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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엄마·딸은 '공감 백퍼'한다…오바마가 꼭 읽어보라는 이 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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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계 미국인 아티스트, 미셸 자우너. [문학동네]

한국계 미국인 아티스트, 미셸 자우너. [문학동네]

엄마와 한 번도 안 싸워본 딸도 이 넓은 세상에 없진 않겠지만, 모녀 간의 애증은 창작의 주요 에너지원이다. 한국계 미국인 뮤지션이자 작가인 미셸 자우너(33)에게도 역시 그렇다. 한국인으로 나고 자란 그의 어머니의 미국인 딸로 자라면서 자우너는 “우리 엄마만 왜 이렇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엄마를 암으로 잃고 그는 『H마트에서 울다』(문학동네)라는 책을 써냈다. 엄마와의 갈등과 사랑을 가감없이 그려낸 이 책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추천서로 등극했다. 지난해엔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와 아마존의 ‘올해의 책’ 리스트에도 올랐다. 최근 한국어판을 출간한 그를 이메일로 만났다.

H마트는 미국에서 한국 식자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체인점이다. 미국식 칠리 페이스트가 아닌 ‘gochujang(고추장)’이며, 떡국 떡을 살 수 있는 곳이다. 그의 어머니는 자우너에게 한국계로서의 정체성을 음식을 통해 심어줬다. 병석의 어머니와 소통을 하기 위해 그가 잣죽을 끓이고 유명 한식 유튜버 망치(Mangchi)를 보며 한식을 배운 까닭이다. 지금도 H마트에 자주 가는데, 엄마 생각에 눈물이 왈칵할 때가 많아 책 제목도 그리 지었다. 일각에선 이 책을 두고 한국계 미국인의 가족 스토리라는 맥락에서 “영화 ‘미나리’가 있다면 책엔 『H마트에서 울다』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미셸 자우너의 책. 최근 한국어판이 나왔다. [Japanese Breakfast 홈페이지 캡처]

미셸 자우너의 책. 최근 한국어판이 나왔다. [Japanese Breakfast 홈페이지 캡처]

자우너는 일반 미국인들에겐 인디 밴드의 보컬로도 잘 알려져있다. 밴드 이름은 ‘저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 즉 일식 조찬이다. 어느 여행지에서 먹었던 된장국과 쌀밥 아침식사에 문득 감동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한식 조찬은 없으니 가장 비슷한 일식 조찬을 택한 건 아니었을까. 여하간 그에게 이래저래 아시아의 음식이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이다. 그가 엄마의 뜻을 거스르고 학업 대신 택한 이 밴드는 그래미상 후보에도 오른 실력파다. 그는 “팬데믹이 끝나면 한국에 가서 꼭 공연을 하고 독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강조했다. 밴드 음악은 이 링크(http://japanesebreakfast.rocks/video)에서 볼 수 있다. 일부 뮤직비디오엔 한복도 차용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무대 위의 미셸 자우너. 인디 밴드 '저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보컬로 맹활약 중이다. 지난달 미국 텍사스에서의 콘서트 중. Photo by Jack Plunkett/Invision/AP=연합뉴스

무대 위의 미셸 자우너. 인디 밴드 '저패니즈 브렉퍼스트'의 보컬로 맹활약 중이다. 지난달 미국 텍사스에서의 콘서트 중. Photo by Jack Plunkett/Invision/AP=연합뉴스

한국어판 출간 소감부터 묻고 싶은데요.  
“우선 우리 (한국인) 이모가 이 책을 읽으실 수 있게 돼서 너무 기쁩니다. 사실 한국어판이 나오기 전에 굉장히 긴장을 많이 했어요. 엄마의 모국인 한국의 독자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궁금했거든요. 좋은 소감들을 말씀해주셔서 기쁩니다. 제 이야기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제가 다인종이라는 저의 정체성을 음식 등을 매개로 극복해 나가는 성장기에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저에게 글쓰기는 어린 시절부터 ‘치유의 힘’을 갖고 있었거든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건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영화 ‘미나리’처럼)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조망하며 (미국) 문화의 넓이와 깊이가 더해지는 시기에 아티스트를 하고 있다는 점은 굉장한 행운이죠. 지금까진 한국계 미국인에 관한 스토리가 주류 문화권에선 꽤나 드물었으니까요. 저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제 정체성이 자랑스러워요! 하나의 정체성만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젠 어느 문화권에서든 드물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어판 표지.

한국어판 표지.

최근에도 H마트에 갔다가 운 적 있으세요?  
“매번은 아니지만 꽤 자주 울음이 터져 나와요. 엄마 생각이 나서죠. (한인 커뮤니티가 많은 동네에서) 짜장면을 먹고 있는 아시아계 할머니를 봐도 엄마 생각에 눈물이 나고요. 책을 내고 난 뒤에도 계속 그러네요. 가장 최근엔 대학에 들어가서 (집을 떠나는) 아들을 위해 냉동 만두를 쟁여가는 (한국계)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터져나오더라고요. 그 엄마는 한국식 만두를 아들에게 주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겠고, 그 아들 역시 엄마가 챙겨준 만두를 야식으로 먹으면서 편안함을 느낄 거니까요. 그런 감정을 되새기면 엄마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요. 엄마만이 줄 수 있는 케어가 있는데, 저는 이제 그런 감정을 결코 느끼지 못할테니까요.”  

그의 엄마가 그에게 남긴 명언 중엔 “너의 10%는 너를 위해 남겨두어라(Save 10% of yourself)”라는 말이 있다. 가족과 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며, 자신의 10%는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자우너에겐 일종의 인생 좌우명이 됐다. 그는 이 좌우명에 대해 “나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소중히 하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미셸 자우너의 한국어판 책을 사면 딸려오는 굿즈(오른쪽). 맨 아래 빨간색으로 그의 엄마가 남긴 명언이 인쇄돼있다. 전수진 기자

미셸 자우너의 한국어판 책을 사면 딸려오는 굿즈(오른쪽). 맨 아래 빨간색으로 그의 엄마가 남긴 명언이 인쇄돼있다. 전수진 기자

부모가 되는 건 힘든 일이죠. 모든 엄마가 다 훌륭한 엄마가 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고요.  
“제 주변에도 부모님과의 갈등을 여전히 풀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엄마와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엄마와 서로 사랑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부모님과의 관계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모든 이 세상의 분들에게 위로의 뜻을 보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부모님과 관계가 좋지 않다는 건 심신 모든 면에서 괴롭고도 힘든 일이에요.”  
힘들 때면 어떤 음식을 먹나요?  
“김치찌개와 짜장면 그리고 간장 게장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한식이에요.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건 김치찌개랍니다. 먹을 때마다 마음까지 위로해주니까요. 짜장면은 뭔가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요소까지 있죠. 간장 게장은 글쎄요, 어딜 봐도 그런 독특한 음식은 찾기 힘들잖아요.”
엄마께서 살아계셨다면, 책을 읽고 뭐라고 하셨을 것 같으세요?  
“좋아하시면 좋겠지만 진짜로 모르겠네요. 가끔 이렇게 생각해요. 이 책을 쓴 사람이 다른 젊은 여성이고, 엄마가 책을 읽으신 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얘야 미셸, 이 책을 쓴 저자가 자기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너도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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