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장애인 인권]263만 장애인들 ‘이동·선택·이해할 권리’ 못 누려…평범한 일상조차 ‘고난의 행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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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호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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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버스로 이동하고 있는 지체장애인 황인준씨. 정준희 기자

저상버스로 이동하고 있는 지체장애인 황인준씨. 정준희 기자

대중교통을 이용한 출퇴근, 가까운 편의점에서 좋아하는 음료수 한 잔, 요즘 유행하는 방송 프로그램 시청.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순간들이 유독 절실한 사람들이 있다. 국내 인구 5.1%를 차지하고 있는 등록 장애인 263만명의 얘기다. 혹시 20명 중 1명에 달하는 장애인 비율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럴 수 있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의 99%(262만2950명)는 집에 머물며 살아가는 재가 장애인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전국 등록 장애인 702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63.5%는 ‘장애인 차별이 있다’고 답했다. 따가운 시선부터 비장애인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이들에게는 ‘드문’ 혹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이 이들에게는 차별로 다가왔을 터다. 중요한 건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재가 장애인의 80%는 후천적 질환(43.6%) 혹은 사고(36.4%)로 장애인이 됐다. 다가오는 장애인의 날(4월20일)을 맞아, 그동안 지켜지지 못한 장애인의 인권을 조명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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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할 권리

중증 지체장애인 황인준씨가 활동지도사의 도움을 받아 저상버스 경사로에 오르고 있다. 정준희 기자

중증 지체장애인 황인준씨가 활동지도사의 도움을 받아 저상버스 경사로에 오르고 있다. 정준희 기자

“예전에는 저상버스가 많지도 않고, 버스에 타면 신기한 듯이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되도록 지하철을 탔어요. 요즘에는 저상버스가 많이 늘어나서 버스도 종종 이용하고 있어요. 그래도 아직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는 아니라 항상 여유 있게 미리 나오는 편이에요”

지난 11일 오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황인준(46)씨가 월곡뉴타운 버스정류장에서 저상버스를 기다리며 말했다. 그는 2005년 교통사고로 경추가 손상돼 중증 지체장애인이 됐다. 손가락을 제외하곤 목 아래에 있는 모든 신체 부위가 마비돼 전동스쿠터로 이동한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서 광화문역까지 비장애인이 30분이면 갈 거리를 가기 위해 그는 한 시간 전에 버스 정류장에 나왔다. 저상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고려해서다. 황씨가 기다리는 버스는 150번. 10분뒤 150번 버스가 도착했다. 하지만 저상버스가 아니었다. “그래도 요즘처럼 날씨가 좋을 때는 기다릴만하죠. 날씨가 조금만 춥거나 비가 오는 날 밖에서 오래 기다려야 하면 정말 힘들어요.” 황씨의 생활을 보조하는 장애인 활동지원사 이모(57)씨가 말했다.

10분을 더 기다린 끝에 드디어 150번 저상버스가 도착했다. 이씨가 손을 흔들어 버스를 세우니, 버스 기사가 뒷문 아래에 설치된 장애인 경사로를 내려줬다. 활동지원사 이씨의 도움으로 황씨가 버스에 탑승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분 남짓. 중앙차로에 있는 버스정류장이 넓어 금방 탈 수 있었다. 중앙차로가 아닌 일반 보도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저상버스에 탑승하는 건 더 오래 걸린다고 한다. 버스 정류장이 좁은데다 보도에 있는 구조물과 사람들로 인해 경사로를 내릴 위치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잘 고정되셨어요?” 버스 기사가 물었다. 황씨가 “네, 고정됐습니다”라고 답하니 버스가 출발했다. 황씨는 “오늘은 버스도 신형이고, 기사님도 좋은 분을 만났는데 이런 경우는 드물다”고 귀띔했다. 이날 그가 탄 버스는 장애인 탑승 공간을 비워둔 신형 저상버스로 간이의자에 앉아 있는 승객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됐다. 이후 광화문역. 이씨가 기사에게 내릴 것이라 말하니 다시 뒷문에서 경사로가 내려왔다. “덜컹, 쿵” 경사로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아 생긴 7㎝높이의 단차로 인해 하차 중 전동스쿠터가 덜컹거렸다. 활동지원사 이씨가 없었더라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씨는 “저상버스라고 하더라도 방금처럼 경사로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항상 탈 때나 내릴 때 뒤에서 전동휠체어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황씨의 말대로 저상버스는 늘었다. 2020년 기준 전국 시내버스의 27.8%(9840대)는 저상버스다. 4대 중 1대는 저상버스인 셈이다. 하지만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가 와도 4대 중 3대는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일반인처럼 ‘어디서 몇시에 보자’라는 시간 약속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역 간 격차도 무시할 수 없다. 서울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57.8%에 달하는 반면 광역시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대전(31.3%), 광주(25%), 울산(12.3%) 등으로 낮다. 9개도의 평균 저상버스 보급률은 16.5%에 불과하다. 지하철 등 대체 교통수단이 없는 지역에 사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은 전무한 수준이다.

