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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한국 IT를 글로벌로...벤처 1세대 5인의 기쁨과 슬픔

중앙일보

입력

국내 IT벤처 창업 1세대로 불리는 5명의 창업가. 왼쪽부터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 이해진 네이버 GIO,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재웅 다음 창업자. 정다운 디자이너.

국내 IT벤처 창업 1세대로 불리는 5명의 창업가. 왼쪽부터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 이해진 네이버 GIO,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재웅 다음 창업자. 정다운 디자이너.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는 한국 IT산업의 부흥을 이끈 주역 중 하나다. 1994년 카이스트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그가 넥슨을 창업 한 후 다음(1995년), 엔씨소프트(1997년), 한게임(1998년), 네이버(1999년)가 잇따라 만들어지며 국내 IT 산업의 부흥기가 시작됐다. 이해진(네이버), 김범수(한게임, 카카오), 김택진(엔씨소프트), 이재웅(다음) 같은 국내 1세대 벤처 기업가, 일명 황금세대의 등장이었다.

이들 황금세대는 서로 얽힌 인연도 깊다. 고(故) 김정주 창업자와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 동기이자 카이스트 대학원 기숙사 룸메이트였고, 김범수 카카오 의장(서울대 산업공학과 86학번)도 같은시기 대학을 다녔다. 이 GIO는 김 의장과 삼성SDS(1992년) 입사 동기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김정주 창업자의 같은 과 1년 선배. 이재웅 다음 창업자는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86학번으로 이해진 GIO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친구 사이다. 사석에선 친구, 업계에선 창업 동지이자 라이벌로 30년을 같이 보낸 막역한 사이다. 맏형 격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김정주 창업자의 사망소식을 접한 후 소셜네트워크에 “살면서 못 느꼈던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 같이 인생길 걸어온 나의 벗 사랑했다. 이젠 편하거라 부디”라며 애도를 표했다.

서로 다른 벤처 5인방, 글로벌 도전이란 공통점 

다섯 창업가의 스타일은 다르다. 냉정한 전략가(이해진), 과감한 승부사(김범수), 탁월한 선구안(김정주), 꼼꼼한 관리(김택진), 천재형 육성가(이재웅) 등 서로 다른 장점을 기반으로 기업을 키웠다. 공통점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기회를 포착했다는 점. 이들은 천리안·하이텔로 대표되던 90년대 PC통신 시대에 게임과 포털이란 새로운 서비스에 도전했고, 이후 모바일 시대를 통해 핵심 IT기업으로 도약에 성공하며 글로벌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제조 대기업이 아니라도 소프트웨어로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단 걸 증명했다.

고(故) 김정주 창업자는 1999년 아케이드 게임 ‘퀴즈퀴즈’에 아이템 유료(부분유료화) 비지니스모델(BM)을 도입하며, 월정액 일변도의 게임업계 판도를 바꿨다. ‘크레이지 아케이드 비앤비(2001년)’, ‘카트라이더(2004년)’ 등을 거치며 부분 유료화는 전 세계 게임업계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됐다. 2008년 중국 게임시장에 ‘던전앤파이터’를 수출한 후 매년 1조 이상 로열티 수입을 확보했고, 2011년엔 세계 최대 게임시장이던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넥슨을 상장시키며 시가총액 기준 온라인 게임사 세계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가 만든 게임 바람의 나라 이용자들은 김 창업자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1일 게임 내 부여성 남쪽에 모여 추모식을 열었다. 이용자들은 '덕분에 게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의 메시지를 남겼다. [사진 유튜브 취미디 이채널 캡처]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가 만든 게임 바람의 나라 이용자들은 김 창업자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1일 게임 내 부여성 남쪽에 모여 추모식을 열었다. 이용자들은 '덕분에 게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의 메시지를 남겼다. [사진 유튜브 취미디 이채널 캡처]

그는 2005년 넥슨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후엔 전세계를 돌며 벤처투자에 몰입했다. 2013년 노르웨이 유아용품 브랜드 스토케, 홍콩 레고거래업체 브릭링크 투자를 시작으로 반려동물(아그라스델릭), 패션(무스패션), 모빌리티(FGX), 우주(스페이스X, 문익스프레스), 미래먹거리(비욘드미트, 임파서블푸드, 엑소), 모빌리티(리프트)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며 새로운 기회를 찾아왔다. 최근에도 가상자산거래소 코빗과 글로벌 거래소 비트스탬프, 타고미 등에도 투자했다. NXC 산하에는 핀테크 회사 아퀴스를 설립하는 등 신사업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게임사를 넘어 디즈니처럼 사랑받는 글로벌 지식재산(IP) 비즈니스 회사를 만들겠단 목표였다.

다른 창업가들도 서로를 경쟁자 삼아 글로벌에 진출했다. 이해진 GIO는 창업 이듬해인 2000년부터 일본시장을 꾸준히 노크했다. 첫 글로벌 성공작인 라인(2011년 출시)을 기반으로 2016년 도쿄·뉴욕 증시에 라인을 동시 상장시킨게 대표적. 넥슨 이후 국내 인터넷기업의 두번째 해외 상장이었다. 지난해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손잡고 라인과 야후를 합병해 Z홀딩스를 출범시키며 글로벌 기업의 반석을 다지고 있다.

