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자 첫 증언 "러軍, 남편 쏴죽이고 강간...줄곧 조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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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크라이나 여성이 3월 27일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브에 있는 한 가톨릭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AFP=연합뉴스

한 우크라이나 여성이 3월 27일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브에 있는 한 가톨릭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AFP=연합뉴스

“러시아군은 내 머리에 총을 들이대면서 ‘당신 남편이 나치이기 때문에 총으로 쐈다’고 말했어요. 포격이 있는 동안 아들을 보일러실에 머물도록 했는데, 러시아군은 내게 ‘입 다물지 않으면 아이를 데려와 엄마의 참혹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옷을 벗으라고 하고, 두 명이 나를 돌아가며 강간했어요. 그들은 아들이 보일러실에서 울고 있는 걸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줄곧 내 머리에 총을 겨누고 나를 조롱했어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브로바리 지역 셰첸코브의 작은 마을에 살았던 나탈리아(33·이하 가명)는 3월 9일에 일어났던 끔찍한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나탈리아는 28일 공개된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측이 사건의 책임을 회피하고 러시아 병사들은 성폭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식으로 부인하는 것을 보고 인터뷰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에게 성폭행을 당한 우크라이나 피해자가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탈리아와 그의 남편 안드레이 (35), 네 살 아들 올렉시는 평화로운 이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숲에는 부부가 직접 나무와 돌로 지은 작은 집도 있었다. 부부의 첫 번째 집이었다.

하지만 8일 러시아군이 이 마을까지 밀고 들어온 뒤 나탈리아 가족의 행복은 산산이 조각났다. 나탈리아는 아들 올렉시와 함께 남편 안드레이가 지어준 소나무 숲 옆 작은 집에서 도망쳐야만 했던 이야기를 작은 목소리로 털어놨다. 혹시 옆에서 잠든 올렉시가 들을까 봐. 올렉시는 아직 아버지의 사망을 알지 못한다.

구조대원들이 3월 29일 러시아 로켓 공격과 포격으로 파괴된 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북쪽의 브로바리 마을에서 5만 톤 이상의 냉동 식품이 들어 있는 창고 잔해를 치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구조대원들이 3월 29일 러시아 로켓 공격과 포격으로 파괴된 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북쪽의 브로바리 마을에서 5만 톤 이상의 냉동 식품이 들어 있는 창고 잔해를 치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야기는 3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러시아군은 키이우를 장악하기 위해 브로바리로 밀어 들어오고 있었다. 나탈리아 부부는 “여기에는 민간이 가족이 있을 뿐이고,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집 문에 하얀 천을 걸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나탈리아와 남편은 집 밖에서 한 발의 총성과 문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두 손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가보니, 한 무리의 러시아군이 마당에 죽은 채로 누워있는 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처음에는 나탈리아 부부에게 “안에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 해를 끼치려고 한 건 아니다”라며 용서를 구했다. “우리는 여기에 훈련을 하러 온 줄로만 알았다”, “전쟁에 참전하는 줄은 몰랐다”는 말도 했다.

자신을 ‘미하일 로마노프’라고 소개한 러시아군 지휘관은 “전쟁만 아니었다면 나와 당신은 연애할 텐데”라며 나탈리아에게 추파를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안드레이의 차 안에서 위장 재킷이 있는 걸 발견한 러시아군 지휘관은 공격적으로 변했다. 차에 총을 쏘며 “수류탄으로 차를 날려버리겠다”고 윽박질렀다. 러시아군은 차를 주변에 있던 나무와 충돌시켜 부쉈다.

이후 병사들은 안드레이를 “나치”라고 욕하면서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 뒤 총을 쏴 살해했다.

경악한 나탈리아에게 러시아군은 머리에 총을 들이대며 “입을 다물지 않으면 당신의 아들을 데리고 와서 집 곳곳에 버려진 엄마의 뇌수를 보여주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더니 러시아군 두 명이 돌아가며 나탈리아를 강간했다. 당시 나탈리아의 아들 올렉시가 보일러실에서 울고 있었지만, 러시아군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줄곧 나탈리아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조롱했다.

잠시 후 러시아군이 떠났지만, 20여분 후 다시 돌아와 나탈리아를 다시 강간했다. 나탈리아는 “러시아군은 총 세 차례 돌아왔는데, 그들은 너무 취해서 거의 서 있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결국 러시아군 두 명은 의자에 앉은 채 잠이 들었고, 나탈리아는 보일러실로 들어가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지금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우린 총살당할 거야.”

나탈리아가 아들 올렉시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을 때, 올렉시는 아버지의 시신과 마주했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서 아들은 시신이 아버지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엄마, 우리도 여기 있는 이 남자처럼 총에 맞을까?”라고 천진난만하게 물을 뿐이었다.

3월 28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 도쿠차이예프스크에서 친러시아군의 군인들이 장갑차 꼭대기에서 목격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3월 28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 도쿠차이예프스크에서 친러시아군의 군인들이 장갑차 꼭대기에서 목격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현재 나탈리아는 아들과 우크라이나 서부 리비브 지방으로 피신해 있는 상황이다. 나탈리아는 “침묵할 수도 있었다. 다친 많은 사람이 무서워서 침묵을 지키리라는 것을 이해한다”며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고 믿지 않는다. ‘얘기 지어내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나탈리아는 SNS를 통해 강간범 중 한 명인 미하일 로마노프의 신원을 확인했지만, 다른 한 명의 신원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나탈리아는 “지난주 브로바리에서 로마노프로 추정되는 남성이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살해됐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그것이 사실인지 아직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남편이 러시아군의 총에 맞아 숨진 지 3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이 마을을 아직도 점령하고 있는 탓이다. 나탈리아는 “전쟁이 끝난다 해도, 그곳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추억을 떠올리는 건 힘들다. 하지만 남편이 우리를 위해 지어준 집을 팔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우크라이나 당국은 지난달 러시아의 침공 이후 러시아군이 조직적으로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지난주 이리나 베네디코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러시아군이 나탈리아의 가족에게 행한 범죄에 대한 첫 번째 공식 조사가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2008년부터 강간죄는 전쟁범죄로 인정됐다”며 “국제형사재판소를 통해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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