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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킹] 라면과 라멘을 능가하는 강한 감칠맛 ‘베트남 쌀국수’

중앙일보

입력

10년간 프렌치 가스트로 펍 ‘루이쌍끄’의 오너 셰프로 받은 사랑을 뒤로하고, 2019년 돌연 “평생 해보고 싶었던” 국숫집에 도전했다. 프랑스와 스페인 유학 시절 배운 유럽 면 요리에 이어, 우리나라 전국 곳곳은 물론이고 라멘의 나라 일본과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지를 다니며 면을 공부했다. 면 요리 전문점 ‘유면가’에 이어, 현재 요리연구소 ‘유면가랩’을 운영 중이다. 그동안 면을 공부하며 알게 된 면 요리의 이야기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레시피를 소개한다.

이유석의 면면면 ⑥ 베트남 쌀국수 

베트남 쌀국수. 사진 pixabay

베트남 쌀국수. 사진 pixabay

내가 쌀국수를 처음 먹은 건 200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동네에 생긴 프랜차이즈 전문점에서 먹었는데, 넓적한 면발은 너무 얇고 쫄깃함도 덜 한데다가, 살짝 시큼한 그 맛이 영 내 입에는 맞지 않았다. 두 번째로 먹은 쌀국수는 조금 엉뚱하게도 2000년대 중반 프랑스 파리에서였다. 지인이 쌀국수를 먹자고 불러냈는데, ‘프랑스에서 웬 쌀국수’라고 생각하며 그다지 내켜 하지 않은 채로 따라갔다.

차이나타운이 있는 파리 13구 시내 톨비악 지구의 한 오래된 베트남 쌀국수집에서 먹은 쌀국수의 맛은 가히 놀라웠다.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세상에 한국의 라면과 일본의 라멘을 제외하고 이렇게 감칠맛 강한 국물이 존재하다니! 한국에서 맛봤던 밋밋한 느낌의 국물과는 전혀 결이 달랐다.

특히 그 식당은 요청할 경우, 육수를 끓이고 남은 소의 자투리 부분을 그냥 공짜로 내주었다. 그리 부드러운 질감은 아니지만, 고기 자체에도 감칠맛이 강해 계속 젓가락이 가는 마력이 있었다. 요리사로서 부끄럽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베트남 쌀국수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다.

찾아보니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시절, 프랑스인들이 주로 먹던 포토푀(소고기와 채소를 넣고 끓인 스튜)에서 쌀국수가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했다. 당시 베트남에선 사실상 금기시되던 소고기로 프랑스인이 맑은 스튜를 만들어 먹는 것을 보고, 거기에 쌀국수 면을 넣고 고수와 베트남 고유의 피시 소스인 느억맘을 넣어 자기들 입맛에 맞춘 게 현재의 쌀국수 형태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쌀국수 만드는 과정을 보면, 이 설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파리에는 베트남 이민자들이 많다. 프랑스의 좋은 식자재와 시너지를 발휘해서인지, 누군가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쌀국수를 맛보고 싶다면, 파리로 오라”고 말한 적도 있는데, 그 말 역시 일리가 있어 보인다.

호치민에는 프랑스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축물들이 남아있다. 사진은 노트르담 대성당. 사진 pixabay

호치민에는 프랑스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축물들이 남아있다. 사진은 노트르담 대성당. 사진 pixabay

베트남 북부에서 유행하게 된 쌀국수는 이후 내전을 겪으며 점차 남부로 전해졌고, 각종 해산물 등을 섞어 먹는 형태로 진화하게 됐다고 한다. 또한, 미국으로 넘어간 베트남인들에 의해, 스리라차와 호이신 소스를 곁들여 먹는 새로운 타입의 쌀국수도 유행하게 됐다.

내가 유럽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2010년 초반엔 한국에도 쌀국수집이 대중화되어 맛의 퀄리티도 무서우리만치 높아져 있었다. 물론, 현지의 재료나 조미료를 쓰지 않는 등의 작은 차이 때문인지, 오리지널 맛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현지 맛과 완전히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과거보다 수준 높은 쌀국수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확실했다. 나 역시 밤늦은 시간에 내 일이 끝나고 나면, 쌀국수집을 찾아 혼자 후루룩 한 그릇씩 먹고 퇴근하는 게 한동안의 루틴이었다.

