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민기의 반박불가

'개인 투자자 도박' 부추기는 정책은 위험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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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투자자에게 '과잉 희망'을 주입하는 정치권 약속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김수현 작가(주식투자 연구자)의 글과 함께 읽으면 좋을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의 글을 전합니다. 김 연구위원은 최근 '코로나19 국면의 개인투자자: 거래행태와 투자성과'라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주식 투자자 1000만 시대, 개인 국내외 주식 순매수 100조원 돌파.

지난해 주식시장을 형용하는 이런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 투자자의 목소리와 영향력은 날로 커가고 있다. 투자자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여야 대선후보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올해 증시 개장식에 동시에 참석했고, 투자자들이 귀를 쫑긋 세울 만한 공약을 잇달아 내놨다. 코스피 5000시대, MSCI 지수(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선진국 지수) 편입, 공매도 규제 개선, 주식 투자 관련 세제 개편 등의 공약은 대선후보 간 공개 TV 토론에서도 뜨거운 주제였다.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차기 정부는 이번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국민 환심을 사려고 투자 활성화 정책을 실행할 가능성이 크다.

투자 활성화 정책은 개인의 투자 심리를 부추겨 시장 참여를 늘리는 효과를 낸다. 국내 주식시장의 투자자 저변이 확대되고 개인의 위험자산 투자가 늘어나는 건 기업의 자본조달이나 개인의 자산관리 측면에서 분명 긍정적인 요소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가 직접 투자로 꾸준한 이익을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2020년의 약 20만 명의 개인 투자자 거래 자료를 분석했다. 당시 증시는 우상향 활황장이었음에도 대다수 개인 투자자가 손실을 본 결과를 보며 주식투자로 이익을 실현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 자료를 토대로 자본시장연구원에서 낸 보고서에는 ‘2020년 코로나 19 국면에서도 국내 개인 투자자의 거래회전율은 연 1600%에 달했지만, 투자수익률은 코스피 수익률에 미치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가 전 거래일에 비해 62.12(2.29%) 포인트 내린 2651.31을 나타내고 있다. [뉴시스]

지난 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가 전 거래일에 비해 62.12(2.29%) 포인트 내린 2651.31을 나타내고 있다. [뉴시스]

개인의 비합리성 극복 어려워 

개인 투자자의 투자 성과가 저조한 것은 일차적으로 잘못된 종목 선정과 매매 시점 선택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왜 이러한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을 할까. 여기엔 심리적 요인과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 투자자의 ‘행태적 편의’가 작동한다. 부연 설명하자면 대체로 본인의 능력이나 정보를 과신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얘기다. 또 투자를 통해 이익을 거둘 때는 본인의 능력이라 생각하는 반면 손실이 난 경우에는 단순히 불운으로 치부하는 행태적 편의를 극복하기 쉽지 않다. 또 이익은 서둘러 실현하여 심리적 만족감을 얻는 반면 손실의 실현은 미뤄 본인의 실수를 부인하려 한다.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대다수의 사람에게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특징이다. 이런 행태적 편의는 저조한 성과의 주요 원인이 된다.

개인 투자자는 주가 상승을 본인의 투자 능력으로 오인해 필요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거래한 후 이익을 서둘러 실현하는 바람에 대세 상승기의 온전한 수익률을 가져가지 못했다. 또 극단적인 고수익을 추구하려 변동성 높은 종목을 너무 빈번하게 거래하는 특징도 보였다.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거래가 저조한 투자 성과로 귀결되는 셈이다.

인위적 주가 부양 부작용 크다

앞에서 말한 행태적 편의 양상이 지속하면 정부의 투자 활성화 정책으로 많은 사람이 투자에 뛰어들고 시장이 커진다고 해도 기대했던 긍정적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특히 장기적으로 볼 때 저조한 성과가 지속하면 오히려 증시 탈출로 투자자 저변이 위축될 우려도 있다. 만약 행태적 편의가 시장 가격의 비효율성을 유발한다면 시장의 기능마저 저하될 수 있다

여유 자산이 있으면 모를까 작은 위험조차 감내하기 어려운 금융 취약계층마저 과도하게 증시에 뛰어들고, 불행히도 수익률이 곤두박질이라도 치면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짊어질 부담이 커진다. 저금리 시대에 투자자를 위한 정책은 중요하다. 하지만 국가 지도자, 혹은 국가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포퓰리즘적 발상으로 무조건 주가 띄우기를 말할 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시장에 어떠한 결과를 야기할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뻔한 말이지만, 주식 상승은 그 어떤 정부 정책보다도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과 성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