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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지열 발전과 기술적 상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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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이후 세계인들은 석유나 석탄 등 화석 연료에 대한 경각심을 새로이 더 가지게 되었다. 안 그래도 기후변화와 다른 환경문제들 때문에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이자고 하던 참에,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논의하다 보니 특히 유럽은 생각없이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에 너무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것은 곧 푸틴 정권에 의존하는 것이 되니까 더욱 서둘러서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체 에너지라고 하면 흔히 수력, 풍력, 태양열, 또 원자력을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세계적으로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지열이 있다. 지열이라는 개념 자체는 다들 잘 아실 것이다. 과학자들은 지구 핵의 온도를 무려 섭씨 6000도로 추정한다. 태양의 표면에 맞먹는 온도이다. 그 뜨거움이 지구 표면에까지 나와서 화산이나 온천 등이 생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인류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 더미 위에 앉아 있는 것이다.

전쟁으로 더 필요해진 대체에너지
그 중 전 세계 관심 끄는 게 지열
석유시추 기술 이용하면서 활성화
환경파괴 부작용 고려해 개발해야

그런데 뜨거운 물이나 용암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곳도 간혹 있지만 지구 표면의 대부분은 차갑다. 열은 땅 속 깊이 숨어있다. 그것을 뽑아내려면 땅을 파고 들어가야 한다. 자리를 잘 잡으면 지하 100미터만 가도 상당히 높은 온도가 나온다. 근래에 개발된 기가 막힌 기술은, 필요한 깊이까지 관을 넣어서 땅 속에 물을 주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물은 열을 받아서 아주 뜨거워지고 끓기도 한다. 그렇게 얻은 뜨거운 물이나 수증기를 또 다른 관을 통해서 지상으로 뽑아내면 그것을 가지고 발전기를 돌릴 수 있다. 화석 원료나 원자력을 쓰는 기존의 발전소도 물을 끓여 발전기를 돌리는 것이니 그 부분의 원리는 차이가 없다.

지열 발전의 기본적 아이디어는 오래 전에 나왔고, 이탈리아에서 1904년에 이미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에 국가적 사업으로 연구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별 경제성이 없다는 판단을 받았고, 화산이나 온천이 있는 일부 지역에서나 사용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와서 지열은 친환경 에너지의 유망주로 주목받게 되었다. 지열 발전은 처음 시설만 하고 나면 운영비는 아주 저렴하며, 시간이나 날씨에 좌우되는 태양열이나 풍력과 달리 아주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 자연적 여건이 좋은 아이슬란드나 케냐에서는 이미 총 발전량의 3분의 1 가량을 지열로 생산하고 있다. 지구상 어디에서라도 깊이 뚫고 들어가기만 하면 충분한 지열을 찾을 수 있다. 현재 4.5㎞의 깊이가 기록이라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열 발전에 필요한 굴착 기술이 석유를 파낼 때 쓰는 기술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석유를 뽑기 위해서건 지열을 받기 위해서건 땅 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단순히 구멍을 뚫는 것을 넘어서, 별로 훌륭하지 못한 유전에서 석유를 더 많이 뽑아내기 위해 근래 많이 사용되는 수압파쇄(fracking) 기술은 지열 발전에 아주 유용하다. 그 기술로 땅속의 암반을 깨뜨려서 금이 가게 함으로써 데울 물을 더 많이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기후변화와 환경파괴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석유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적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그들이 애써 개발해온 기술과 지식을 융통성 있게 활용하면서 친환경적인 일을 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석유시추 방식 중에도 수압파쇄야말로 환경운동가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가장 혐오하는 기술이지만, 친환경적인 지열 발전에 응용할 수 있다. 이미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그러한 생각지 못했던 연대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정치와 사회 일반이 마비되는 사태가 많이 벌어지고 있는데, 좀 상상력을 구사하여 접점을 찾아 볼 필요가 있다. 석유시추와 지열 발전이 기술적으로 손을 잡았다는 것은, 그런 식의 예기치 않은 멋진 가능성들이 또 많이 있으리라는 것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수압파쇄에 대한 우려는 가시지 않는다. 깊은 층의 암반을 파괴하면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시되고 있다. 그래서 대규모의 지진이 난 예는 아직 없었지만 광범위하게 지열 발전을 한다고 할 때 어떨지 자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2017년에 포항에서 일어났던 지진이 국내 처음으로 기획된 지열 발전시설 건설을 무리하게 추진했던 데 인한 것이었다고 한다. 발전은 하지도 못하고 사고만 냈다고 그 지역 상당수 주민들은 항의하고 있다. 지진을 제외하고도 다른 의도하지 않은 환경파괴를 일으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열 발전도 조심스레 개발해야 할 것이다. 좋기만 하고 부작용이 없는 기술이란 없으며, 항상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유연성 있게 모든 기술의 장단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판단 없이 개발된 기술은 꼭 예기치 않은 해를 끼치게 된다는 것을 우리 인간들은 이제야 조금씩 배워 가고 있는 듯 하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