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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핸드폰사진관]자연의 분해자 장수풍뎅이 애벌레

중앙일보

입력

권혁재 핸드폰사진관/장수풍뎅이 애벌레

권혁재 핸드폰사진관/장수풍뎅이 애벌레

이강운 박사가 소똥을 모아 만든
퇴비 더미를 뒤적입니다.
아무리 오래된 소똥이라 해도
똥은 똥일 터인데
맨손으로 뒤적뒤적합니다.

권혁재 핸드폰사진관/장수풍뎅이 애벌레가 퇴비 더미 안으로 파들어간 구멍

권혁재 핸드폰사진관/장수풍뎅이 애벌레가 퇴비 더미 안으로 파들어간 구멍

이 박사가 흙인 양 숫제 맨손으로
소똥 더미를 뒤적거린 이유는
오래지 않아 알 수 있었습니다.

게서 하나둘 찾아낸 것들은
장수풍뎅이 애벌레였습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이 박사가 뒤적일 때마다
한 놈씩 나왔습니다.
대체 소똥구리도 아닌 이 친구들이
왜 소똥 더미에 터 잡은 걸까요?

권혁재 핸드폰사진관/장수풍뎅이 애벌레

권혁재 핸드폰사진관/장수풍뎅이 애벌레

이 박사의 설명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냥 멸종위기종인 소똥구리를 키우려 소를 키우고, 소똥을 모았는데요. 사실은 초식성 동물인 소가 똥을 배설하지만, 그 배설물이 완전히 분해되지 않은 풀과 성분이 비슷해요. 방목 상태에서 풀을 먹은 소들이니 사실은 배설물 자체도 거의 70%는 풀이라고 봐도 되죠. 그러니 이 똥이 냄새도 안 날뿐더러 맨손으로 만져도 괜찮은 겁니다. 이러니 원래 식물의 썩은 잎을 먹는 부식성인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풀 성분과 비슷한 소똥 퇴비에 터 잡은 겁니다.”

권혁재 핸드폰사진관/장수풍뎅이 애벌레 배설물

권혁재 핸드폰사진관/장수풍뎅이 애벌레 배설물

이 박사가 설명하는 가운데
장수풍뎅이 애벌레 한 마리가 퇴비를 먹으며 똥을 쌉니다.
그 똥은 마치 동글동글한 토끼 똥 같습니다.
이를 본 이 박사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사실은 얘들에게 여기가 집도 되면서 먹이도 되죠. 이걸 먹고 이렇게 또 배설물도 만들어 내고요. 얘네들이 이런 소의 똥뿐만 아니라 자연 상태의 나뭇잎을 분해하죠. 사실 나뭇잎도 그대로 썩지 않고 있으면 큰 문제인데 이런 곤충들이 들어가서 다 분해해서 이렇게 흙처럼 다시 되돌리는 거예요. 제가 예전에 실험했었는데, 얘네들 배설물로 퇴비로 써봤죠. 식물이 그렇게 잘 자랄 수가 없더라고요, 이렇듯 이 친구들은 자연에서 중요한 분해자 역할을 합니다. 더구나 장수풍뎅이는 사이즈가 크니까 많이 먹잖아요.”

“이름에 장수가 붙은 게 크다는 의미인가요?”

권혁재 핸드폰사진관/장수풍뎅이 애벌레

권혁재 핸드폰사진관/장수풍뎅이 애벌레

“맞습니다. 장수 또는 장군 이렇게 들어간 이름은 크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풍뎅이 중에서 가장 큰 장수풍뎅이라든가, 멸종위기종이면서 또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도 있고, 또 멸종위기종인 물장군도 있고, 또 잠자리 중에서 가장 큰 장수잠자리도 있죠. 사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생물을 좋아하는 외국 사람들 또한 제일 먼저 찾는 곤충이 바로 장수풍뎅이입니다.”
장수풍뎅이 / 이강운 박사 제공

장수풍뎅이 / 이강운 박사 제공

“요즘 우리나라 아이들이 집에서도 많이 기르던데요. 애들이 특별히 이 친구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일단 저도 좋아해요. 하하. 어른 장수풍뎅이도 멋지기도 하지만, 애벌레 같은 경우도 만져보면 부들부들하고 그렇죠. 다른 나비목 애벌레들처럼 털이 많다든가 혐오감을 주는 그런 것들이 없는 편이죠.”
권혁재 핸드폰사진관/장수풍뎅이 애벌레

권혁재 핸드폰사진관/장수풍뎅이 애벌레

사실 적잖이 징그러웠지만,
이 박사의 말을 듣고 손바닥에 올려봤습니다.
말 그대로 부들부들한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그 감촉으로 인해 징그럽다는 감정이 이내 사라졌습니다.

사실 지난 1년 반 동안
핸드폰사진관 곤충시리즈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해를 끼치는 해충이라 여겨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친구들을
이 박사를 통해 알게 되고 교감하게 된 점입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곤충은 없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권혁재 핸드폰사진관/장수풍뎅이 애벌레

권혁재 핸드폰사진관/장수풍뎅이 애벌레

여러 사정으로 인해 곤충시리즈는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끝으로 문을 닫아야 합니다.
이강운 박사에게 소회를 물었습니다.

“제가 강의할 때 사람들에게 물어봐요. 알고 있는 곤충이 몇 마리나 되십니까? 해를 끼치는 해충이라는데 도대체 누가 해를 끼치는지 한번 설명을 해보세요. 그러면 사람들이 두 가지 세 가지 곤충 이름밖에 못 댑니다. 누가 어떤 해를 끼치는지 대답도 못 해요. 얘네들의 역할을 모르니까 그런 거예요. 우리가 장수풍뎅이 얘기를 했지만,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거든요. 왜냐하면 큰 데다 나한테 해를 안 끼치고, 만지면 감촉도 좋고, 또 얘네들이 생태계에서 하는 일도 훌륭하니 좋아할 밖에요. 그런데 세상에선 이런 곤충이 아무 까닭 없이 미움을 받죠. 그건 첫 번째로 전문가들이 일반인들을 위해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탓이 큽니다. 두 번째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위험해 만지지 마!' 그러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곤충들을 나쁜 애로 각인시킨 탓입니다. 사실 곤충이 없으면 우리가 사는 이 생태계는 정말 며칠도 못 갈 거예요. 세상을 깨끗하게 해주고, 나아가 공기도 맑게 해주고, 또 우리가 먹는 음식도 만들어주죠. 온갖 것을 다 하는데도, 그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도 늘 오해를 받으니까 좀 속상했죠. 저는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한 30여년 하면서 멸종위기종을 증식, 복원했으니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어요. ‘내가 인생을 헛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늘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곤충을 지키고 알리는 일은 너무 힘들어요. 더구나 코로나 이후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지켜내는 일조차 벅차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곤충시리즈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 되었지만, 좋은 날 오면 다시 한번 일반 대중에게 곤충 이야기를 할 날이 있겠죠. 고마웠습니다.”

저 또한 고마웠습니다.
이강운 박사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지켜봐 주고 격려해 준 독자 여러분 또한 고맙습니다.
핸드폰사진관 곤충시리즈는 막을 내리지만,
오래지 않아 또 다른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가겠습니다.

자문 및 감수/ 이강운 서울대 농학박사(곤충학),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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