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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K9 청년'의 고백 "늦은밤 그날, 尹은 정말 의외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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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제 대통령이 되셨으니 저 같은 피해자가 또 생기지 않도록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K-9 자주포 폭발사고 생존자인 연기자 이찬호(28, 육군 예비역 병장)씨는 9개월 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의 만남을 떠올리며 13일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야인 시절이던 지난해 현충일 전날(6월 5일) 서울 모처에서 K-9 자주포 폭발사고 피해자 이찬호씨와 만났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야인 시절이던 지난해 현충일 전날(6월 5일) 서울 모처에서 K-9 자주포 폭발사고 피해자 이찬호씨와 만났다. 연합뉴스

윤 당선인은 지난해 6월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부터 줄곧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사전투표일이었던 지난 5일에도 페이스북에 지난 1월 기체 결함 사고로 순직한 F-5E 조종사 고(故) 심정민 소령의 빈소에 다녀온 내용을 상기하며 같은 말을 남겼다.

이는 사실 윤 당선인이 지난해 현충일을 전후해 이씨와 천안함 피격사건 생존자인 전준영 천안함전우회 사무총장을 잇달아 만나며 한 약속이었다.

당시는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잠행하던 시절이었다. 입당도 하지 않은 유력 대권 후보 '윤석열'이 사실상 첫 대외 행보로 공개한 것이 이 두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장시간 독대하며 열심히 경청”

윤 당선인이 ‘K-9 청년’으로 지칭하는 이찬호씨는 “대선 당일 박빙인 개표 방송을 지켜보면서 많이 긴장했다”며 “새벽에 당선 소식을 듣고 윤 당선인을 만났던 그날(지난해 6월 5일)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그날 윤 당선인 지인의 오피스텔에서 아무도 동석하지 않은 채 밤늦게까지 단둘이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며 “군 관련 사고의 전반적인 문제 등을 얘기하고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어떤 방안이 필요한지 여러 견해를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실 (윤 당선인을) 만나기 전만 해도 정치적으로 이용만 하진 않을까 두려웠다”며 “하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얘기를 너무 열심히 들어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제 대통령이 되셨으니 저 같은 피해자가 더는 안 생길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보인다”며 “아직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군 관련 사고가 많은데, 모두 잘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후유증 극복하며 배우 꿈 도전

실제로 이씨 역시 정부와 방위산업체를 상대로 5년째 법정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17년 8월 강원도 철원 지포리 전차 사격훈련장에서 훈련 도중 사고를 당했다. 당시 사고로 장병 3명이 숨지고 이씨를 포함해 4명이 크게 다쳤다.

이씨는 얼굴과 팔, 다리 등 몸의 절반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던 배우 지망생에겐 치명적이었다.

그는 “손가락이 제대로 펴지지 않는다. 땀구멍이 없어서 체온 조절도 잘 안 되고, 오래 서 있기만 해도 피부가 따갑다”며 “더는 수업을 받기 어려워 학교도 그만뒀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8월 K-9 자주포 폭발 사고의 생존자인 이찬호씨는 꿈이었던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사고가 남긴 화상 흉터를 캐릭터로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이찬호

지난 2017년 8월 K-9 자주포 폭발 사고의 생존자인 이찬호씨는 꿈이었던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사고가 남긴 화상 흉터를 캐릭터로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이찬호
지난 2017년 8월 K-9 자주포 폭발 사고의 생존자인 이찬호씨는 꿈이었던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사고가 남긴 화상 흉터를 캐릭터로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이찬호

하지만 꿈을 포기할 순 없었다. 현재 이씨는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대표팀 사령탑이자 동메달리스트인 한민수 감독이 세운 장애인 전문 연예기획사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에 소속돼 활동 중이다.

지난해엔 모바일게임 ‘아르미스’의 광고 모델로 나서는 등 점차 활동 폭을 넓히는 중이다. 그는 “화상 흉터가 선명하다 보니 배역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일단 이런 제 몸이 캐릭터가 될 수 있는 소방관이나 군인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심각한 사고 후유증을 이겨내는 것도 그의 몫이다. 이씨는 "풍선 터지는 소리나 타는 냄새만 맡아도 두려울 정도로 예민해졌다"며 "극복하기 위해 치료를 받으며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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