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 대통령 사과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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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이 사건발발 55년만에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발언으로 역사의 한페이지에 한 획을 긋게 됐다.

정부수반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발언은 우리로선 사상 처음인데다,지난 1995년 대만 2.28사건에 대한 이덩후이(李登輝)총통,하와이 합병문제에 대한 93년 빌 클린턴대통령,96년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남아공의 드 클레르크 대통령 등에 이어 세계사에서도 드문 일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통령의 사과는 해방정국하 극심했던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과정에서 빚어진 "국가공권력의 과잉진압과 다수의 양민학살"에 대한 정부차원의 첫 입장표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예 논의 자체가 금기시 돼 온 4.3은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힘을 얻어 88년 이후 모든 총선.대선후보의 진상규명→명예회복 공약에 이은 정부의 99년말 '4.3특별법' 제정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텄다.

정부는 결국 우여곡절끝에 지난달 중순 '진상조사보고서'를 확정,"폭도들의 무장폭동"으로만 규정돼 온 4.3사건은 "47~54년까지 입산게릴라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의 희생당한 사건"으로 재정립됐다.당시 유혈사태의 책임문제에 대해서도 보고서는 군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과 미군정의 책임문제를 제기했다.

이념대립을 벗어나 당시 엄연했던 토벌대의 과잉살상행위까지 보고서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1만4천28명의 신고 희생자중 토벌대측에 의한 피해(78.1%),무장대피해(12.6%)를 말하고 있고,10세이하와 노약자.여성의 피해가 33.2%를 차지,"당시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행위가 컸다"고 보고서는 적고 있다.

이를 근거로 그동안 제주도내.외에서는 줄기차게 4.3문제에 대해 정부측의 과거사와의 단절을 요구해왔다.또 노대통령도 지난 대선때 "진상조사결과 국가권력의 잘못이 드러나면 도민에게 사과하겠다"고 말해 그만큼 진상조사는 제주도민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노대통령은 이날 "이제 과거를 정리하는 노력과 함께 제주도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며 그의 '사과'발언이 미래사를 열어가는 새로운 출발점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보고서를 확정하며,정부의 사과를 건의한 '4.3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고건 국무총리)의 나머지 건의사안인 4.3평화공원 조성 등 기념사업 등의 '4.3해법'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그러나 정부 수반의 사과발언으로 앞으로 예상되는 군.경단체 등의 반발도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 4.3명예회복위원회 양조훈 수석전문위원은 "정부대표의 사과는 이념대립의 과거사를 끝내고 한국의 인권수준을 높히는 한편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를 푸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영호 제주4.3유족회 부회장은 "'빨갱이'의 굴레에 갇혀야만 했던 불명예가 이제서야 광명을 찾았다"며 "이제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되돌이키지 않으려는 정부의 노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주=양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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