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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공군 강경파 득세…2차 대전 도쿄 비극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85호 21면

어떤 선택의 재검토

어떤 선택의 재검토

어떤 선택의 재검토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영래 옮김
김영사

읽은 적 없어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는, 말콤 글래드웰(59)이 지난해 출간한 책이다. 그동안 주로 사회심리학에 대한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해왔는데(‘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아웃라이어』가 말하자면 그런 책이라는 거다) 이번에는 전쟁, 특히 공군력에 대해 썼노라고 초장에 밝힌다. 하지만 책은 단순한 군사 이야기가 아니다. 위태롭다고 느껴질 만큼 민감한 전쟁 윤리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 공군 초창기 ‘폭격기 마피아(The Bomber Mafia)’라고 불린 장교 그룹이 있었다고 한다. 전쟁 승리가 목적인지 그저 인간 도륙이 목적인지 처참하기만 했던 1차 세계대전과는 다른 2차 대전의 현대화가 이들의 비전이었다는 것. 관련 기술이 뒷받침했다. 블라디미르 레닌과 스위스 연방공대 동기였던 네덜란드 출신 괴짜 엔지니어 칼 노든이 개발한 폭격조준기다. 수백㎞ 속도로 나는 출렁거리는 비행기 안에서, 망원경·볼베어링·수준기(水準器) 등으로 구성된 폭격조준기를 공기 온도 등에 관한 64개 알고리즘을 활용해 조작하면 어느 시점에 폭탄을 투하해야 지상 목표물에 명중할 수 있는지 계산해낼 수 있다. 적의 병참·군수 핵심만 정밀 타격하면 불필요한 민간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유감스럽게도 폭격기 마피아들의 꿈은 실현되지 않는다. 유럽 전장에서는 구름 때문에, 태평양 전쟁 일본과의 대결에서는 당시로는 듣도 보도 못했던 제트기류 때문이었다. 폭격조준기 신봉자였던 헤이우드 핸셀이 좌천되면서 일본의 비극은 시작된다. 강경파 르메이 커티스 역시 전쟁 피해의 최소화를 추구하기는 했다. 하지만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 가차 없이 단호하게 폭격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그 결과가 1945년 3월 9일 무차별적인 도쿄 폭격이었다. 네이팜탄 화재 때문에 6시간 동안 10만 명이 죽었다.

이런 내용은 혼란스럽다. 그렇다고 우리가 핸셀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덜 죽이려 했다고 해서 윤리적인 걸까. 도덕적·윤리적 판단에 공들이면서 책은 엉거주춤해지는 모양새다. 그런 특징을 통해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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