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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물도 아닌데…유출 지하수 관리비 내야 할까요?[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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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16] 유출 지하수 처리비 부과한다는 SH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지은 서울의 한 행복주택. 지난해 10월, 엘리베이터에 공문이 하나 붙었습니다. '유출 지하수 처리 비용'을 이제부터 입주민들에게 수도세와 함께 부과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유출 지하수는 건물을 짓거나 지하 공간을 개발하면서 나오게 된 물입니다.

지반 특성상, 이 건물 밑에서 지하수가 계속해서 유출되는 것은 시공 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결국 유출 지하수를 배수하고 처리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이 비용을 SH공사가 부담했으니 이제는 입주자들이 내라는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SH공사의 유출지하수 처리 비용 부과 방침에 따라 관리사무소에서 공지한 내용. 임차인대표회의 제공

지난해 10월 SH공사의 유출지하수 처리 비용 부과 방침에 따라 관리사무소에서 공지한 내용. 임차인대표회의 제공

입주민들은 이 안내문이 붙기 전까지는 유출 지하수가 나오는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입주 공고나 설명회에서도, 계약서를 쓸 때도 들은 적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돈을 내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리 비용은 두 달에 188만원 정도, 180세대가 살고 있으니 가구당 두 달에 만원꼴입니다.

입주민들과 SH공사는 이 비용의 법적 근거를 두고 몇 달째 줄다리기하고 있습니다. 입주민 반발로 실제로 비용이 부과되고 있지는 않지만, 입주민들은 길어지는 다툼에 지쳐간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질문!

내가 쓴 물도 아닌데, 정말 유출 지하수 처리 비용을 세입자가 내야 하는 건가요?

관련 법령

SH공사는 서울특별시 하수도 사용 조례 23조를 들었습니다. '시장은 법 제65조에 따른 공공하수도 사용료를 법 제15조에 따라 사용 공고된 배수 구역 또는 하수처리구역 내의 사용자로부터 그 배출하는 하수의 양과 업종에 따라 징수한다.' 여기서 '사용자'가 입주민들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관련한 민법 조항도 살펴보겠습니다.

민법 623조는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SH공사의 유출지하수 처리 비용 부과 방침에 따라 관리사무소에서 공지한 내용. 임차인대표회의 제공

지난해 10월 SH공사의 유출지하수 처리 비용 부과 방침에 따라 관리사무소에서 공지한 내용. 임차인대표회의 제공

법조계 판단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비용은 SH공사가 부담해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주된 의견입니다.

민법상 임대인은 임차인들이 건물을 사용하는 데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출 지하수 처리를 하지 않으면 건물을 사용하는 데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테니, 임대인인 SH공사가 이 비용을 들여서 거주에 알맞은 상태를 유지하는 게 맞다는 해석이 우세합니다.

SH공사는 하수도 조례를 근거로 들어 '사용자로부터 요금을 징수한다'고 했지만, 애초에 이 조례를 잘못 해석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엄태섭 변호사(법무법인 오킴스)는 같은 조례 2조에서 '사용자'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짚었습니다. 여기서 사용자는 '하수를 배출하는 시설이나 대지를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자'인데요. "유출 지하수는 임차인들이 배출하는 하수가 아니라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나오게 된 물인 만큼, 행복주택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SH공사가 '사용자'로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입주민은 자연 유출수를 배출하는 사람도 아니고, 행복주택을 소유 관리하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SH공사와 입주민들이 쓴 표준임대차계약서상에도 유출 지하수 사용료에 대한 얘기는 없었습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깃발. 연합뉴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깃발. 연합뉴스

SH공사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법률 자문을 거쳐 입주민들에게 비용 부과를 추진한 건 맞지만, 복수의 자문을 다시 받아 부과 방침을 철회하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공사에서도 유출 지하수 문제를 처음 접하다 보니 혼선이 있었다고도 했습니다. 또 "SH공사가 임대하는 다른 단지에서도 이런 식으로 비용 부과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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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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