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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에서 재도전…스페이스X의 10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82호 20면

리프트오프

리프트오프

리프트오프
에릭 버거 지음
정현창 옮김
서성현 감수
초사흘달

“우린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탱크는 찌그러졌고, 우리는 망연자실했죠.”

2008년 스페이스X가 적도 인근 마셜제도 콰절레인에서 팔콘1의 3차 발사까지 연이어 실패하고, 한달여 뒤 4차 발사를 준비할 때의 얘기다. 스페이스X는 남은 돈이 거의 없었다.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단 6주. 망연자실한 직원들에게 일론 머스크는 다시 도전하자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호손 공장 안에 남은 팔콘1 부품을 긁어모았다. 하지만 그간처럼 로켓 1단을 배에 실어 콰절레인까지 보내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겨우겨우 공군의 협조를 얻어 초대형 수송기 C-17에 실어 로스앤젤레스 공항을 이륙했다. 안도의 한숨은 잠시. 하와이 인근을 날고 있을 즈음 화물칸에서 ‘펑’하고 크고 끔찍한 소리가 났다. 기압 차 때문에 1단부가 맥주캔처럼 찌그러지고 있었다.

책은 신우주시대의 대표 주자 스페이스X의 초기 시절을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그려낸다. 400쪽 넘는 두툼한 책이지만, 숨 가쁜 공상과학 영화를 보는 것처럼 페이지가 넘어간다. 2008년 9월 28일, 마지막 4차 발사 직전까지 위기와 도전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계속 전개된다. 찌그러졌던 1단부를 적도의 뜨거운 무더위 속에서 단 1주일 만에 살려내고 4차 발사에 성공한다. 기사회생(起死回生)이란 사자성어가 이처럼 어울리는 상황이 있을까.

일간지 기자 출신인 저자는 머스크의 예외적 허락을 받아 스페이스X의 초창기 10년 이상을 샅샅이 훑었다. 초기 미 공군의 비협조에 캘리포니아에서 8000㎞ 떨어진 마셜제도까지 가서 발사 시험을 해야 했던 스페이스X의 절박함, 그런 고비고비의 순간들을 사실주의에 입각한 것처럼 그려냈다. 머스크를 비롯해 스페이스X의 핵심 중역들과 독점 인터뷰를 하고, 수십명의 전·현직 엔지니어, 설계자, 기술자들을 만났다. 팔콘로켓의 멀린 엔진 개발을 주도한 톰 뮬러, 이제는 대표이사가 된 그윈 숏웰 등 한 사람 한 사람의 증언이 오롯이 담겼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실패를 두려워 않는 도전’. 머스크의 탱크 같은 열정은 절망과 불안, 회의에 빠진 임직원들에 주술 같은 힘을 불어넣었다. 훗날 그는 “우리에겐 실패도 하나의 옵션이다. 실패가 없으면 제대로 된 혁신도 없다”라는 멋진 표현을 만들어냈다.

책을 읽는 내내, 취약하기 그지없는 한국 우주산업 생태계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숱한 실패와 도전 속에 나로호와 누리호를 만들어온 항공우주연구원 사람들, 대학생 신분으로 우주로켓 회사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를 창업한 신동윤, 국내 유일 하이브리드 우주로켓을 키워가고 있는 이노스페이스의 김수종 등이다. 그들은 머스크보다 더 열악한 환경의 한국 땅에서 또 다른 스페이스X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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