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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우크라 올인한 사이…르펜, 먹고사는 문제로 맹추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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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45·전진하는 공화국·REM)과 극우파 마린 르펜(54·국민연합·RN)이 프랑스 대통령선거 결선에 오르면서 5년 만에 두 사람의 대선 결선 ‘리턴 매치’가 성사됐다.

11일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10일 치른 대선 1차 투표(개표율 99% 기준)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27.6%, 르펜 후보는 23.4%를 각각 득표했다. 극좌 성향의 장뤽 멜랑숑(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후보가 22%, 극우파인 에릭 제무르(재정복·르콩케트) 후보는 7.1%를 각각 득표해 뒤를 이었다. 투표율은 73.2%로 2002년 71.6%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낮았다.

프랑스 1차 대선 투표 결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프랑스 1차 대선 투표 결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오는 24일 결선투표에서 맞붙을 마크롱과 르펜은 2주간의 막판 선거전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2017년처럼 나란히 결선에 올랐지만 이번에는 마크롱(66.1%)이 르펜(33.9%)에 낙승했을 당시와는 달리 접전이 예상된다. 양자의 격차가 4.3%포인트의 박빙인 데다, 격차가 한 달 전 12%포인트 차이와 비교해 3분의 1 수준으로 좁혀졌기 때문이다.

연임에 도전하는 마크롱 대통령이 결선 진출이 확정되자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실수하지 말자.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프랑스 국제방송인 프랑스24는 “마크롱의 선거캠프는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특유의 ‘공화국 전선’ 효과를 노린다. 프랑스는 공화정의 가치에 반하는 전체주의나 극우 정권이 탄생해선 안 된다는 주류 정치인과 유권자 간 공감대가 있어 주요 선거에서 다양한 정치세력이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뭉쳐왔다. 2002년과 2017년 대선 때 각각 공화국 전선이 형성돼 극우세력을 저지했다.

5년 전보다 마크롱·르펜 격차 줄어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1차 투표에서 낙선한 후보 10명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급선무는 22%를 득표하며 3위에 오른 멜랑숑 후보의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는 것이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멜랑숑이 진보세력의 표를 쓸어담으며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며 “그의 유권자들이 결선투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멜랑숑 후보는 이날 “르펜에게는 어떠한 표도 주어선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도, 마크롱 대통령을 지지하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프랑스여론연구소(ifop)에 따르면 현재 멜랑숑 지지자의 절반가량이 결선투표에서 기권할 의사를 보인다. 마크롱 지지를 선언한 후보는 4.8%를 득표한 발레리 페크레스(우파공화당·LR) 후보 등 한 자릿수대 지지를 받은 후보들이다.

마크롱은 오는 20일 열릴 양자 토론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려 승기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마크롱은 “이번 토론은 프랑스와 유럽의 미래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르펜을 지지해온 북부 블루칼라의 표심 공략에도 나섰다. 프랑스 정치평론가 피에르 후스키는 “르펜 입장에선 토론에 능한 마크롱 대통령을 마주하는 것이 꽤 까다로운 일이 될 것”이라며 “5년 전에도 르펜은 토론에서 졌다”고 말했다.

르펜 후보는 마크롱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외교에 몰두하며 밖으로 도는 동안 경제 문제 등 ‘프랑스 안’을 파고들며 표를 다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가시화한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만 42번, 회담은 세 차례나 했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는 “마크롱 대통령이 외교 문제에 올인하면서 책임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선거 전략으로 삼았는데 상대적으로 유권자에게 먹히지 않은 셈”이라고 분석했다.

결선투표 예상 마크롱 52% 르펜 48%

그 사이 르펜 후보는 프랑스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인플레이션과 유가 상승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 1985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프랑스의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겠다며 20%인 부가가치세(VAT)를 5.5%까지 낮추고, 30세 미만에겐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르펜 후보가 마지막 선거기간에도 연료와 필수품에 대한 세금 인하 등 민생과 인플레이션 대처 공약 등 민생 현안을 집중적으로 들고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대선과 달리 ‘반난민’ 등 극우적 발언도 자제하고 있다. 르펜 후보는 “마크롱을 선택하지 않은 모든 이는 함께해 달라”며 “내가 승리해야 프랑스의 번영과 위대함이 회복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오창룡 고려대 노르딕-베네룩스센터 교수는 “프랑스에서 극우 정당의 부상은 1990년대에 시작됐는데, 르펜 후보가 지난 10년간 국민연합의 극우적 색채를 옅게 만들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도미닉 토머스 CNN 유럽 당당 해설위원은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젊은 층의 불만, 르펜 후보의 러시아에 대한 오랜 지지 행보로 인해 프랑스 대선 결과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Ifop 조사 결과(8일 기준) 결선투표 예상 지지율은 마크롱 52%, 르펜 48%로 각각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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