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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수현이 고발한다

'개미 피눈물'과 '표' 바꿀텐가···李·尹 '주가 희망팔이' 그만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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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인류학 연구자·서울대 간호학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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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그래픽=김은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그래픽=김은교

“정부가 지난 10년 동안에 푼 만큼의 돈을 한 번에 다 풀어버렸잖아요. 그러니 이제 (주식시장은) 무조건 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렇게 믿었으니까요.”
지난 2020년 가을, 그러니까 코로나 19 이후 잠시 주춤하던 증시가 활활 타오르던 그때 심층 면담했던 30대 직장인 투자자 오모씨 얘기입니다. 책 출간을 준비 중이던 저는 급성장한 MZ세대 개인투자자들의 '우상향(상승장) 믿음'에 대한 출처를 추적하다 오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는 그동안의 손실을 만회하려고 대출 4000만원을 받아 무리하게 투자했는데, 이 역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스트레스가 매우 심하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주식에 온 마음이 쏠려 일상생활이 휘청거릴 지경이었지만 투자를 관두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지금 당장은 주가가 떨어져도 내년, 아니 내후년엔 엄청나게 오른다는 믿음을 갖고 버텼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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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제가 오씨를 만난 직후인 2020년 12월 초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개인투자자들이 동학 개미 운동에 나서며 우리 증시를 지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동학 개미에 찬사를 보내더니, 보름 뒤 수석보좌관회의에선 직접 "주가 3000 시대"를 언급하며 개미들이 요구했던 공매도 금지 조치 연장 여론을 부추겼습니다. 또 “개인투자자의 의욕을 꺾어선 안 된다”며 이미 거세던 투자 열풍에 부채질을 더한 적도 있었습니다.

손해볼 리 없다는 믿음 

2020년 12월 국무회의를 주재중인 문재인 대통령. 이날 문 대통령은 “개인투자자들이 동학개미운동에 나서며 우리 증시를 지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20년 12월 국무회의를 주재중인 문재인 대통령. 이날 문 대통령은 “개인투자자들이 동학개미운동에 나서며 우리 증시를 지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개입한 마당에 주식시장이, 아니 개인투자자가 손해 볼 리는 없을 거라는 계산을 바탕으로 한 청년의 투자는 얼핏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입니다. “풍부한 시중 유동성이 자산 거품을 키울 수 있다”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대통령 말 한마디에 바로 입장을 바꿔 “주식시장의 큰 힘인 개인투자자의 투자 애로를 개선하겠다”고 납작 엎드렸으니까요.
개인투자자 연구를 통해 '해피엔딩을 찾기 힘들다'는 비관적 결론을 내렸던 저조차도 당시 '주식을 좀 사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러다 벼락 거지 되는 거 아닌가'라고 깊게 갈등했을 정도니까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급등한 전세 자금 마련을 위해 ‘영끌’해야 했던 상황 탓에 주식 살 여윳돈이 없었지만요.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정말 정부가 증시를 살려 개인투자자를 지켜줄 수 있는 걸까요?

일단 오늘(9일) 선거를 치르는 대선주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위기의 코스피를 살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합니다. 1000만 개인투자자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저마다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면서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주식양도세 폐지를 공약했습니다. 부자 감세 지적이 나오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증권거래세 폐지를 내놨습니다. 주식양도세 혜택을 보는 개인투자자는 큰손 일부에 불과하니 소액 개인투자자에게 실제 도움을 주는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겠다는 것이죠.

어떤 공약이 투자자에게 더 이익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두 후보 모두 개인투자자의 참여를 확대해 증시를 활성화하겠다는 목표에는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특히 이 후보는 문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코스피 5000시대"라는 구체적인 주가지수 약속까지 내놨습니다. 정치인들이 주가 목표치를 제시한 건 사실 어제오늘 일만은 아닙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을 치를 당시 '임기 첫해 코스피 3000, 임기 내 5000'을 자신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코스피 3000 공약을 한 바 있습니다. 두 약속 모두 지켜지진 못했지만요.

