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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산업계 ‘엔저 악재’도 옛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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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부산항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부산항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용 소재와 화장품 원료 등을 주로 생산하는 태경그룹은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일본·독일 업체와 주로 경쟁하고 있다. 최근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수출 기업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실제로 최근 태경의 해외 실적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

김해련 태경그룹 회장은 4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기업간 거래(B2B)에서는 당장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납품 업체를 바꾸지 않는다”며 “요즘은 국내 제품도 가격이 아닌 품질로 승부하고 있어 지금 같은 엔저 현상이 큰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엔화 가치, 6년4개월 만에 최저치  

엔저기간 원-엔 환율과 한국 수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엔저기간 원-엔 환율과 한국 수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일본 엔화 가치가 6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의 반응은 비교적 차분한 편이다. 엔저(円低) 악재를 만나 글로벌 영업과 수익성 확보에 ‘노란불’이 켜졌다고 우려하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이날 한국은행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은 122.635엔으로 2015년 12월 이후 6년4개월 만에 달러당 120엔대로 올라섰다. 원화에 대한 엔화 가치도 급락해 100엔당 991.64원으로 1000원을 밑돌았다.

보통 엔화 가치가 떨어질 경우 일본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일본과 경쟁하는 국내 기업에는 악재로 작용한다. 실제로 2013·2015년의 경우 달러화 대비 엔화 가격이 80엔대에서 120엔대로 올라 수출 실적에 영향을 줬다. 특히 석유화학·석유·가전·철강·디스플레이 업종의 타격이 컸다.

‘엔저’에도 차분한 산업계

한·일 주요 품목 수출경합도 지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일 주요 품목 수출경합도 지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하지만 최근에는 엔화 약세가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국내 기업의 기술력 향상으로 수출 경쟁력이 높아졌다. 김해련 회장은 “예전에는 한국 상품이 (일본보다) 품질보다는 가격 경쟁력을 갖고 수출에 성공한 경우가 많았다”며 “이제는 품질 자체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단기 요인으로는 거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과 직접 경쟁을 벌이는 품목이 줄어든 사실도 영향을 미쳤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발표한 ‘동아시아 4개국 수출 경쟁력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기기·기계·자동차 분야에서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경합도 지수는 2011년과 비교해 0.8~6.5포인트 낮아졌다.

수출 경합도 지수는 특정 국가에 상품을 수출하는 두 나라의 수출 구조가 얼마나 유사한지를 분석해 양국의 경쟁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다. 지수가 100에 가까울수록 경쟁 정도가 심하다.

반도체의 경우 수출 경합도 지수가 최근 10년 새 58.3에서 60.7로 2.4포인트 상승했다. 하지만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일본은 시스템 반도체에 주력하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상호 보완적이라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코로나19 사태 등의 여파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로 작용했다. 홍지상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일본도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이에 따른 가격 상승 압력이 높다”며 “엔화 약세를 제품 판매 가격에 그대로 반영하기는 어려운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엔화 약세 장기화 땐 철강·기계 ‘타격’

다만 엔화 약세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일부 업종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찬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금은 원화도 약세를 보이는 상황이라 아직 엔저 영향을 크게 우려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며 “엔저의 악영향은 대외 수요 개선이 미진하고 원화가 강세를 나타내는 경우에 국한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반기까지 엔저가 이어질 경우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거나 확대된 산업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석유·자동차 업종의 경우 수요가 양호해 피해가 제한적일 수 있지만 철강·기계 업종은 투자 유치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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