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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기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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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정민 기자 중앙일보 중앙SUNDAY 문화부장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서정민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생활한 지도 벌써 3년째다. 화장 안 해서 좋다고, 겨울에 목감기 덜 걸려서 좋다고, 싫은 표정 가릴 수 있어서 좋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돌았다. 이런 ‘웃픈’ 일상이 계속되면서 덕분이라고 하면 뭣하지만 마스크 때문에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처음 만나는 사람의 경우, 마스크 넘어 얼굴이 어떨지 혼자 상상하는 버릇이다. 대개는 그렇게 혼자 상상에 빠지다 마는데, 어쩌다 차라도 한 잔 같이하게 되면 나의 빈약한 상상력과 눈썰미가 처참하게 깨지는 경험을 한다. 연예인이나 범죄자가 왜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다니는지 이유를 확실히 알았다. 마스크를 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얼굴이 너무 다르다! 가면무도회의 묘미가 어떤 건지도 확실히 알겠다.

베이징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500m 금메달리스트 황대헌. [뉴스1]

베이징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500m 금메달리스트 황대헌. [뉴스1]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꽤 있나 보다. ‘마스크를 쓴 사기꾼’을 뜻하는 신조어 ‘마기꾼’이 등장했다. 꼭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는 것도 아니다. 요즘 마기꾼 소리를 가장 많이 듣는 사람은 베이징 겨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대헌(사진) 선수다. 포털 사이트에서 마기꾼을 치면 ‘황대헌 마기꾼’이라는 표현이 자동검색 된다. 한 네티즌이 쓴 글을 옮기면 이렇다. “마스크 쓰고 있을 때부터 눈웃음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마기꾼들이 넘치는 세상에 한줄기의 보석 같은, 쇼트트랙 금메달 황대헌 선수 마스크 벗은 모습에 심정지로 119 실려 갈 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마스크를 쓴 답답한 일상에서도 마기꾼 같은 유쾌한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마스크 속 얼굴을 상상하는 놀이 아닌 놀이를 즐기고 있다니,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