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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장애인 인권]직원 70%가 중증 발달장애인 “일하는 게 재미있고 뿌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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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호 11면

[SPECIAL REPORT] 일할 권리-사회적 기업 ‘베어베터’ 

베어베터의 발달장애인 사원이 오븐에서 구운 머핀을 꺼내고 있다. 이 회사의 발달장애인 사원은 물류 관리, 인쇄, 카페, 커피, 플라워, 제과, 매점 총 7개의 사업부에서 일한다. [사진 베어베터]

베어베터의 발달장애인 사원이 오븐에서 구운 머핀을 꺼내고 있다. 이 회사의 발달장애인 사원은 물류 관리, 인쇄, 카페, 커피, 플라워, 제과, 매점 총 7개의 사업부에서 일한다. [사진 베어베터]

발달장애인 직원이 비장애인 직원보다 더 많은 회사가 있다. 2012년 네이버 창업멤버인 김정호 공동대표와 이진희 공동대표가 설립한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다. 베어베터는 장애인 중에서도 의사소통이 어렵거나 지적 능력이 떨어져 취업 경쟁력이 낮은 발달장애인만을 고용한다. 14일 기준 베어베터의 중증 발달장애인 사원은 239명으로 정규직 직원의 70%에 달한다. 2012년 5명의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며 시작한 이 회사는 10년 만에 직원 340여 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장애인의 날을 일주일 앞둔 지난 13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베어베터 본사를 찾았다.

“여기로 배송하시면 돼요.”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베어베터의 물류 관리팀 사무실에서 배송지로 출발하는 직원, 배송을 마치고 돌아오는 직원이 분주히 움직인다. 베어베터는 다른 기업에 명함·교육자료 등의 인쇄물과 쿠키 세트, 커피 원두, 꽃다발 및 근조 화환 등을 제작해 배송한다. 발달장애인이 직접 제작부터 배송까지 담당한다. 주요 배송 수단은 지하철이다. 배송에 나서는 직원에게 목적지를 물으니 “여의도에 있는 ○○기업에 가야해요”라고 명확하게 대답했다.

같은 층 인쇄팀 사무실에서는 명함 인쇄가 한창이다. 디자인은 비장애인 사원이, 출력 용지를 정하고 절단된 명함을 정리하는 건 장애인 사원의 몫이다. 플라워팀에서는 장애인 사원이 근조 화환에 쓰일 리본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리본을 이렇게 가운데에 겹쳐서 여기를 찍어야 해요. 다시 해볼까요?” 업무가 손에 익을 때까지 여러 번의 교육을 거치면 비로소 제 몫을 해낼 수 있다. 2012년 입사해 현재 제과팀에서 일하고 있는 중증 지적장애인 곽모(30)씨는 “쿠키 반죽도 하고, 포장도 하고, 가끔 오븐 업무를 볼 때도 있다”며 “일하는 게 재밌고, 주변 사람들도 좋아해 뿌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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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곳곳엔 발달장애인 사원의 근무를 위한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 사무실 벽면에 붙은 ‘마음 확인’ 안내문이 대표적이다. 베어베터의 장애 사원은 매일 마음 상태를 5점 척도로 체크한다. 이전보다 심리 상태가 악화됐거나 4번(많이 힘들어요), 5번(힘들어서 도움이 필요해요)을 선택하면 관리자와 일대일 면담을 진행한다. 이진희 대표는 “장애 사원들의 정서적인 변화를 빨리 감지해 돌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예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밖에도 직무를 세분화하고,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비장애인 직원을 채용하는 등 장애 사원을 위한 근무 환경을 조성했다.

베어베터는 장애 사원을 고용하기 위해 장애인 연계고용 제도를 활용한다. 장애인 직접 고용이 어려운 기업과 계약해 기업은 필요한 물품을 베어베터에서 구매하고,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감면받는다. 베어베터와 장애인 연계고용을 계약한 기업은 지난해 기준 465개사다.

베어베터 플라워팀에서 일하고 있는 한 발달장애인 사원이 꽃을 손질하고 있다. [사진 베어베터]

베어베터 플라워팀에서 일하고 있는 한 발달장애인 사원이 꽃을 손질하고 있다. [사진 베어베터]

채용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 혼자 출퇴근이 가능해야 한다. 이는 어느 정도 사회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함의한다. 이 대표는 “스스로 이동이 제약받는 상황에서는 직장인이 될 준비를 하기 힘들다”며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가 비단 대중교통 이용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이유”라고 말했다. 둘째, 스스로 일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셋째, 3주간의 직무 훈련 동안 베어베터가 운영하는 7개의 사업부 중 4개 이상의 사업부에서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야 한다. 각 사업부는 ‘규칙을 잘 지킨다’ 등의 평가지표를 통해 절대 평가로 해당 사업부에서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평가한다.

“10년 전에는 ‘발달장애인만 고용해서는 회사 운영이 힘들 거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는 회사도 많지 않았고요. 그런데 지금은 자회사를 설립해 장애인을 고용하는 대기업이 많아졌어요. 지난달에 장애인 사원 모집 공고를 올렸는데 작년에 비해 지원자가 절반으로 줄었더라고요. 당혹스러웠지만 창업 후 10년 만에 느끼는 반가움이었습니다. 그만큼 다른 곳에 기회가 많이 생겼다는 의미니까요.” 창립 10주년을 맞은 이 대표의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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