야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면서도 “인사가 때때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번 선거(대선) 과정에서도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했던 점에 대해서는 국민들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조국·윤석열 임명엔 “회고록에서 할 말”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50분부터 80분간 JTBC에서 방영된 손석희 전 앵커와의 특별대담(‘대담 문재인의 5년’)에서도 검수완박 법안, 민주당 대선 패배, 부동산 정책 등 주요 사안에 대한 입장을 조목조목 밝혔다. 문 대통령은 수사·기소 분리론과 관련해 “검찰의 정치화가 문제”라며 “때때로 무소불위 아니었나. 검찰 자신의 잘못에 대해 내 편 감싸기 식으로 해서 민주적 통제의 방안을 고민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했다. 윤 당선인에 의해 지명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검수완박은 반드시 막겠다”고 한 데 대해서도 “장관 후보자로서 지금 진행되는 수사·기소 분리에 찬성하지 않는다든가 이렇게 말씀할 수는 있겠으나 ‘반드시 저지하겠다’ 이런 식의 표현을 쓰는 건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 후보자는 ‘국민을 위해 막겠다’고 했다”는 손 전 앵커 물음에 “편하게 국민을 들먹이면 안 된다”고도 했다. ‘검수완박 법안이 5월 3일 국무회의에 올라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는 “여러 가지 가정적 상황을 담고 있어 똑부러지게 답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민주당 후보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요인을 두고는 “억울한 점을 얘기하자면 저는 한 번도 링 위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며 “우리 당 후보라고 응원할 수도 없었고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패배라고 하는 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현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냈던 윤 당선인의 대선 당선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느냐’는 물음에는 “어쨌든 결과적으로 다른 당 후보가 돼서 대통령에 당선된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겠다. 그분을 발탁한 게 문제였나, 우리 편으로 잘했어야 했었나,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또 지난 대선 때 민주당에서 나온 “문 대통령을 지켜야 된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물음에는 “선거용이죠, 뭐”라며 “누가 와서 지켜주느냐”고 했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선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더 일찍 강력히 했으면 좋았겠다는 후회는 갖고 있다”면서도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구조적 원인을 함께 봐줘야 온당한 평가가 된다”고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의 기자간담회와 대담에 대해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조국 전 장관의 말을 빌려, 일말의 동정심도 들지 않는 그런 퇴장인 것 같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안 보여주려고 지금껏 신비주의를 택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우리 국민께서 문재인 정부의 5년을 그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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