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떻게 한 발 더 진화했나 '도덕적 동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As good as it gets!" 몇 년 전 방영되었던 잭 니컬슨 주연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원제다. 영화도 좋았지만, '도덕적 동물'이라는 어딘지 어색한 제목과 '진화심리학으로 들여다본 인간의 본성'이라는 부담스러운 부제를 가진 로버트 라이트의 책에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도덕적 동물'은 자잘한 흥밋거리와 풍부한 정보에 더해 철학적 혜안까지 제공하는 보기 드문 책이다. '도덕적 동물'은 종종 도발적이다. 일례로 라이트는 스스로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그렇지 않은 여자보다 성적으로 개방적이라고 지적한다. 일부일처제는 대부분의 남자에게 유리한 반면 일부다처제는 대부분의 여자에게 유리하다는 과감한 주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덕적 동물'은 선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떤 주장에 대해서든 다양하고 적절한 인류학적.사회학적.생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통합적 이론체계도 마련하고 있다.

이 책은 사회생물학 또는 진화심리학에 대한 개설서다. 연인.친족.친구 관계와 같이 생활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인간관계를 생물학적 토대 위에서 분석함으로써 인간이 어떻게 도덕적인 동물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얼마만큼 도덕적 동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우리가 당연시하는 혼인과 가족제도, 친지와 친족, 사회적 위계와 갈등이 어떤 원리에 의해 구조화하고 유지되는지 그 생물학적 기원과 특징을 예리하게 포착해냄으로써 도덕과 윤리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 책에서 우리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물론 그의 '성 선택이론', 윌리엄 해밀턴의 '친족선택이론', 로버트 트리버스의 '상호수혜주의 이론' 등 사회생물학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 6백50여쪽에 이르는 분량 역시 그 내용의 충실도를 반영한다. 그러면서도 '도덕적 동물'은 여타의 개설서와 달리 무미건조하기 십상인 인간과 도덕이라는 주제를 때로는 애정소설처럼, 때로는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다룬다.

라이트는 그 누구보다도 진화심리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어딘지 낯설게만 느껴지는 인간에 대한 과학적 탐구에 친숙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이 책이 1994년 뉴욕타임스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것도 이처럼 다양한 요소가 절묘하게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정연교<경희대 철학과 교수>

<사진 설명 전문>
“네가 내 등을 긁어주면 나도 네 등을 긁어주마!”, 침팬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가 휴고의 등을, 휴고는 플로의 등을, 플로는 피피의 등을 긁어주고 있다. 이 장면을 보면 도덕은 인간만의 것이 아님이 확실하다. [사진=휴고 반 라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