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킹] 멸치·대파·양파로 우린 육수에 말아낸 추억의 잔치국수

중앙일보

입력 2021.11.12 09:00

10년간 프렌치 가스트로 펍 ‘루이쌍끄’의 오너 셰프로 받은 사랑을 뒤로하고, 2019년 돌연 “평생 해보고 싶었던” 국숫집에 도전했다. 프랑스와 스페인 유학 시절 배운 유럽 면 요리에 이어, 우리나라 전국 곳곳은 물론이고 라멘의 나라 일본과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지를 다니며 면을 공부했다. 면 요리 전문점 ‘유면가’에 이어, 현재 요리연구소 ‘유면가랩’을 운영 중이다. 그동안 면을 공부하며 알게 된 면 요리의 이야기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레시피를 소개한다.

이유석의 면면면④ 잔치국수

후루룩, 후루룩.
잔치국수의 가는 소면이 입안으로 빨려들어 온다. 볼이 빵빵하도록 면발을 밀어 넣고 멸치 향 그득한 뜨끈한 국물을 들이켜자, 나도 모르게 절로 탄성이 나온다. 날씨가 쌀쌀해지거나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잔치국수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수수한 국수지만 모든 국수를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수다. 그러다 보니 결혼식 뷔페를 가든, 어디 유명한 뷔페에서든 나는 어떤 화려한 요리보다 잔치국수로 배를 채워서 아내의 핀잔을 듣기 일쑤다.

사실 잔치국수는 내게 친근한 음식이다. 내 아버지의 고향은 국수 면으로 유명한 충남 예산과 김으로 유명한 광천에 인접한 보령의 작은 마을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주말마다 잔치국수를 직접 만들어 주셨다. 아버지는 꼭 그릇이 넘칠 만큼 국수를 담아줬는데, 그 위에는 광천김을 수북하게 올려줬다.

말로만 들으면 푸짐하고 맛있어 보이지만, 빨리 후루룩 먹지 않으면 김이 국물을 흡수해 불어버리곤 했다. 결국, 달리기 경주를 하는 기분으로 면을 입에 밀어 넣듯 빠르게 젓가락질하며 국수를 먹곤 했다. 이 습관은 마흔을 넘긴 지금도 남아 있어서, 국수를 먹을 때는 다소 허겁지겁 먹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릇이 넘치게 수북하게 담아 주던 아버지의 국수는 그 시절에도 참 좋았더랬다. 평소에 과묵하고 무뚝뚝한 아버지였지만, 국수 한 그릇 푸짐하게 담아 주던 것이 아버지 나름의 애정 표현이라고 느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추억이 있어서인지, 나는 잔치국수의 베이스가 되는 멸치육수에 유독 애정이 많다. 육수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면, 좋은 멸치육수를 만들려면 우선 좋은 멸치를 선별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멸치내장이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겉이 부스러기 없이 매끈하며 은색을 띠는 것을 선호한다. 이때 형태가 구부러진 멸치는 상관없다. 잡아서 살아있는 채로 자숙한 것이기에 모양이 예쁘지 않다고 상태가 안 좋다곤 할 수 없다.

잔치국수의 핵심은 멸치다. 잘 골라, 알맞은 온도로 우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픽사베이

잔치국수의 핵심은 멸치다. 잘 골라, 알맞은 온도로 우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픽사베이

같은 멸치를 쓰더라도 어떻게 육수를 내는지에 따라 멸치육수의 맛은 달라진다. 끓여내는 온도에 따라서도, 멸치를 통으로 쓸지 내장을 제거 후에 쓸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또, 차게 우리는 냉침을 해도 육수 맛은 달라진다.

흔히, 멸치의 똥이라고 부르는 것은 내장 부위다. 내가 일본에 육수 공부를 하러 드나들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에서는 내장의 쌉싸름한 맛을 과하지 않은 선에서 살리는 걸 선호하기에 굳이 내장을 손질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신 멸치내장의 쓴맛을 상쇄할 재료들을 함께 첨가한다. 혹은 아주 약한 온도에서 멸치를 오래 우려내 은은한 맛을 최대치로 뽑아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도 손질 안 한 국물용 멸치에 양파와 대파, 다시마만 넣어서 육수 우리는 걸 선호한다. 멸치내장의 쓴맛은 대파가 잘 잡아 주며, 멸치에 부족한 은은한 단맛은 양파가 더해주기 때문이다. 간혹 고소한 느낌의 국물이 생각날 때면 애호박 자투리를 넣는다. 여기에 국간장과 멸치액젓으로 간을 맞추고, 고명으로는 채 썬 파를 듬뿍 넣는다. 마지막으로 깨소금과 김을 넣어 고소함과 감칠맛을 더하면 완성이다.

