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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의 산불 피해…불탄 2000만 그루 운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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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내셔널팀장

최경호 내셔널팀장

지난 4일 오전 11시 15분 경북 울진군 북면. 도로변에서 흰 연기가 나더니 순식간에 불길이 산등성이로 번졌다. 산림당국은 차량에서 던진 담뱃불이 산불이 된 것으로 봤다. 차량 4대가 발화지점을 지난 직후 불이 난 게 폐쇄회로TV(CCTV)에 찍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은 합동감식에 나섰지만 소득은 없었다. 워낙 불길이 거센 탓에 배수로에 있던 낙엽 등이 모두 타고 없어져서다. 울진군이 차량 4대의 운전자 등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원인은 찾지 못했다. 운전자들은 담배꽁초를 비롯해 자신들의 실화 가능성을 부인했다. 사건이 오리무중에 빠진 사이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울진발(發) 불길이 강풍을 타고 강원 삼척까지 번져 동해안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20대 대선 기간에도 꺼지지 않던 불은 9일 만인 13일에야 잦아들었다. 역대 최장이던 2000년 동해안 산불(191시간)보다 22시간 긴 213시간 만이다.

사상 최장을 찍은 화마의 피해는 막심했다. 울진 1만8463㏊, 삼척 2460㏊ 등 산림 2만923㏊가 불에 탔다. 비슷한 시기 강릉·동해, 영월 산불까지 합치면 피해 면적은 2만5003㏊에 달했다. 역대 최악의 생채기를 남긴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2만3794㏊)도 훌쩍 넘어섰다.

지난 7일 경북 울진군의 한 장뇌삼밭이 불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경북 울진군의 한 장뇌삼밭이 불타고 있다. [연합뉴스]

가까스로 불길이 잡힌 후 그나마 다행스러운 소식도 들려왔다. 국립산림과학원 강원석 박사팀이 2017년부터 해온 ‘산불 지표화 피해지의 소나무 피해목 고사 여부 판단 연구’ 결과였다. “산불 피해를 본 나무를 모두 베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연구는 산불 피해를 본 나무라도 직경이나 그을음의 정도 등에 따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게 골자다. 강 박사는 “직경 44㎝의 소나무가 지표면에서 2m 아래까지만 그을렸다면 생존율이 9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산림청은 이를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북으로 만들어 배포키로 했다. “산불 현장에서 이 정도 그을린 나무는 자르지 말고 남겨라”는 일종의 기준인 셈이다.

산림청은 이번에 피해를 본 나무가 2000만 그루 이상인 것으로 본다. 통상 ㏊당 나무가 1000그루 이상인 점을 근거로 산출한 규모다. 이는 기존 매뉴얼대로면 축구장(0.714㏊) 3만5018개 면적의 산림을 대부분 베어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동안 산림당국과 지자체 등은 산불 피해지역의 나무를 잘라내는 과정에서 주민 등과 갈등을 빚곤 했다.

산불 후 주민들은 “산불 당시 집과 가축 등을 잃었다”며 조속한 피해 복구를 촉구하고 있다. 매년 되풀이되는 산불을 막기 위한 대책을 바라는 목소리도 높다. 무엇보다 “역대급 피해를 야기한 산불 발화 요인을 규명해야 한다”는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다. 9일간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 울진 산불의 원인은 아직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