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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파일] 전쟁과 저작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79호 31면

전민규 사진팀 기자

전민규 사진팀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이틀째인 지난달 25일.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주요 도시가 밤새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처참한 모습으로 변했다. 이날 폐허가 된 아파트를 배경으로 머리에는 붕대를 감고 얼굴은 피투성이가 된 채 카메라를 바라보는 한 여성의 사진이 온라인은 물론 국내 일간지에 게재됐다. 교사로 알려진 이 여성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전쟁의 참상을 가감 없이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의 출처가 제각각이었다. 사진 설명 끝에 ‘트위터 캡처’, ‘000 홈페이지 캡처’ 등으로 적혀 있을 뿐 촬영한 사람의 이름이나 저작권과 관련된 ‘약속된 표시’를 찾을 수가 없었다.

볼프강 슈반이 촬영한 여성. [게티이미지]

볼프강 슈반이 촬영한 여성. [게티이미지]

출처 확인을 위해 현지에서 전송되는 외신 사진을 샅샅이 살핀 끝에 사진의 저작권자를 찾았다. 미국 출신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볼프강 슈반(Wolfgang Schwan)이었다. 슈반은 뉴욕타임스와 BBC 등 굵직한 매체에 사진을 기고하는 프리랜서 사진가다. 그는 지난달 24일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하르키우 지역의 아파트 단지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파괴돼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현장을 취재했다. 여성의 사진은 그중 한 장이었다. 포화 속에서 목숨을 내놓고 찍은 사진이 국내 몇몇 매체와 온라인 등에서 동의 없이 사용된 것이다. 심지어 이 사진은 ‘게티이미지’를 통해서 판매까지되고 있다.

창작자가 만든 모든 콘텐트에는 저작권이라는 권리가 있다. 저작권자는 창작물에 이름을 붙이고 재산을 다루듯 사용하고 복제 및 전시·배포를 할 수 있다. 이 권리는 소설이나 음악, 연극, 사진, 영화 등은 물론이고 디지털 형태로 제작된 저작물까지 인간이 창의성을 발휘해 개성을 갖춰 만든 콘텐트에 생겨 법적 효력을 발휘한다. 트위터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쉼 없이 콘텐트가 생산·유통되는 요즘 시대에 모르면 안 될 ‘필수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이 커질수록 콘텐트의 무단사용과 복제 등 크고 작은 문제가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데, 연평균 1만 건 이상의 저작권법 위반 관련 신고가 당국에 접수되고 있다.

저작물 사용의 핵심은 ‘저작권자의 동의’ 여부다. 우크라이나 여성 사진을 사용하려면 원작자인 슈반의 허락이 필요하다. ‘00 캡처’라고 적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외국인의 저작물도 국제조약에 따라 보호되는 엄연한 저작물이기 때문이다. 슈반 같은 프리랜서 사진작가들은 게티이미지 같은 판매망을 갖춘 에이전시와 계약을 통해 그 대가를 받는다. 에이전시는 저작권자에게 원고료를 지불하고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가교 구실을 한다. 콘텐트가 무단으로 사용될 경우 판매 사이트 및 에이전시는 전문 변호사를 통해 적극적으로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법정까지 갈 경우 징벌적 배상은 물론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인터뷰 취재를 다니다 보면 종종 “사진 좀 받을 수 있을까요?”라는 말을 듣는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곳이 민간 기업은 물론 국회나 정부 기관도 있다는 사실은 적잖게 아쉬운 부분이다. 개인의 권리를 앞장서서 보호해야 할 정부 기관조차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보다 열악한 몇몇 1인 미디어들은 저작권을 침해하는 콘텐트를 제작했다 손해 배상을 해 주거나 저작물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등의 낭패를 보기도 한다. 법에 대한 무지와 인식의 부족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몰랐다”고 말하며 선처를 구하면 용서받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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