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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진정한 공화제를 실현하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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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

1787년 9월 18일 필라델피아 제헌의회를 마치고 나오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새로운 미국이 군주제와 공화제 중 어느 형태를 취하기로 되었는지 질문을 받았다. 그는 “공화제인데, 단 당신들이 그것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럴 것”이라고 답하였다. 우리 한민족은 1919년 4월 11일 공화제를 우리의 국가형태로 결단하였고, 지난 백 년 넘게 흔들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민주공화국으로의 결단을 명실상부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가. 공화국이란 군주라는 존재만 없으면 되는 국가 형태가 아니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공화국이 비군주국일 뿐만 아니라 반독재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 1948년 헌법을 제정하여 우리 국가 형태가 민주공화국임을 다시 확인하였다. 그럼에도 이 헌법 아래에서 군주제에 유사한 독재정치가 자행되었다. 1960년 4월 혁명으로 가까스로 민주정부가 수립되었으나 1년도 못되어 군사쿠데타로 전복되었다. 이후 30여 년간 군사독재가 계속되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결과 성립한 현행 헌법 아래에서 비로소 민간 출신의 대통령에 의한 민주정치가 실험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간의 민주정치 실험기에도 완전한 의미에서 공화제를 운영해왔는가 자문해보면 쉽게 긍정하기 어렵다.

공화제 100년 넘었지만 정착 안돼
독재 유사한 제왕적 대통령제 지속
대통령, 국민에 봉사하는 자리일뿐
새 정부, 민관합동 국정운영에 기대

한 가지 상징적인 예를 들어보자. 경복궁은 조선시대의 정궁이었다. 그 경복궁의 정면에 조선총독부를 지은 일인들은 정문인 광화문이 시야를 가린다면서 옮겨버렸다. 1960년대에 와서 광화문은 복원되었으나 조선총독부 건물은 중앙청이라는 이름으로 건재하다가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5년에 와서야 비로소 철거되었다. 일인들은 또 경복궁의 후원에 조선총독의 관저를 지었다. 경복궁의 앞뜰에 총독부를, 뒤뜰에 총독관저를 두어 우리 민족을 위압했던 것이다. 총독부건물이었던 중앙청이든 조선총독의 관저였던 청와대이든 우리 민족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괴로운 기억을 담고 있다.

공간 문제만이 아니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타민족의 강압적 지배를 상징하는 곳에 폐쇄적인 궁궐 같은 건물을 지어놓고 이곳에 국가 최고권력자가 군림하도록 한 것이 상징하는 바를 곱씹어봐야 한다. 일반 시민사회로부터 절연된 장소에, 철통같은 경계로 둘러싸인 청와대를 보면서 우리 국민은 무슨 생각을 해왔던가. 자기 손으로 선출한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자기와 무관하게 되어버린 왕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지 않았을까. 말로는 권력분립을 외치면서도 왕 같은 대통령 존재 앞에 국회도 사법부도 위축되지 않았던가.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우리 헌법에 근거도 없는 미국식 용어를 수입하여 독재와 유사한 정치행태를 포장하지는 않았던가.

5월 10일 총독관저 자리의 청와대 터가 경복궁의 품,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민족정기를 되찾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정치의 어두운 부분을 일대 혁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과거 왕정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자폐적인 자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을 절대 권력인양 치부한다거나, 그로부터의 거리로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재단하는 우스꽝스러운 언행을 청산해야 한다. 아직도 명심이니, 윤심이니, 심지어 박심이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저들이 과연 우리의 진정한 대표자가 될 수 있을까 의심하게 된다. 자기 자신도 온전히 대표하지 못하는 사람이 우리를 대표할 수 있을까.

공화제에서 대통령은 그저 ‘우리들 중의 한 사람’이며, 나아가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을 유일한 책무로 하는 제일의 공복이다. 공직은 국민의 신뢰가 있어야만 존속되며 신뢰가 미치는 데까지만 권한행사가 정당화된다. 국민이 신뢰를 부여할지 판단하려면, 공직자의 모든 공적 활동이 남김없이 국민에게 노출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관저 또는 집무실에 숨어있으면서, 자신의 대리인을 통해 국민과 소통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통령은 항상 국민 눈에 보여야 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말해야 한다. 대통령의 24시간은 기자들에게 접근 가능하도록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언론이 바로 국민의 눈이요, 귀요, 입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대통령은 일하고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일을 한다는 것은 빈틈없이 국정 현안을 챙기고 국민에게 약속한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하여 관련 당사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대통령은 명령하는 자라기 보다는 설득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새 정부가 민관합동의 거버넌스 체제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것은 큰 기대를 갖게 한다. 당장 국회와의 협력이 수월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민간전문가들의 지혜로 성안된 입법과 정책은 누구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 이미 질적으로 우수한 국민과 우수한 전문가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정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국민의 정부, 국민에 의한 정부,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민주주의 정신을 실천하려고만 한다면, 국민이 기꺼이 힘을 보탤 것이다. 공화제를 온전히 실현하는 길이 거기에 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