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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T 공포…대선 끝나도 시계 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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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서울 종로와 광화문 일대가 9일 미세먼지로 뿌옇다. 한국 경제도 이처럼 ‘시계 제로’ 상황이다. 유가를 필두로 한 물가 폭등, 미국 금리 인상 같은 새 정부가 풀어야 할 난제가 가득하다. [뉴스1]

서울 종로와 광화문 일대가 9일 미세먼지로 뿌옇다. 한국 경제도 이처럼 ‘시계 제로’ 상황이다. 유가를 필두로 한 물가 폭등, 미국 금리 인상 같은 새 정부가 풀어야 할 난제가 가득하다. [뉴스1]

9일 대통령 선거 이후 새 경제팀이 꾸려지게 됐지만, 앞에 놓인 길은 ‘시계 제로(0)’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유가를 필두로 한 물가 급등, 초읽기에 들어간 미국 기준금리 인상. 한 치 앞을 제대로 예상하기 힘든 복합 위기에 맞닥뜨렸다. 새 정부가 전방위로 밀려오는 ‘S(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를 막아내기엔 쉽지 않다는 평가다.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8일 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 재경관 영상회의), “대외 여건에 대한 우려로 경기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됐다.”(7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동향). 정부와 연구기관의 진단도 ‘불확실성’ 한 단어로 모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소비자물가 상승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산 석유·가스 등 수입을 금지하는 독자 제재 방침을 발표한 8일(현지시간) 국제유가는 다시 솟구쳤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영국산 브렌트유는 배럴당 127.98달러로 2008년 7월 이후 최고 기록(종가 기준)을 경신했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올해 평균 유가 전망을 브렌트유 기준 135달러로 높여 잡았다. 에너지 전문 조사업체 리스타드 에너지는 최악의 경우 유가가 200달러로 치솟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불과 1년 전과 비교해 서너 배 오른다는 건데 1970~80년대 오일쇼크(석유파동) 이후 유례가 없다.

러시아 사태로 치솟는 유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러시아 사태로 치솟는 유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유가가 130달러 위로 올라선다면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 4%(전년 대비) 돌파는 예정된 수순이다. 유가는 물론 원자재와 곡물 가격까지 급등하고 있어서다. 이는 대선 직후인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물가에 반영될 전망이다. 오피넷에 따르면 9일 전국 휘발유 소매가격은 L당 평균 1892.4원으로 1900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8년 만에 최고치로 이미 위기 수준이다.

달러당 1230원대로 올라선 환율은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길 요인이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러시아 디폴트(채무 이행 불가) 선언 가능성과 그 파장, 유가 급등에 따른 한국 무역 적자 전환 가능성 등 추가로 반영해야 할 요소들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유동성을 푼 데다 우크라 사태 등 대외적 요인까지 겹치면서 물가가 치솟고 있다”라며 “물가는 새 정부 지지율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2일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이달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지지할 것”이라며 금리 인상 수순을 밟아나가겠다고 못 박았다. 미국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한 긴축 시계는 전쟁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한국도 금리 인상 압박이 크다.

지난해 말 기준 1862조1000억원으로 불어난 가계 빚(가계신용)이 금리 인상 위험 앞에 놓여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 1월 가계대출 가운데 76.2%(잔액 기준)는 변동금리 대출이다. 기업 대출도 67.7%가 변동금리 조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채무는 올해 1000조원을 돌파한다. 새 정부에서 2차 추경을 서둘러 편성해 풀더라도 재정 부담만 늘리고 제 효과를 못 낼 가능성이 작지 않다.

김갑순 동국대 경영대 교수는 “돌려쓸 만한 여유 예산이 거의 없다. 결국 지출을 추가로 늘리려면 국가채무 등 다른 방식의 국민 부담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며 “무리한 재정 확대는 오히려 경제 성장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마땅한 카드는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 때와 달리 솟구치는 물가 때문에 기준금리 인하도, 대규모 유동성 추가 공급도 유효한 수단이 되기 어렵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산시장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통화량을 조절할 것인지, 금리를 올리면서도 주거를 포함한 서민 생활을 어떻게 안정시킬 것인지가 차기 정부의 남긴 숙제”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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