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쿠킹] 소식가도 두 그릇 먹게 하는 매력, ‘들기름 소금 국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0년간 프렌치 가스트로 펍 ‘루이쌍끄’의 오너 셰프로 받은 사랑을 뒤로하고, 2019년 돌연 “평생 해보고 싶었던” 국숫집에 도전했다. 프랑스와 스페인 유학 시절 배운 유럽 면 요리에 이어, 우리나라 전국 곳곳은 물론이고 일본,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지를 다니며 면을 공부했다. 면 요리 전문점 ‘유면가’에 이어, 현재 요리연구소 ‘유면가랩’을 운영 중이다. 그동안 면을 공부하며 알게 된 면 이야기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레시피를 소개한다.

이유석의 면면면 ⑧ 들기름 소금 국수 

들기름 막국수를 유행시킨 고기리 막국수의 들기름 막국수. 김성룡 기자

들기름 막국수를 유행시킨 고기리 막국수의 들기름 막국수. 김성룡 기자

4년 전 이맘때로 기억한다. 막국수를 공부하기 위해 한창 메밀 업체를 찾아다니던 무렵, 한 메밀 업체의 직원분이 식당 한 곳을 추천해줬다. “서울 올라가는 길에 한 번 들러보세요”라는 말과 함께. 마침 출출하던 터라 운전대를 잡고 그 식당으로 향했다. 도착한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는데, 30분 정도 줄을 선 끝에야 국수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다. 그때 먹은 막국수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과장해서 말하면 들기름 향이 코를 통해 뇌까지 흥분시키는 전율 같은 걸 느꼈달까. 바로 고기리 막국수의 ‘들기름 막국수’였다.

요즘 그 식당은 들기름 막국수의 성지 같은 곳이 됐다. 각종 언론에 소개되며 전국에 ‘들기름 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제는 30분이 아니라 1시간 웨이팅이 기본이 됐다. 이후 국내 많은 식당에서 앞다퉈 들기름 막국수를 출시했으니, 들기름 막국수라는 하나의 장르를 일궜다는 점에서 존중할만한 가게라고 생각한다. 같은 장르 안에서 변주도 생겼다. 들기름 막국수에 동치미를 섞어 내놓는 가게도 있고, 열무를 섞어 메뉴를 만드는 방식으로 발전해나가는 중이다.

그런데, 들기름을 중심으로 한 장르의 변주는 비단 막국수 업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인 ‘권숙수’의 권우중 셰프는 가는 카펠리니 파스타 면에 들기름을 곁들인 ‘민들레 국수’를 이미 수년 전부터 선보여 흥행한 적 있다. 파인다이닝 업계에서도 들기름이 유행하게끔 크게 일조한 메뉴라고 할 수 있다.

카펠리니 파스타면에 들기름을 곁들여 내는 '권숙수'의 민들레국수. 사진 권숙수

카펠리니 파스타면에 들기름을 곁들여 내는 '권숙수'의 민들레국수. 사진 권숙수

을지로 일대를 ‘힙’하게 만드는 데 있어 큰 공헌을 했다고 알려진 선술집 ‘보석’의 대표작 낙지젓 카펠리니도 빼놓을 수 없다. 깻잎을 들기름에 무쳐 카펠리니 면 위에 올린 수작이다. 한식 레스토랑 ‘주옥’의 신창호 셰프는 아예 처가의 텃밭에서 직접 기른 들깨를 공급받는다. 여기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담아 뽑아낸 특별한 들기름을 요리에 사용한다.

직접 기른 들깨로 뽑아낸 들기름은 얼마나 향과 맛이 좋을까.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할머니가 좋은 들기름을 항상 챙겨주셨다. 시골 할머니 집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할머니는 기름이 새지 않도록 입구를 동동 싸맨 들기름 한 병씩을 짐에 꼭 넣어주시곤 했다. 아버지는 그 들기름을 무척 좋아하셔서 굉장히 아껴서 드셨는데, 너무 아끼다 보니 결국 1/4 정도 남은 채로 냉장고 안에서 산패한 들기름병이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주옥'의 신창호 셰프가 자신만의 노하루를 담아 뽑아낸 들기름을 사용해 만든 요리로 캐비아와 전복소라채가 올란 메추리알. 사진 주옥