장애인 콜택시의 전국 평균 대기시간은 48분으로 언제 잡힐지 모른다. 2001년 교통사고로 왼다리와 왼팔 일부를 절단한 지체장애인 이주섭(50·석관동)씨는 “최근에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면 30~40분 정도는 기본으로 기다려야 한다”며 “오전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석하라고 해서 출근 시간에 전동 스쿠터를 타고 지하철을 타긴 힘들 것 같아 2시간 전에 장애인 콜택시를 불렀는데, 배차가 지연돼 5분 늦게 도착했다”고 말했다. 장애인 콜택시 역시 지역 간 격차가 크다. 24시간 운영하는 지자체가 있는가하면 새벽에는 운영하지 않는 곳도, 필요할 때 즉시 부를 수 없고 사전 예약을 해야만 이용할 수 있는 지역도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불편한 건 대중교통만이 아니다. 지체장애인들은 집밖에 나온 그 순간부터 불편함을 경험한다. 가로수, 쓰레기, 불법주정차된 차들로 덮힌 보도블록은 휠체어가 지나가기엔 너무 좁다. 경사로가 없는 음식점도 이용할 수 없다. 3살 무렵 소아마비를 앓고 왼쪽 다리를 절게 된 조온숙(60)씨는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분들이랑 같이 음식점에 가려고 하면 턱이 있는 음식점이 많아 들어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고, 들어갈 수 있더라도 휠체어가 움직일 수 있는 정도로 공간이 넉넉한 식당이 없어 밥 한 번 같이 먹기 힘들다”고 말했다. 비단 지체장애인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 역시 어려움을 겪는 건 마찬가지다. 점자블록이 갑자기 없어지거나 안내가 잘못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장애인의 49%는 외출 시 불편을 겪고 있다. 불편한 이유로는 ‘장애인 관련 편의시설 부족’이 40.8%로 가장 많았고, 이외에 ‘외출시 동반자가 없어서’(29.6%), ‘주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8.6%),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어서’(8.1%)가 뒤를 이었다. “지금 논란이 된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엘리베이터 등 장애인 편의시설 이용자를 보면 10명 중 9명은 비장애인이에요. 이런 시설들이 생기면 결국 비장애인들한테도 도움이 된다는 거죠.” 장애인 활동지원사 이모씨의 말이다.

선택할 권리

시각장애인 김훈씨가 시중 음료에 표기된 점자를 읽고 있다. 중앙SUNDAY는 지난 8일 김씨와 함께 시중 음료 30개의 점자 표기 현황을 분석했다. 윤혜인 기자

시각장애인 김훈씨가 시중 음료에 표기된 점자를 읽고 있다. 중앙SUNDAY는 지난 8일 김씨와 함께 시중 음료 30개의 점자 표기 현황을 분석했다. 윤혜인 기자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상품의 ‘상품명’을 ‘점자’로 표기한 제품은 얼마나 될까. 시각장애인의 선택할 권리는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8일 오전 여의도 이룸센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중도 시각장애인 김훈(50)씨를 만났다. 김씨는 30살 때 안질환으로 시력을 잃었다. 그는 “점자가 표기된 상품 자체가 적을 뿐만 아니라, 어디에 어떤 상품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며 “그나마 점자가 많이 표기된 상품이 캔 음료인데 그 마저도 형식적인 표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어떤지 김씨와 함께 판매되고 있는 음료수 30개의 점자 표기 현황을 분석했다.

