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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 언니 도우려 댓글 쓰자…배민 리뷰창서 기적 벌어졌다

중앙일보

입력

배달 애플리케이션으로 음식을 주문한 손님들이 남긴 후기에 ‘맞춤형 댓글’을 남긴 사장님의 사연이 알려졌다.

김미정씨가 손님에게 남긴 댓글. [네이버 카페 캡처]

김미정씨가 손님에게 남긴 댓글. [네이버 카페 캡처]

지난달 자영업자들의 모임인 네이버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배민 리뷰 1편’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자신이 최근 건강이 좋지 않은 언니를 대신해 언니가 운영하는 가게의 리뷰 댓글을 적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손님들과 직접 댓글로 소통한 내용을 캡쳐해 공유했다.

배민 리뷰 댓글에 시로 화답…단골 늘어 

공유한 캡처에는 “꽃바람 들었답니다. 꽃잎처럼 가벼워져서 걸어요. 뒤꿈치를 살짝 들고. 꽃잎이 밟힐까 새싹이 밟힐까. 사뿐 사뿐걸어요.....제가 제일로 좋아하는 봄 시 랍니다^^”“만족스러운 식사 하신 거 같아 기분이 좋네요~^^ 나태주 시인의 〈행복〉이랍니다. 이 정도라면, 우리 모두 행복한 사람이지 않나 싶네요”등의 댓글이 적혀 있었다. 이 글을 본 카페 회원들은 “댓글 다는 학원이라도 다니시는 건지?”“리뷰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쓰신다고 하니 대단하다”“한 수 배워갑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김미정씨가 손님에게 남긴 댓글. [네이버 카페 캡처]

김미정씨가 손님에게 남긴 댓글. [네이버 카페 캡처]

이 글을 올린 주인공은 부산에 사는 주부 김미정(52)씨다. 김씨의 언니는 경상남도 김해에서 프렌차이즈 죽 집을 10년째 운영해오다 지난해 4월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김씨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식당 운영은 이모님께 맡기면 되지만 배민 리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고 자진해서 돕게 됐다”며 “의무처럼 하기보다는 손님과 소통한다는 느낌으로 자유롭게 쓰려고 했다. 정성스럽게 쓰다 보니까 단골도 늘고 개인적으로 뿌듯했다”고 말했다.

음식 평 없이 별점만 남기던 손님들도 김씨의 정성스러운 댓글을 보고 리뷰를 남기기 시작했다. 김씨는 “한 손님은 제가 긴 댓글을 단 것을 보고 ‘지난 번에 댓글로 남겨주신 요리법대로 죽에 치즈를 넣어보려고 했는데 속이 안 좋아서 다음부터 그렇게 먹으려고요’라고 리뷰 글을 수정하셨다”고 소개했다.

하루 3시간씩 댓글…매출도 2배로  

김씨는 하루에 5~6건의 댓글을 남기고 있다. 댓글 하나를 작성하는데 평균 20분 가량 걸린다. 댓글을 남기기 전 이 손님이 전에 남겼던 리뷰들을 모두 찾아 읽는다고 한다. 손님 아이디를 최소한 2번 이상 언급하는 것도 김씨만의 댓글 작성 원칙이다. 김씨는 “이전에 우리 지점에서 시켜 드신 손님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데 남긴 글을 보면서 주문한 분이 아이 엄마인지, 어떤 상황이신지 등을 파악한 뒤에 그분께 힘이 될 만한 시를 선물한다”고 말했다.

‘정성 댓글’ 덕분인지 매출도 늘었다. 김씨가 댓글을 달기 시작한 지난해 4월을 기점으로 매출은 2배가 됐다. 김씨는 “코로나 시국이라서 죽 집 매출이 늘어난 것일 수도 있지만, 확실히 단골들이 더 많이 보이고 손님들도 댓글에 답하는 리뷰를 많이 남겨준다”고 말했다. 김씨는 부산에 머물면서 배민 리뷰를 관리하고, 손님들로부터 식당 관련 요청이 들어오면 가게에 전달하는 식으로 일을 돕고 있다. 다행히 김씨의 언니는 지금은 퇴원하고 김해에 있는 자택에서 건강을 회복 중이다.

손님들 보며 언니 생각…댓글 쓰며 위로 받기도 

김씨가 처음부터 모든 리뷰에 긴 댓글을 달 생각을 했던건 아니다. 김씨는 “죽 집은 아무래도 편찮으신 분들이 많이 온다. 처음 내가 리뷰 일을 시작했을 때 언니가 아팠었고, 그러다 보니 저절로 좋은 기운 나눠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댓글을 적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미정씨가 남긴 댓글을 본 손님의 반응. [네이버 카페 캡처]

김미정씨가 남긴 댓글을 본 손님의 반응. [네이버 카페 캡처]

긍정적인 댓글을 적다 보니 김씨의 삶도 전과는 달라졌다고 한다. 김씨는 “어떤 손님이 어머니가 항암 치료를 받고 계셔서 죽을 보낸다는 리뷰를 남겼는데, 거기에 댓글을 달면서 ‘내 마음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그분과 같은 마음으로 어머니의 회복을 바란다고 적었다. 이렇게 누군가를 위로하면서 저 역시도 큰 위로를 받았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일상을 나누다 보면 위로를 받게 된다”고 전했다.

“음식집이라고, 음식 댓글만 달라는 법 없어”

김씨는 최근 온라인상에서 문제가 되는 ‘갑질 리뷰’에 대해서는 안타깝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씨는 “종종 반복적으로 낮은 별점을 남기는 손님들을 보게 되는데, 그 분 리뷰를 타고 들어가 보면 사장님들이 댓글로 10명 중 9명은 다 ‘죄송하다’고 말하더라. 그런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인 걸 아니까”라고 말했다.

김씨는 앞으로도 장문의 댓글을 남길 생각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자기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요. 음식집이라고 꼭 음식 댓글을 달라는 법은 없잖아요. 오늘 하루 있었던 것, 밖에서 잠깐 본 것을 나눈다고 생각하면 어렵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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