'주옥'의 신창호 셰프가 자신만의 노하루를 담아 뽑아낸 들기름을 사용해 만든 요리로 캐비아와 전복소라채가 올란 메추리알. 사진 주옥

나의 아버지처럼, 우리 아내도 들기름을 참 좋아한다. 집에는 들기름이 떨어지는 날이 없다. 사 놓으면 금세 먹는 편임에도, 가끔은 정말 좋은 들기름을 아껴 먹다가 산패해서 버린 적이 두어 번 있었다. 좋은 들기름을 아끼는 게 대물림이라도 됐나, 그럴 때마다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고소하고 매력적인 향과 맛만큼이나, 보관을 잘못해 산패한 들기름만큼 뒷맛이 좋지 않은 것도 없다. 그런데 들기름 보관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냉장고에 보관하는 게 좋다는 의견과 냉동이나 어둡고 시원한 곳에 두는 게 좋다는 의견으로 갈린다. 냉장 보관은 바깥과의 온도 차로 수분이 생기는 결로현상 때문에 빨리 산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의견은 이렇다. 들기름을 소모하는 양, 요리하는 횟수 등 집마다 사정이 다르니,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들기름을 가끔 먹는 가정집이라면 냉동을 추천한다. 쓰기 전날 냉장고로 옮겨 하룻밤 천천히 해동하고, 사용할 때는 상온에 한 시간 정도 미리 내놨다가 사용하는 게 오랫동안 좋은 품질을 유지하는 방법 아닐까 한다.

들기름과 참기름을 4:1 정도로 섞는 방법도 있다. 참기름에 있는 항산화 성분인 ‘리그난’이 들기름의 산패를 늦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병을 알루미늄포일로 감싸 햇빛을 받지 못하게 해도 좋다. 어쨌든 핵심은, 좋은 들기름은 아끼지 말고 되도록 빨리(한 달 정도 안에),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 좋은 사람들과 먹는 것이다.

또, 들기름은 고온에 약하다. 따라서 가열하는 것보다 나물류나 비빔밥, 국수류에 넣어서 향과 맛을 더해주는 느낌으로 사용하는 게 좋다. 또 벤조피렌 같은 발암물질이 생성될 수 있는 고온 압착보다 저온 압착한 들기름을 추천한다. 맛과 풍미가 더 좋고 영양소 파괴도 적다고 알려져 있다.

간장 양념이 들어간 들기름 막국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들기름소금국수. 사진 이유석

간장 양념이 들어간 들기름 막국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들기름소금국수. 사진 이유석

결혼 이후 주말 아침과 저녁 식사는 내가 담당하는데, 이때 음식은 아내 입맛에 맞추는 편이다. 어느 날인가, 아내가 출출하다기에 부엌을 뒤져 조금 남아있던 소바 면을 삶아서 헹군 다음, 들기름과 소금‧깨‧김가루만 넣고 비벼준 적이 있다. 한 번 맛을 본 아내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소식가인 그녀가 순식간에 두 그릇을 먹는 게 아니겠는가. 생각보다 만들기 쉽고 맛도 좋으니, 여러분도 레시피를 보고 한번 만들어보시길 권한다. 봄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요즘은 기분 좋은 들기름의 향이 참 잘 어울리는 날씨다.



Today‘s Recipe 이유석의 들기름 소금국수  
“동치미 국물을 두 큰술 넣으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 얇게 썰어낸 표고버섯을 살짝 데치고 물기를 뺀 다음, 강한 불에 살짝 볶아 고명으로 올리면, 전복처럼 쫄깃한 식감에 표고 자체의 감칠맛이 더해져 들기름의 풍미와 환상적인 궁합을 보여준다.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은 깻잎과 청양고추, 실파를 썰어 넣어도 좋다. 또한 파스타를 삶듯이 살짝 바닷물 염도에 가까운 물에 면을 삶아내면, 면 중심부까지 간이 배어서 나중에 간하기 쉬우며, 맛도 더 좋다.”

재료 준비 
재료(1인): 메밀면(가는 건면) 100g, 구운 김 1장(혹은 김가루 한 큰술), 으깬 통깨 1작은술, 들기름 3큰술, 표고버섯 2개, 소금 소량.

들기름소금국수의 재료들. 사진 이유석

들기름소금국수의 재료들. 사진 이유석

만드는 법
1. 소금을 1작은술 넣은 끓는 물에 메밀면(건면)을 넣는다. 파스타 삶듯이 펼치듯 넣으면 된다. 면이 들러붙지 않게 바닥을 저어가며 2분 정도 삶는다. 물이 끓어오르면 찬물을 넣어서 거품을 눌러준다.
2. 체로 면을 건진 후 찬물에 빠르게 헹군다.
3. 면을 볼에 담고 들기름 2큰술과 가는 소금 한 꼬집을 넣고, 잘 버무린다.
4. 그릇에 보기 좋게 담는다.
5. 얇게 썰어낸 표고버섯을 끓는 물에 1분간 데친 후 건진다. 그다음 강한 불에 30초간 볶은 후 국수 고명으로 올려준다.
6. 믹서기에 살짝 갈거나 잘게 찢은 구운 김(혹은 김가루)과 볶아서 으깬 참깨를 국수 위에 뿌려서 완성한다.

※ 중앙일보 쿠킹에서는 매주 수요일 요즘 뜨는 레시피와 음식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전문가의 레시피와 술 추천, 건강하게 먹는 팁, 꼭 가봐야할 맛집 정보 등이 궁금하신 분들은 쿠킹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