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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과 복지의 절반은 정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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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호 21면

재정전쟁

재정전쟁

재정전쟁
전주성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재정학자 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논쟁적인 책을 냈다. 언론 기고 등이 한동안 뜸해서 근황이 궁금했는데 프롤로그에 그 이유가 있었다. “이런저런 실속없는 글을 언론에 썼던 시절이 있었다. 환절기 일기예보 수준의 현실 분석과 알맹이 없는 정책 방향이나 제시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마침 뉴욕 출장에서 만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가 개도국 특성에 맞는 이론 정립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그 후 10여년, 기고 등 국내 활동을 멈추고 개도국 정부 자문에 집중하며 ‘우리 현실에 맞는 재정 이론’을 연구했다. ‘세금과 복지의 정치경제학’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왜 『재정전쟁』인가. 저자는 예전의 국가 간 경제 전쟁이 환율을 둘러싼 ‘통화전쟁’이었다면 앞으로의 국가 경쟁력은 재정의 힘이 좌우한다고 했다. 이 책의 미덕은 정책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그치지 않고 “세금과 복지의 절반은 정치”라며 경세가(經世家)의 입장에서 실현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날개에 ‘대한민국 정부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자신만만한 광고 카피까지 넣었다.

저자는 “보유세는 ‘가만히 앉아서’ 내는 세금이기에 정치적 저항이 크다”고 지적한다. [연합뉴스]

저자는 “보유세는 ‘가만히 앉아서’ 내는 세금이기에 정치적 저항이 크다”고 지적한다. [연합뉴스]

스웨덴식의 ‘고부담-고복지’ 모델은 환상이라고 했다. 스웨덴 정부의 높은 신뢰도, 부자에게도 제공되는 보편복지 덕분에 스웨덴은 국민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거둘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 이식하긴 힘들다. “믿음을 주는 정부만이 저항 없이 세금을 거둘 수 있다”는 지적은 통렬하다. ‘중부담-중복지’도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재원 확보 없으면 무의미하다고 했다. 저자는 지금 한국과 같은 “원칙 없고 복잡한 기존의 누더기 세제로는 2~3%P 정도 조세부담률을 올리기도 어렵다”고 봤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부자를 설득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세금 내는 부자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반대급부를 주면 그들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낼 수 있다. 스웨덴의 보편복지가 그런 예다. 현재 여야 유력 대선후보의 공약인 종부세의 재산세 통합이나 토지세에 대해선 장기적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서둘러 결정할 사안은 아니라고 봤다.

재정건전성 이슈에 대해선 명쾌하다. ‘재정보수주의’라는 좋은 습관은 어지간하면 놔두라는 거다. “재정건전성 문제를 보수의 영역으로 여기는 잘못된 고정관념은 사라져야 한다. 거리낌 없이 재정적자를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걱정스럽다.”

조세에 대한 기존 상식을 뒤집는 주장은 눈길을 끈다. 몇 가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①세율은 낮게, 과세 기반은 넓게=1980년대 초반 선진국은 작은 정부로 향하는 보수 혁명을 시작했다.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이 70%를 웃돌고 법인세율도 50%에 근접하다 보니 세 부담을 줄이는 게 목표였다. 그 시절 선진국에서 나온 말인데, 세수를 늘려야 하는 우리가 지켜야 할 금과옥조는 아니다.

②근로소득자의 하위 40%는 세금을 안 낸다=틀린 얘기다. 우리나라 전체 세수에서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 부가세·유류세 등 각종 소비세와 거래세, 부담금 등 준조세 부담이 크다. 소득세를 안 내도 다른 세금 부담까지 낮다고 볼 수는 없다.

③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세금을 정부의 절대권한으로 여기는 행정 편의적 주장일 뿐이다. 세금은 정부의 일방적 권한이 아니라 국가와 시민 간의 암묵적 사회계약이다.

④부동산 보유세는 올리고 거래세는 내려야=거래세는 뭔가를 사고파는 납세자 선택의 결과지만 보유세는 ‘가만히 앉아서’ 내는 세금이기에 정치적 저항이 크다. 지난해 같은 급속한 재산과세 인상은 무모하다.

⑤법인세를 낮춰야 외국기업 유치=과장된 개념이다. 다국적기업이 투자 위치를 정할 때 조세의 우선순위는 별로 높지 않다. 외국기업에 대한 과도한 조세지원은 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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