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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모기라며 보는 족족 다 죽이죠" 세상 억울한 곤충 '각다귀'[권혁재 핸드폰사진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잠자리각다귀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박사 제공

잠자리각다귀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박사 제공

“각다귀만큼 억울한 곤충도 없을 겁니다.”

계곡 물속에서 찾은 각다귀 애벌레를 두고
이강운 박사가 대뜸 이리 설명했습니다.

권혁재 핸드폰사진관/ 각다귀 애벌레

권혁재 핸드폰사진관/ 각다귀 애벌레

대체 무엇이 그리도 억울할까요?

“영어로 크레인 플라이(Crane fly)예요.
크레인이 뭐냐면 두루미거든요.
즉 두루미처럼 아주 다리가 길다는 뜻이 담겨있어요.
그리고 날개가 한 쌍만 있는 곤충을 파리목이라 하는데
파리나 모기가 다 같이 이렇게 하나의 목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얘를 왕모기라며 보는 족족 다 죽이죠.”

“그러면 사람에게 해를 안 끼치나요?”
고백하자면 각다귀를 왕모기라 여겨 죽여본 터라
다시금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권혁재 핸드폰사진관/ 각다귀 애벌레

권혁재 핸드폰사진관/ 각다귀 애벌레

“얘네들이 흡혈하는 애들이 아닙니다.
그러니 전혀 해될 게 없죠.
오히려 물속에 사는 애벌레는 아주 이로운 친구예요.
물속 낙엽을 분해하는 분해자 역할을 해요.
사이즈가 큰 만큼 먹는 양도 많으니
깨끗한 계곡물을 만드는데 일등 공신이에요.”

물속 애벌레의 크기가 5cm에서 7cm 정도였습니다.
물속 다른 애벌레에 비해 꽤 큰 편입니다.
생긴 건 긴 거머리 닮았습니다.
그러니 애벌레도 각다귀 어른벌레만큼이나
아름답진 않았습니다.

권혁재 핸드폰사진관/ 각다귀 애벌레

권혁재 핸드폰사진관/ 각다귀 애벌레

이러니 그 험한 이름을 얻었나 봅니다.
국어사전에 각다귀를 살펴보면 이런 뜻이 있습니다.
‘남의 것을 뜯어먹고 사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각다귀 입장에선 억울해도 이리 억울할 수가 있을까요.

이강운 박사는 각다귀라는 이름을 처음 정한 사람이
이 친구들의 생태를 잘 몰랐을 것이라 추측했습니다.
“각다귀 같은 경우는 대부분 안 좋은 뜻으로 많이 쓰이잖아요.
악다구니를 쓴다든가 하는 것처럼요.
사람을 귀찮게 하는 그런 것으로 생각했나 봐요.
아마 생태적으로 모르고 한 얘기인 것 같아요.
차라리 ‘두루미 파리’라고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요.”

영국에서는 각다귀와 같이 다리가 긴 곤충을
보통 ‘Daddy long legs’라고 부릅니다.
바로 ‘키다리 아저씨’의 원제입니다.

권혁재 핸드폰사진관/ 각다귀 애벌레

권혁재 핸드폰사진관/ 각다귀 애벌레

어쩌면 각다귀는 우리에게 ‘키다리 아저씨’일 겁니다.
애벌레일 땐 물속을 깨끗이 청소해주죠.
어른벌레가 되어서는 꽃가루를 옮겨주기도 하죠.
이런 ‘키다리 아저씨’를 우리는 왕모기라 하여 죽이고,
각다귀라 이름하여 깎아내렸습니다.

이러니 각다귀는 억울해도 너무나 억울할 따름입니다.

자문 및 감수/ 이강운 서울대 농학박사(곤충학),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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