최근 인상 깊게 먹은 쌀국수로는, 조개 쌀국수가 있다. 2년 전쯤 미쉐린2스타를 받은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가 오픈한 베트남 쌀국수집의 메뉴다. 임 셰프는 쌀국수의 오랜 마니아였던 사람으로, 오랜 준비 끝에 쌀국수집을 오픈했다. 그가 개발한 조개 쌀국수는 조개와 소고기 육수를 조합한 게 특징인데,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로 창의적이고 훌륭한 맛이었다.

사실 먹어보지 않으면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맛이긴 하다. 묵직한 소 육수와 맑은 조개 육수는 어쩐지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면, 시원하고 감칠맛 좋은 조개와 묵직하고 깊은 소 육수의 조화가 무척이나 훌륭하다. 각자의 장점이 극한으로 끓어 올려진 쌀국수다. 특히 국물로 해장을 즐기는 우리 문화에 더없이 좋은 맛이었다.

박수를 받을 쌀국수가 하나가 더 있다. 국내 쌀국수 계의 대가로 불리는 ‘효뜨’의 남준영 셰프는 곰탕처럼 하얗고 진하게 우려낸 스타일의 쌀국수를 선보였다. 나 역시 직접 먹어보고 깊은 맛에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다.

이번 칼럼을 준비하면서, 사진 촬영을 위해 베트남 쇠고기 쌀국수 ‘퍼보’를 만들어봤다. 하필 이날 따라 난방이 고장 나는 바람에 냉기가 도는 작업실에서 달달 떨며 만든 쌀국수다. 심지어 완성한 음식 사진을 찍느라 쌀국수가 식어버리는 바람에, 전자레인지에 다시 쌀국수를 데웠다. 전자레인지에 돌렸음에도 면이 쉽게 불지 않는 게 쌀국수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덕분에 다시 뜨거워진 쌀국수 한 그릇으로 1월의 추위를 달래본다. 언제쯤 되면 베트남 현지에서 쌀국수를 먹을 수 있으려나 생각하며 말이다.



Today`s Recipe 이유석의 가정용 베트남 쌀국수 

베트남 쌀국수 퍼보. 사진 이유석

베트남 쌀국수 퍼보. 사진 이유석


재료 준비(2인분)

육수 재료: 양파 1/2개, 생강 1/2톨, 느억맘소스 2큰술(멸치액젓 1큰술로 대체가능), 아롱사태 500g (혹은 차돌양지), 계피 1/2조각, 통후추 7개, 마늘 2알, 굴소스 1작은술, 팔각 1개, 채 썬 대파 1큰술, 치킨 파우더(조미료) 1큰술, 설탕 1큰술, 소금 한소끔, 홍고추 1개.
양파 피클 재료: 채 썬 양파 1/2개, 설탕 1큰술, 식초 3큰술, 물 1큰술, 소금 한소끔
쌀국수면: 건면 100g(물에 미리 1시간 불려서 사용한다).
선택 재료 : 고수, 라임

베트남 쌀국수 재료. 고수와 라임은 취향에 따라 넣으면 된다. 사진 이유석

베트남 쌀국수 재료. 고수와 라임은 취향에 따라 넣으면 된다. 사진 이유석

만드는 법
1. 소고기는 미리 찬물에 담가 피를 뺀다. 물은 1시간씩 갈아주며 최소 3시간 정도 피를 빼야 한다.
2. 오일을 두르지 않은 두꺼운 프라이팬을 충분히 예열한 뒤, 반개의 양파와 반으로 썬 생강을 단면이 바닥으로 가게 한 채 2~3분간 구워 살짝 태워준다. 이 스모키한 향이 국물에 잡내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특유의 쓴맛도 줄어든다.
3. 찬물 3ℓ에 1번의 쇠고기를 넣고, 2번의 재료들에 살짝 으깬 마늘을 더해 함께 넣고 강불에 끓인다. 마늘은 입맛에 따라 생략할 수 있다.
4. 끓어서 갈색 거품이 올라오면, 거품이 안 나올 때까지 걷은 다음 약불로 줄여 1시간 동안 끓인다.
5. 계피와 팔각 통후추를 추가하고 20분간 더 끓인다.
6. 느억맘소스, 설탕, 치킨 파우더, 굴소스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7. 고기는 건져내어 한 김 식힌 후 얇게 썰어주고, 국물은 체에 거른다.
8. 불린 면을 건져내 그릇에 담고, 7번의 뜨거운 국물을 붓는다. 미리 준비해둔 양파 피클을 담고 고기 고명을 올린 뒤, 채 썬 파와 홍고추를 올려 완성한다. 취향에 따라 고수와 라임을 따로 곁들여줘도 좋다.

이유석 셰프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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