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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제재 결국은 … 핵실험 전과 비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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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와 열린우리당, 청와대는 11일 비공개 당.정.청 협의를 하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정식 참여를 유보키로 합의했다.

한명숙 국무총리와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 김한길 원내대표, 강봉균 정책위의장, 이종석 통일부 장관, 윤광웅 국방부 장관, 유명환 외교부 제1차관,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다.

참석자들은 "정부가 PSI의 목적과 원칙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되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당분간 정식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북한 선박에 대한 검색은 남북해운합의서에 따라 정해진 항로와 항구에서만 실시하고 ▶PSI 참여는 동북아지역 밖에서의 훈련에 물적 지원을 하는 수준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의견이 조율됐다. 정부가 13일 발표할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1718호) 이행 계획에도 새로운 제재 조치는 담겨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제재의 내용이 북한 핵실험(10월 9일) 이전과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이런 정부의 대북 대응은 보수세력의 반발 등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강도 높은 대북 압박과 PSI 참여를 줄기차게 요청해 온 미국과의 갈등도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12일 "정부가 '외톨이 외교'로 국제사회에서 점점 미아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정부는 PSI 참여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부처 간 협의와 당정협의에서 외교부는 북한 선박 차단 작전 불참을 조건으로 정식 참여를 선언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통일부와 청와대 일각에서 남북 긴장 고조 등을 이유로 이에 반대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방한해 "남북 충돌 우려는 과장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던 셈이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번영정책 유지' 선언도 반대론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정식 참여는 하지 않되 한반도 주변 지역 이외에서의 PSI 훈련에 선박 등을 지원하는 선까지는 참여 폭을 확대할 수는 있다"며 미국에 양해를 구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이런 입장을 받아들여 줄지는 의문이다.

14일까지 유엔 안보리에 내야 하는 대북 결의 이행 계획서의 핵심 내용은 "무기 개발 등에 사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에 대한 수출 통제를 더욱 철저히 하겠다"는 선언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대량살상무기 개발 관련자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나 사치품 수출 금지 조치도 명시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북한 미사일 시험 발사(7월 5일) 직후 쌀.비료의 인도적 지원을 중단하는 등 이미 강력한 제재를 가한 상태에서 북한을 계속 압박하는 것은 6자회담의 진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이런 정부의 논리는 "국제사회가 북한을 강하게 압박해야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 포기라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미국.일본의 입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래서 정부 일각에서 "이제 미.일과의 긴밀한 공조는 더욱 어렵게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상언 기자

◆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대량살상무기(WMD)와 관련 부품의 이전을 막기 위해 미국이 주도해 만든 국제협력체계. 대량살상무기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항공기.화물선의 이동을 차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80개국이 참여 중이며 우리 정부는 '참관' 활동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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