캔 음료 표기된 점자. 음료에 표기된 점자마다 방향도 깊이도 제각각이다. 이 음료수에 표기된 점자는 바깥에서 읽어야 정자로 읽힌다. 윤혜인 기자

캔 음료 표기된 점자. 음료에 표기된 점자마다 방향도 깊이도 제각각이다. 이 음료수에 표기된 점자는 바깥에서 읽어야 정자로 읽힌다. 윤혜인 기자

음료 30개 중 상품명이 점자로 표기된 음료는 캔맥주 테라뿐이었다. 점자표기가 되어 있지 않은 상품은 9개나 됐다. 대부분 캔이 아닌 유리, 페트병으로 된 음료였으나 그 중 수입산 캔맥주도 포함돼 있었다. 점자가 있는 21개 음료의 제품명과 맛은 다양했지만, 점자 표기상 이들은 ‘맥주’ ‘탄산’ ‘음료’로 나뉘었다. 그 중 음료는 어떤 맛도 어떤 종류도 다 포함하는 마법의 단어였다. 분류 표준이 없어 탄산음료도, 캔 커피도, 오렌지 주스도 음료로 표기됐다. 칠성사이다·펩시콜라는 탄산으로, 스프라이트·코카콜라·환타의 경우 음료라고 표기될 정도로 기준이 없다.

오렌지주스도 아이스티도, 보리차도, 탄산음료도 모두 음료인 세상에서 시각장애인이 원하는 맛을 직접 고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점자가 있어도 너무 얕아서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음료도 2개 있었다. 음료마다 점자 방향도 위치도 제각각이다. 안쪽에서 읽어야 정자인 음료도, 바깥에서 읽어야 정자인 음료도 있었다. 김씨는 “점자 규격이 다 다르고 표기 방향도 다 달라 음료수 마다 집고 돌려 가며 점자를 읽어야 한다”며 “경험이 적은 시각장애인에게는 외국어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식당가에서 대중화된 키오스크도 시각장애인에겐 장벽이다.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서울시내 공공 및 민간 키오스크 230대를 조사한 결과 공공 키오스크 122대 중 음성안내 및 키패드가 탑재된 키오스크는 75대에 불과했다. 민간 키오스크의 경우 108대의 키오스크 대부분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없는 기기였다. 모바일 앱 이용도 쉽지 않다. 이미지를 텍스트로 읽어주는 기술(OCR)이 개발됐지만, 앱 기획 단계에서부터 장애인의 접근성이 고려되지 않아 몇몇 앱을 제외하곤 시각장애인이 앱의 모든 기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해할 권리

강북구수어통역센터 농통역사 박모(46)씨가 영상전화기를 통해 청각장애인과 수어로 대화하고 있다. 윤혜인 기자

강북구수어통역센터 농통역사 박모(46)씨가 영상전화기를 통해 청각장애인과 수어로 대화하고 있다. 윤혜인 기자

최근 수어통역사가 배치된 사례가 늘었다. 청각장애인 아미(ARMY·방탄소년단 팬클럽)의 요청으로 2019년부터 BTS 콘서트에서는 청각장애인 관객석 앞에 수어 통역사가 배치됐다. 지난달 대선 개표방송에서는 지상파 방송 3사가 모두 수어 통역을 도입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상자로 등장한 윤여정 배우는 수어를 활용해 청각장애인 수상자를 축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각장애인이 실생활에서 마주하는 장벽은 높기만 하다.

지난 12일 강북구수어통역센터에서 농인 박모(46)씨를 만났다. 어릴 때 열이 난 이후 청각장애 진단을 받은 그는 현재 농통역사로 일하고 있다. 수어를 모르는 농인에게 몸짓·표정·문자 등을 활용해 수어의 의미와 상황을 전달한다. 박씨는 “최근 수어통역사가 많이 등장하는 걸 보면 확실히 예전에 비해서 많이 좋아진 것 같다”면서도 “아직은 ‘무대에 방해된다’, ‘그림이 안 예쁘다’등의 이유로 통역사를 멀리, 옆으로 배치해 아쉽다”고 말했다.

최근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등장한 수어통역에 대해서도 해외 사례와 비교해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 그는 미국의 대선 후보 토론에 등장한 수어 통역 화면을 보여주며 “미국의 경우 토론회에 참석한 의원마다 통역사가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4~5명의 말을 1명이 통역해 누가 어떤 얘기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등에서는 농인을 위한 시범방송도 하고, 농인의 의견을 반영해 서비스가 개선되고 있는 반면 역사가 훨씬 오래된 국내 방송사에서는 이런 부분이 잘 바뀌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례적으로 자막 방송 등 청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가 개설되더라도 이용률 저조 등의 문제로 없어지거나, 내부에서 정보 공유가 안 돼 실제 서비스 이용으로 이어지기가 어려울 때도 많아요. 불이 많이 안 난다고 해서 ‘소방서를 없애자, 줄이자’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기본적으로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들인데,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효과나 효율만 생각해 금방 없어지고, 연속적으로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는 걸 보면 속이 상하죠.” 수어통역사가 박씨의 말을 전달하기도 전에 그의 표정에서 안타까운 심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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