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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블화 폭락했는데, 러 "루블화로 빚 갚겠다"…韓기업 쇼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 정부가 정부령으로 비우호적 국가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포함했다. 자국과 자국 기업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행동을 한 국가나 지역을 지정해 경제‧통상 제재를 한다는 방침이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맞닥뜨린 러시아가 ‘역 제재’에 나서는 것이다.

8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 루블화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8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 루블화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루블 폭락했는데 고평가

8일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비우호국에 대해 러시아 정부와 기업이 진 해외 채무를 달러가 아닌 루블화로 상환할 수 있게 했다. 이날 오전, 국제 외환시장에서 거래되는 환율은 1달러당 150루블 정도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 달러당 70~80루블 사이에서 거래가 이뤄진 점을 고려하면 루블의 가치가 반토막이 난 셈이다.

러시아는 이마저도 시장 환율이 아닌 러시아 중앙은행이 매달 1일 고시하는 환율을 기준으로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1달러당 93.6루블이다. 현재 시장에서 평가받는 루블화 가치보다 자국 통화 가치를 60%가량 높게 책정한 것이다.

결국 러시아 채권을 보유하거나 러시아 기업에서 받을 돈이 있는 투자자는 금전적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예컨대 1만 달러의 러시아 채권에 투자한 기업이 이를 상환받을 경우 시장가로는 150만 루블을 받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93만6000 루블만 손에 쥘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제사회의 대러 제제로 루블화 가치는 계속 떨어질 것(환율은 상승)이라는 전망이 많기 때문에 투자자의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

기업·정부 모두 손해 우려

러시아 기업에서 받을 대금이 있는 산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 현지에서 루블화로 주로 거래해온 국내 기업들은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이미 큰 환 손실을 본 상황에서, 달러로 받아야 하는 기존 수출대금까지 루블화로 받게 돼 추가로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비우호국가지정 및 루블화 채무 이행.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러시아, 비우호국가지정 및 루블화 채무 이행.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국내 조선 3사(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가 러시아에서 수주한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계약 규모만 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러시아 수출 비중이 큰 건설기계업체나 러시아 현지에 진출한 기업 입장에서도 대규모 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다. 러시아 채권을 가지고 있는 정부나 개인의 손해도 불가피하다.

지난달 28일 오전 경남 거제시에 위치한 빅3 조선소 중 한 곳의 전경.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오전 경남 거제시에 위치한 빅3 조선소 중 한 곳의 전경. 연합뉴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루블화 가치가 폭락한 데다 추가로 더 폭락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러시아의 이번 조치는 사실상 채무 불이행 상황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면서 "러시아와 거래하는 한국 기업들이 채무 불이행 위험의 피해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기재부 관계자는 “한국 전체적으로 보면 보유한 러시아 채권이 많지 않아 러시아에 대한 익스포저는 굉장히 제한적이다”며 “루블이 약세인 상황에서 러시아가 달러로 이자를 지급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익스포저는 특정 국가와 연관된 금액으로, 신용사건 발생 시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 금액을 말한다.

통상 문제도…“업계 애로 점검”

산업부는 이날 오후 유관기관 및 업종별 협회·단체 관계자와 민‧관 대책회의를 열었다. 러시아의 비우호국 지정으로 인한 국내 통상 여파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러시아의 대외채무 루블화 지불이 확정된 상황에서 산업부는 이로 인한 국내 기업 영향을 파악했다. 간담회에 참여한 산업계에서는 “루블화 결제에 따른 환차손 피해 등이 예상돼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비우호국에 대한 수출 제재도 추가로 이뤄질 수 있어 이에 대한 대응책도 논의했다. 러시아는 전자제품에 소재로 쓰이는 합성 사파이어 등 자국 생산량이 많은 원자재 수출 중단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관련해 구체적인 제재 방안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비우호국 지정으로 현지 진출 기업과 수출기업의 경영 애로가 현실화된 상황”이라며 “조치 관련 현지 동향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관련 기관과 함께 대응책 마련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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