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수 읽기」서 LG가 이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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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머리 싸움에서 승부는 결정 났다.
24일 삼성-LG와의 90한국시리즈 1차 전은 뚜껑을 열자마자 LG의 승리가 점쳐졌다.
LG가 삼성에 13-0의 기록적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선수의 패기와 작전 력에 의한 것이지만 삼성벤치의 무 대책에 편승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LG 백인천 감독은 한 경기에서 통상 한 두번 사용하는「치고 달리기」혹은「뛰고 치기」를 무려 여섯 차례나 감행, 삼성 벤치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정동진 삼성 감독은 이러한 LG의 내야 교란작전을 멀뚱멀뚱 지켜만 봤고 포수 이만수 역시 피치 아웃(투구를 타격범위 밖으로 유도하는 것)한번 시도하지 않는 등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백 감독은 파울볼로 인해 그 작전이 드러났어도 똑같은 작전지시를 두 세 차례 연속적으로 되풀이, 삼성 덕 아웃을 비웃는 듯 했다.
삼성은, 치고 달리는 작전을 역이용, 피치 아웃으로 2루에서 뛰는 주자를 잡으면 경기의 .흐름이. 뒤바뀐다는 것이 야구상식 임에도 수수방관이었다.
공격력 또한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삼성 타선은 2, 4회를 빼놓은 나머지 일곱 회를 삼자범퇴로 물러났다.
삼성 타자들은 똑같은 공격 패턴 속에 초구나 2∼3구 째 방망이를 휘둘러 자멸하는 인상이 짙었으며 LG선발 김용수의 사기를 올려 주는 결과를 불렸다.
김은 7회 초까지 25명의 삼성타자를 맞아 모두 77개의 공을 던져 4개의 안타만 허용했다.
이날 삼성은 경기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대타작전도 없이 끌려 다니는 등 경기의 맥을 짚는 감각이라곤 전무, 프로팀이라 부르기가 어색할 정도였다.
LG 백 감독이 4회 초 김용수가 2연속 안타로 휘청거리자 곧바로 마운드에 나가 한 템포 늦춰 실점 위기를 모면한 임기응변은 5명의 투수가 동원돼 21안타로 두들겨 맞은 삼성 벤치의 무모함과 큰 대조를 이뤘다.
수비 및 공격에서 작전다운 작전 한번 펼치지 못한 삼성은 5회 말 투 아웃 주자1, 2루 7-0으로 뒤진 상황에서 3번 타자 김상훈을 상대로 고의 4구를 실시, 만루작전을 펴 관중들을 실소케 했다. 「허약 벤치」의 압권(?)이었다.
이에 앞서 삼성은 1회 말 무사 1, 2루에서 2루 주자 김재박이 4번 노찬엽의 우익수 플라이 때 3루로 돌진, 횡사했을 때 경기의 흐름을 삼성 쪽으로 돌릴 수 있었다.
2루나 3루가 득점하기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김재박의 만용은 LG의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삼성은 이 기회마저 날려 버리고 말았다.
조그만 바늘구멍 하나가 둑을 무너뜨리듯 상대의 실수를 공격의 실마리로 삼지 못한 삼성은 사령탑의 수 읽기 부족과 LG에 비해 의욕과 집념이 뒤떨어진 선수들로 인해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삼성은 페넌트레이스 대 LG전에서 7승13패의 절대적 열세에 있음에도 불구, 누구나 예상했던 성준을 내세워 LG승리의 제물이 되게 했으며 강한 상대에겐 변칙으로 맞서는 작전의 기본조차 모르는 꼴이 됐다. <장 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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