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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장애인 인권]출근길 경복궁역서 릴레이 삭발…장애인 이동권 20년 만에 주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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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4호 09면

SPECIAL REPORT

5일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장애인 권익옹호활동가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5일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장애인 권익옹호활동가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5일 오전 8시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출근시간대에 인산인해인 역사 안은 철저하게 두 집단으로 나뉘었다. 절반은 발 빠르게 출구로 향하는 사람들, 또 절반은 역사에서 열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전장연의 앰프 소리는 역사 안을 꽉 채웠지만, 발걸음을 늦추거나 멈춘 사람은 없었다. 장애인단체 활동가의 머리카락을 미는 바리깡 소리가 들리자 마치 ‘그들만의 리그’를 보는 듯 힐끗 쳐다보며 지나치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한 시간 남짓 시위를 마친 후 전장연 활동가들은 2차 시위 집결지인 혜화역으로 향했다. 경복궁역은 승강장과 열차 사이가 넓은 관계로 교통공사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이동식 발판을 이용해 열차에 탑승했다. 역사 안에서는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다”는 방송이 나왔지만 별다른 지연은 없었다. 이들의 이동 경로는 비장애인들의 환승 경로와 달랐다. 통상 혜화역 이동 시 환승역인 충무로역에서 내려 4호선 상행선 열차로 갈아타지만, 시위 참여자들은 일부러 하행선에 탑승해 명동역까지 이동한 후 다시 상행선 열차로 갈아타 혜화역에 도착했다. 계단을 이용하면 곧바로 상행선으로의 환승이 가능하나 휠체어가 이동하려면 엘리베이터를 두 번 갈아타야 하고, 휠체어 장애인 여러 명이 동시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기에 택한 차선책이었다.

지난해 12월 3일부터 시작된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는 지난달 30일로 중단됐지만, 전장연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의 장애인 권리보장 예산 편성을 요구하면서 매일 오전 8시 릴레이 삭발시위를 진행 중이다. 이들은 인수위에 2023년도 장애인권리예산 반영과 장애인권리 민생 4대 법안(장애인권리보장법·탈시설지원법·장애인 평생교육법·특수교육법)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하며 장애인의 날인 오는 20일까지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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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장애인 권익옹호활동가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오유진 기자

5일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장애인 권익옹호활동가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오유진 기자

전장연은 2001년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사망사고가 발생한 이후 주기적으로 이동권 투쟁을 이어왔다. 하지만 보수, 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크게 의제화되지 못했다. 2002년에는 이명박 시장, 2015년엔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 내 모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했으나 아직도 100% 설치가 이뤄지지 못한 배경이다. 지난해 갑작스레 이동권 논의가 수면 위로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시위가 “시민의 발을 볼모로 삼고 있다”며 정치권이 반응했기 때문이다. 지하철 시위로 인한 시민들의 불만이 쏟아지자 그제야 대선 TV토론 언급을 시작으로 인수위와의 회동,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일대일 토론 등 주요 의제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동권 투쟁이 시작된 지 20년이 지난 1월에서야 2024년까지 650억원을 투입해 엘리베이터 설치율을 현재 93.6%에서 100%로 끌어올리겠다는 서울교통공사의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전장연을 비롯한 장애인 활동가들이 여타 교통수단 중에서도 지하철로의 이동권 보장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하철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가장 밀접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2019년 서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수도권 교통수단별 수단분담률은 지하철이 41.6%로 1위를 기록했으며,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서도 장애인이 자주 이용하는 교통수단 (중복 응답 포함)에 지하철이 43.7%로 2위를 차지했다. 저상버스나 장애인 콜택시 등 한정된 차량에만 탑승이 가능한 수단과 달리 지하철에는 전 열차에 휠체어 전용 공간이 마련되어 있기에 이용에도 편리하다. 또한 비용이 드는 타 교통수단(버스 1300원, 택시 1500원)과 달리 지하철은 무료 이용이 가능해 장애인 이동권 확보에 있어 포기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다.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아직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이동 경로가 복잡한 역사가 많지만 그럼에도 지하철이 최선의 교통수단인 것은 사실”이라며 “이동권 시위로 만들어진 엘리베이터가 타 교통약자는 물론 비장애인들에게도 편리한 수단이 됐다는 점을 고려해 모두가 더 쉽게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서울시나 서울교통공사 등 지자체만의 노력만으로는 이동권을 완전히 보장할 수 없다”며 “정부가 예산을 확충해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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