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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재 따른 ‘묘안’은…“계약 때 ‘탈출전략’ 분명히 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16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유원지 중고차 수출단지에 중고차가 가득 차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해 중소기업 수출 품목 가운데 중고차의 피해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1]

지난달 16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유원지 중고차 수출단지에 중고차가 가득 차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해 중소기업 수출 품목 가운데 중고차의 피해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1]

국내 중견기업 A사는 지난해 러시아 기업과 물품 거래 계약을 맺었다. 이후 물품을 받았으나 대금을 못 주고 있다. 계약서상 미국 달러로 줘야 하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미국의 금융제재로 결제를 할 수 없게 돼서다. A사 관계자는 “미국 제재가 불가항력이라는 점을 사유로 책임을 면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태”라고 전했다.

미국 등 주요국의 러시아 제재가 지속되면서 러시아 기업과 계약한 한국 기업의 위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에 법적 대응방안을 미리 마련하고, 추후 모든 국제 계약에는 제재로 인한 계약 중단·해지 조항 등 ‘탈출 전략’을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대한상사중재원이 7일 공동 주최한 ‘대러시아 제재가 국제 계약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방안 좌담회’에서다. 다음은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주요 유형별 대처 방안이다.

“대러 제재는 불가항력 인정받기 어려울 것”

우회 수출, 가능할까=최근 일부 제조업체는 제3국을 경유하는 ‘우회 수출’을 모색하고 있다. 부품 납품 중지 등의 문제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형근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러시아의 경우 이란 제재와 달리 포괄적 제재가 아니고, 상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행정명령에서 금지한 특정 거래가 아니라면 우회 수출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수출 통제에 선진국이 참여하고 미국이 대상 범위를 넓혀 놓은 상태여서 해당 물품뿐 아니라 관련 기술과 일부 부품의 통제 포함 여부를 자세히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금 지급 늦어져도 면책 가능한가=무역업계에선 물품 인도가 지연되더라도 ‘제재’라는 불가항력 사유로 면책이 가능한지에 관심이 높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내에서 제재를 불법으로 보고 있어 불가항력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며 “관할권이 다른 국가에 있을 경우에도 법원마다 불가항력 범위 해석에 이견이 있어 승소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주요국 대러시아 제재 주요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주요국 대러시아 제재 주요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대금 지급 지연에 대한 면책 가능성도 작다는 견해다. 조은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한국 금융위원회는 러시아 비제재 은행에 돈을 송금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며 “실제 비제재 은행인 국내 은행 모스크바지점, 외국 계열 은행 등을 통해 한국에서 러시아로 송금하고 있기 때문에 대금 지급 지연에 대한 면책 입증은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계약상 대금을 미국 달러로 지급하기로 한 경우에 대해선 판단이 엇갈린다. 박효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올 초 영국 고등법원의 중재 판정에서 원래 대금을 미국 달러로 지급하기로 했더라도 현실적 대안인 유로화로 동일 가치 지급이 가능하니 불가항력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가, 상소 판정부는 불가항력 판단 기준이 ‘당해 계약상 의무’이므로 불가항력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며 “계약상 불가항력 조항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도급이 이행 안 할 때는=현재 러시아에서 건설 프로젝트를 수행 중인 B건설사는 유럽연합(EU) 소재 기업인 하도급자가 러시아 제재로 인해 제대로 공급을 하지 않아 고민이다. 이때 도급업자가 러시아 발주자에게 면책을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형근 변호사는 “제재에 동참하는 미국·EU 업체를 중국이나 국내 업체로 대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면책 주장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불가항력 조항 구체적으로 적어야”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국 기업들이 국제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계약상 불가항력 조항을 보다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일방적 계약 해지 및 중단 조항을 추가하라고 조언했다. 또 준거법을 고를 때 사정 변경이나 불가항력에 유리하게 판정하는 관할권을 선택하라고 권고했다.

[자료 대한상의]

[자료 대한상의]

박효민 변호사는 “미국은 평화 국면으로 접어든 후에도 상당 기간 대 러시아 제재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 기업은 계약서에 경제 제재 관련 특칙 조항 등을 넣어 향후 분쟁 발생 시 유리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 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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