멸치육수 이야기에 소면이 빠지면 섭섭하다. 소면을 삶을 때는 속이 깊고 두꺼운 냄비에 끓여야 물이 끓어 넘치는 걸 방지하며, 면이 냄비 바닥에 들러붙는 일이 덜하다. 나 역시 꽤 깊고 두꺼운 냄비를 써서 면을 삶는데, 그러면 중간에 물을 추가해줄 필요가 딱히 없다. 그리고 소금을 살짝 넣는다. 면 자체에 염도가 생겨 맛이 더 좋아져서다. 면을 삶을 때 식용유를 조금 첨가해주면 면발 하나하나를 코팅해주는 효과도 줄 수 있다. 소면끼리 달라붙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집중해서 국수 칼럼을 쓰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 다 되어간다. 늦은 시간에 음식 칼럼을 쓰는 것의 단점은, 갑자기 배가 고플 수 있다는 것이다. 늦은 시간에 야식을 먹을지 말지 몇 초 고민하다가 결국, 가스 불에 냄비를 올린다. 보통 야식은 라면이지만, 이번엔 특별히 잔치국수로 정했다. 이 시간에 멸치육수를 내리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니, 멸치육수 팩을 꺼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멸치육수 향이 집안에 은은히 퍼진다. 가족들이 깨지 않게 조용조용 면을 삶아 헹구고, 살짝 토렴한 그릇에 면과 국물을 담아낸 다음, 김과 파, 깨소금으로 마무리한다.

밤에 몰래 먹는 국수는 곱절로 맛있게 느껴진다. 장모님이 담근, 잘 익은 김치 한 점까지 곁들이니 더 바랄 것이 없다. 국수는 역시 잔치국수다. 하루의 고단했던 피로를 풀어주는, 이 친숙한 느낌이 참 좋다.

Today's Recipe 유면가랩 이유석 셰프의 잔치국수

"육수를 만들 때는 강불로 시작해 펄펄 끓으면 중불로 줄여 30분 더 끓여주고 천천히 식힐 때까지 다시 멸치를 꺼내지 마세요. 온도가 서서히 낮아지면서 멸치의 다른 맛들이 더 우러나오거든요. 또 소면은 삶은 것만큼 찬물로 빠는 것이 중요해요. 여러 번 찰지게 씻으면 탄성 높은 면이 탄생하죠. 담아낼 때에는 그릇에 따뜻한 육수로 토렴을 해주세요. 그릇에 온기가 생겨 차가운 소면으로 인해 육수의 온도가 내려가는 걸 막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준비 재료 

잔치국수 재료. 사진 이유석

잔치국수 재료. 사진 이유석

육수(2인분): 육수용 다시 멸치 한 줌, 양파 반개, 대파 흰 부분 50g, 자른 다시마 2장, 물 2리터, 멸치액젓 1.5큰술 , 국간장 1큰술, 소금
소면: 소면, 식용유 소량, 소금 소량
고명: 채 썬 애호박 50g(고명), 계란 1개 (지단용도), 깨 1작은술, 재래김1장, 고춧가루 소량, 채썬 대파 1큰술

만드는 법 
〈육수만들기〉
1. 찬물에 육수 재료를 넣고 강한 불로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3분후, 다시마는 건져주고 거품은 처음 올라올 때만 건져준다.
2. 중불로 30분간 더 끓이다, 액젓과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불을 끄고 식힌다.
3. 육수는 체에 걸러 완성 후, 면이 준비되면 한 번 더 끓여 부어준다.

〈소면 삶기〉
1. 면의 양보다 큰 냄비에 물을 반 정도 넣고 끓인다.
2. 물에 소금과 식용유를 소량 넣어준다.
3. 끓으면 중불로 줄이고 분량의 면을 넣고 긴 나무젓가락으로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저어준다.
4. 2~3분 정도 면을 삶는다. 면의 양 대비 냄비가 작을 경우에는 물이 자주 넘칠 수 있으니, 최소 3번은 부어 줄 찬물을 준비한다.
5. 면을 한 가닥 떼어 속을 보았을 때, 심지가 살짝 남아있다 싶을 때, 면을 건져 찬물로 여러 번 헹궈서 면에 탄성을 더해준다.

〈담아낼 때〉
1. 애호박과 대파, 지단으로 부친 계란을 채썬다.
2. 팬에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애호박을 볶고 김은 구워둔다.
3. 국수 그릇은 육수로 토렴하고 손가락 두 개에 소면을 말아 사리를 틀어 담아준다.
4. 그 위로 끓는 육수를 넣고 1을 넣은 후, 구운 김을 잘게 찢어 올려주고 깨를 넣는다.
5. 얼큰한 느낌을 좋아하는 분은 고춧가루를 추가해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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