게임업계 맞수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도 2000년 발빠르게 북미지사를 설립해 ‘리니지’를 미국 시장에 내놨다. ‘길드워’(2005년) 성공을 시작으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을 글로벌 시장에 알리기 시작한 것.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같은 기대작이 해외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난해 11월 ‘리니지W’를 12개국에 동시 출시하며 반전을 꾀하고 있다.

2011년 12월 14일 넥슨재팬(현 넥슨)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아래쪽 왼쪽에서 3번째가 김정주 넥슨 창업자.

2011년 12월 14일 넥슨재팬(현 넥슨)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아래쪽 왼쪽에서 3번째가 김정주 넥슨 창업자.

뭉치고 흩어지며 협력하고 경쟁  

벤처 5인방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뭉치고 흩어지는 것도 마다치 않았다. 이해진 창업자는 2000년 김범수 당시 한게임 대표와 함께 NHN(네이버 전신)을 만들었고,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이재웅 다음 창업자는 2014년 카카오와 다음 합병을 성공시켰다. 고(故) 김정주 창업자와 김택진 대표도 글로벌 게임사 일렉트로닉아츠(EA)를 인수를 위해 2012년 한배를 탔었다. 넥슨이 엔씨소프트 주식 14.7%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던 것. 하지만 EA인수는 무산됐고 양사는 공동 프로젝트 ‘마비노기2’ 개발 이견과 경영권 갈등으로 3년만에 서로 갈라섰다. 2015년 10월 넥슨이 엔씨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2019년 고(故) 김정주 창업자가 넥슨 코리아 매각을 추진할 땐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만나 논의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김범수 의장도 당시 주변에 넥슨 인수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 카카오는 그해 6월 마감된 넥슨 매각 본 입찰에 참여했지만 인수가격 합의에 이르지 못해 매각은 무산됐다. 라이벌 넷마블도 당시 넥슨 인수를 고려했던 기업 중 하나다. 넷마블 방준혁 의장은 2일 오후 “지난해 (김정주 창업자를) 제주도에서 만났을 때 산악자전거를 막 타고 들어오는 건강한 모습과 환한 얼굴이 아직 떠오르는데 갑작스런 비보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며 “오랜 게임업계 동료로서 무한한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정주 넥슨 창업자는 사회환원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2014년 푸르메재단의 어린이재활병원 건립비 모금이 어렵다는 소식을 위해 흔쾌히 200억원을 기부했다. 이후에도 매년 자비로 3억~5억원 씩을 병원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2020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김정주 창업자의 이름을 딴 ‘김정주 홀’을 열기도 했다. 병원 측은 2일 “국내 IT 산업의 혁신을 이끌며 그 수익을 소외된 이들과 나눴던 우리 사회의 선한 리더였기에 기부자님의 이른 별세가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는 글을 올렸다. [사진 푸르메재단 넥슨 어린이 재활병원]

김정주 넥슨 창업자는 사회환원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2014년 푸르메재단의 어린이재활병원 건립비 모금이 어렵다는 소식을 위해 흔쾌히 200억원을 기부했다. 이후에도 매년 자비로 3억~5억원 씩을 병원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2020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김정주 창업자의 이름을 딴 ‘김정주 홀’을 열기도 했다. 병원 측은 2일 “국내 IT 산업의 혁신을 이끌며 그 수익을 소외된 이들과 나눴던 우리 사회의 선한 리더였기에 기부자님의 이른 별세가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는 글을 올렸다. [사진 푸르메재단 넥슨 어린이 재활병원]

부의 사회 환원도 함께

이들은 사회환원에도 적극적으로 함께했다. 2014년 5월 다섯 창업자는 공동출자한 자금으로 유한회사 ‘C프로그램’을 설립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지만 재정이 열악한 기업·단체·비영리기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벤처자선(Venture Philanthropy) 기금이었다. 과학·교육 NGO ‘내셔널지오그래픽소사이어티’, 교육혁신 단체 미래교실네트워크 등을 후원했다.

C프로그램은 지난해 12월 해산됐다. 업계 안팎에선 지난 7년여간 각 창업자들이 개별적으로 꾸린 사회공헌재단이 생긴 점 등을 해산 이유로 보고 있다. 전 C프로그램 관계자는 “원래부터 실험적인 기금이었고 매년 이사회 때마다 향후 방향 등을 논의해 왔다”며 “지난해 이제 실험 단계를 마무리 지을 때가 됐다고 판단해 해산됐다”고 설명했다. 고(故) 김정주 창업자와 이재웅 창업자는 2012년 후배 벤처기업인을 키우기 위한 200억원대 국내 민간펀드(페이스 메이커 펀드)와 2013년 글로벌 소셜벤처투자사 콜라보레이티브 펀드에 같이 투자하며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가들에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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