끊이지 않는 관제 펀드 

올해 증시개장일 행사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연합뉴스]

올해 증시개장일 행사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연합뉴스]

코스피 공약이 전부는 아닙니다. 녹색 펀드(이명박 정부), 통일펀드‧청년희망펀드(박근혜 정부), 필승코리아펀드‧뉴딜펀드(문재인 정부)…. 각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으로 만든 관제 펀드도 개미들의 투자심리를 자극합니다. 세제 혜택은 기본이고 투자 원칙과 정반대로 손실을 부담해주기도 합니다. 문 대통령은 1호 가입을 홍보해 국민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눈치 본 덕분인지 출범 직후엔 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고, 이를 토대로 더 많은 투자를 끌어냈습니다. 정부는 이를 정책에 대한 지지로 또 홍보했고요. 수익의 달콤함이 정책 검증을 교묘히 비껴가도록 해줬던 셈입니다.

하지만 시장 논리 대신 대통령 발언에 편승한 펀드 마케팅은 늘 그랬듯이 임기 막바지면 그 효력을 다합니다. 대개 수익률이 처참해지다 슬그머니 자취를 감춥니다. 관제 펀드의 용두사미 결말을 목격하고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마치 처음이라는듯이 새 관제 펀드를 만들어 국민을 꼬시기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3000·5000 같은 책임지지 않는 희망을 팔아 표심을 얻어온 정치권은 투자가 참담한 실패로 끝나도 여태 아무런 반성이 없었습니다.

정치인들이 결국 허언으로 끝나고 마는 '주가 ○○시대''○○% 수익률' 같은 호언장담을 반복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런들 저런들 정부는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는 데 답이 있다고 봅니다. 관제 펀드가 실패한들, 주가가 바닥을 친들 정부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모든 투자는 개인투자자 자신의 선택이며 결과는 언제까지나 투자자 본인의 책임'이라는 금융회사 약관은 언제나 정부와 금융권의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무슨 약속을 했든 손실과 실패는 개인투자자 자신의 탓, 즉 공부와 경험 부족의 문제로 환원됩니다.

책임지지 않는 희망 

피리 소리로 130명의 아이와 함께 자취를 감춰버렸다는 독일 하멜른 지역 구전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떠오릅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어느 아이에게도 그와 함께 따라나설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죠. 아름다운 피리 연주로 현혹했을 뿐입니다. 한순간 마을의 모든 아이를 잃은 슬픔과 상실감은 온전히 마을에 남겨진 어른들의 몫이었고요. 정부 역시 표면적으론 주식투자를 국민에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정부가 가진 공신력을 활용해 낙관론을 펼치며 현혹할 뿐이죠.

20대 대선에 나선 두 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당선을 믿으면 부동산 아닌 주식시장으로 가라(이 후보)”“1000만 개미투자자를 살린다(윤 후보)”라는 등 여전히 책임지지 않는 희망을 반복합니다. 그러면서 정작 해결해야 할 진짜배기 문제들, 가령 불충분한 근로소득, 미흡한 노후대비, 천정부지 집값, 불안정한 노동시장, 저성장경제와 같은 관심은 분산됩니다. 애초에 우리가 왜 투자를 시작했는지 그 이유는 묻어둔 채. 선심 쓰듯 주식시장을 살리겠다고 말한 대가로 정치인은 유권자의 표를 얻습니다. 금융계는 수수료를 벌고요. 그러나 개인투자자는 그런 거짓 희망이 사라지고나면 책임만 남습니다. 희망은 그 무엇도 담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정치인들이 부추긴 과잉 희망 사회 속에서 냉정함을 유지하자고요. 코스피 5000에 무조건 열광할 게 아니라 코스피 5000을 약속하는 정치인의 발언에 갸우뚱할 줄 아는 유권자가 되자고요. 오늘 결정되는 차기 대통령이 또 무리한 다른 관제 펀드를 만들지 않을지, 책임지지 않는 희망을 말하는 기만을 되풀이하지는 않는지도 지켜봅시다.

[김민기의 반박불가]'개인 투자자 도박' 부추기는 정책은 위험하다

선거철만 되면 높은 주가지수를 약속하며 책임지지 않는 희망을 설파하는 정치인을 비판하는 김수현 작가의 글과 함께 보면 좋을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의 글을 함께 소개합니다.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 김수현 칼럼 하단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